[김낭기의 관점]여당 승리 뒤 '검찰 압박' 나선 범여권 인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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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낭기 논설고문
입력 2020-04-30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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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거 결과를 정권 비리 기소한 검찰 '판정패'로 몰아가

  • 선거와 기소·재판은 별개…유·무죄는 법정서 가릴 일

  • 선거 승리 이유로 검찰·법원 무력화 시도는 법치 부정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압승 뒤 국정 전반에 여러 가지 변화가 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중에서도 주목되는 분야가 법치주의 분야다. 많은 국민들은 집권세력과 그 지지세력에 의한 법치주의 훼손 사태가 오지 않을까 주시한다. 범여권 세력이 180석 거대 여당의 힘을 배경으로 검찰과 법원을 압박하고, ‘민주’를 내세워 ‘법치’를 부정하는 상황이 올 가능성을 주목하는 것이다.

“시민 심판 이뤄져” “윤석열은 식물 총장” 잇따르는 검찰 압박 발언

실제로 총선 뒤 범여권 인사들의 검찰 압박 발언이 잇따르고 있다. 우희종 더불어시민당 공동대표는 “촛불 민심이 윤석열 총장의 거취를 묻는다”고 했다. 조국 자녀 허위 인턴증명서 발급 혐의로 기소된 열린민주당 소속 최강욱 당선자(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는 “시민에 의한 심판은 끝났다” 며 “세상 바뀐 것을 느끼도록 갚아 주겠다”고 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윤석열은 식물 총장”이라고 했다.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당선자는 검찰이 자기 지역구 사무실을 압수수색하자 “불순한 의도”라고 했다. 황 당선자는 당원 명부를 비밀히 빼낸 혐의로 같은 지역구 경쟁자로부터 고발당했다.

이런 발언이 터져나오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검찰총장을 거론하지 말라”고 했다. 이 대표는 “2004년 열린우리당 시절 국회 과반수 의석을 얻고 교만에 빠져 3년 뒤 대선에서 패했다”며 “이럴 때일수록 신중하고 겸손해야 한다. 안 그러면 열린우리당의 전철을 밟게 된다”고 했다. ‘부자 몸 조심’하라는 당부이자 경고인 셈이다. 이 대표 발언 뒤 검찰을 압박하는 말들은 잦아들었다.

그러나 5월 말 제21대 국회가 정식 출범해서 180석 공룡 여당이 힘을 발휘하게 되면 상황은 달라질 가능성도 크다. 우선 윤석열 총장에 대한 압박과 견제가 다시 시작될 수 있다. 특히 7월 공수처가 출범하면 윤석열 검찰을 수사하라는 범여권 세력의 압박과 선동이 벌어질 수도 있다. 최강욱 당선자는 “윤석열 총장이 공수처 1호 수사 대상이 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검찰의 4·15총선 비리 사건 수사나 총선 전부터 해오다 중단한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수사 재개가 범여권이 검찰을 압박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범여권 인사들의 검찰 압박 발언에는 ‘선거에서 이겼으니 모든 걸 면죄 받고 승인받았다’는 인식과 주장이 깔려 있다. 이번 총선을 ‘조국 수호 대 조국 구속’, ‘검찰 개혁 대 윤석열 지키기’ 등 친 정권 대 반 정권 싸움으로 보고 유권자들이 ‘조국 수호’와 ‘검찰 개혁’에 판정승을 내렸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최강욱 당선자가 “시민에 의한 심판이 이뤄졌다”고 한 말은 그런 인식을 잘 보여준다. 유시민 이사장이 ‘윤석열은 식물 총장’이라고 한 것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검찰이 조국 사건이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연루자를 기소한 것은 ‘잘못’이라고 유권자들이 심판했고 따라서 윤석열은 식물 총장이 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여당 승리에는 ‘조국 수호’나 ‘검찰 개혁’ 같은 민심도 어느 정도 반영됐을 것이다. 조국 수호나 검찰 개혁을 중요하게 여기고 정부·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서 여당을 찍은 유권자도 당연히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조국 살리기’보다는 ‘조국 구속’을 지지하고 ‘검찰 개혁’ 못지않게 ‘윤석열 지키기’가 중요다고 여기면서도  다른 이유로 여당을 찍은 유권자들도 많을 것이다. 여당이 압승했다고 해서 총선 민심이 정부·여당이 하는 일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여당 압승=여당 정책과 노선 지지' 주장은 총선 민심 왜곡

조선일보가  4월 22~23일 투표에 참여했던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총선 민심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180석, 미래통합당 103석이 나온 이유에 대해 ‘통합당이 잘못해서’가 61%로 ‘민주당이 잘해서’(22%)의 세 배 가까이 됐다. 여당 후보를 찍은 이유는 ‘정부가 코로나 대응을 잘해서’(32%)가 가장 많았지만, ‘막말 논란으로 야당이 싫어서’(21%), ‘야당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싫어서’(12%), ’박근혜 정부 탄핵과 관련해 야당이 싫어서’(10%)가 더 많았다. 반면에 야당 후보를 찍은 이유는 ‘정부·여당이 민생·경제 정책을 잘못해서’가 32%, ‘조국 전 장관 논란과 관련해 여당이 싫어서’가 24%다. 야당을 찍은 투표자 중 절반이 넘는 56%가 정부·여당의 정책을 반대하거나 주장이 싫어서 야당을 찍은 것이다.

여당 승리를 현 정부가 추진하는 주요 정책에 대한 지지로 보기 어렵다는 것은 다른 항목 조사에서도 나타난다.  소득 주도 성장 정책에 대해 앞으로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30%로 ‘변화가 필요하다’(63%)는 의견의 절반에 그쳤다. 탈원전 정책에 대해서도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33%)가 ‘변화가 필요하다’(59%)보다 훨씬 적었다. 
 
투표자 10명 중 6명이 ‘여당이 좋아서’가 아니라 ‘야당이 싫어서’ 여당을 찍었고, 그나마 여당이 좋은 이유도 ‘코로나 대응을 잘해서’이지, 소득 주도 성장이나 탈원전 같은 정부·여당의 핵심 정책을 지지해서는 아니다. 검찰에 국한해서 본다면, 조국 사건이나 검찰 개혁 문제는 여당을 찍은 주요 요인이 되지는 못했다. 오히려 야당을 찍는 요인이 됐다. ‘조국 전 장관 논란과 관련해 여당이 싫어서’ 야당을 찍었다는 응답이 24%나 된다는 사실이 그 점을 보여준다. 최강욱 당선자 주장대로 여당 승리를 ‘‘시민에 의한 심판이 이뤄졌다”고 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설사 여당 승리가 ‘조국 살리기 ’, ‘윤석열 검찰 규탄’이라는 친 정권 민심을 반영한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반대의 민심도 컸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지역구 의석 수는 민주당 163석, 통합당 84석으로 거의 2대1이다. 하지만 득표율은 민주당 49.9%(1434만 5425표), 통합당 41.5%(1191만5277표)로 5대4다. 거의 대등한 수준이다. 민주당이 압승한 것은 1표라도 더 많은 후보가 당선되는 승자 독식형 선거제도 때문이지, 민심 차이가 그렇게 컸기 때문이 아니다. ‘조국 살리기 ’, ‘윤석열 검찰 규탄’을 지지하는 여론이 50%라고 주장한다면 그 반대 여론도 41%에 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의석 수보다는 득표율이 실제 민심에 더 가깝다. 따라서 여당이 의석 수에서 압승했다고 해서 실제 총선 민심에서도 압승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여당이 압승을 내세워 조국을 기소한 검찰을 개혁 대상으로 몰고가고 윤석열 총장을 사퇴시키거나 식물 총장으로 만들려 한다면 총선 민심을 왜곡하는 일이다. 더 나아가 민주주의를 앞세워 법치를 부정하는 것이다. 사실 이게 더 본질적이고 중요한 문제다.

현 집권세력이나 그 지지세력은 전부터 ‘민주’는 ‘법치’ 위에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해 왔다. 헌법재판소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정수도 이전을 위헌이라고 결정하자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선출된 권력에 도전한다”며 헌재를 맹비난했다.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됐으니 행정수도 이전은 국민의 뜻이고 민주주의의 산물인데, 어떻게 감히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리느냐고 주장했다. 통진당을 위헌 정당으로 보고 해산 결정을 내렸을 때도 일부 진보 좌파 인사들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통진당 허용 여부는 국민이 국회의원 선거에서 표로 심판할 문제지 헌재가 심판할 일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두 경우 모두 ‘선출된 권력’( 대통령이나 국회)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검찰이나 법원)보다 위에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다.

범여권 인사들의 법치 부정,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가 막아야

그러나 이런 주장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관계를 왜곡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서로 보완하고 견제하는 관계이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 위에 군림하는 관계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선거로 권력을 선출함으로써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 권력은 국가와 사회를 규율하고 통제하는 법을 만든다. 법에 의한 규율과 통제가 법치주의다. 이런 점에서 법치주의는 민주주의의 산물이고 민주주의의 통제를 받는다.

그러나 동시에 법치주의는 민주주의를 통제한다.  아무리 국민이 선출했다고 해도 선출 과정에서 불법이 있었다면 무효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민주적으로 선출된 국회이고 대통령이라고 해도 법을 만들거나 권력을 행사할 때 법을 어기면 그 역시 무효가 된다. 헌법재판소가 행정수도 이전과 통진당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법치주의의 통제를 보여주는 한 사례일 뿐이다.

최강욱 당선자는 자기에 대한 검찰 기소를 “윤석열 총장의 불법 지시에 의한 정치적 기소”라고 주장했다. 그는 검찰 기소가 잘못됐고 자기가 억울하다면 재판에서 입증하면 된다. 그게 바로 법치다. 그러나 ‘시민에 의한 심판은 이뤄졌다’, ‘세상이 바뀐 것을 느끼도록 갚아 주겠다’고 하는 것은 별개 문제다. 선거에서 이겼다고 해서 검찰 기소가 잘못됐다는 심판이 내려진 듯 주장하는 것은 민주를 내세워 법치를 부정하고 훼손하는 일이다. ‘윤석열은 식물 총장’이라고 해서 그의 검찰총장 지위를 무력화하거나, ‘촛불 민심이 윤석열 거취를 묻는다’ 고 해서 그를 자리에서 몰아내려 하는 것 역시 ‘민주’를 앞세워 법치를 부정하고 훼손하는 일이다. '민주'라는 다수의 힘, 선출된 권력임을 앞세워 법을 무력화하는 일이다.

앞으로 ‘총선 민심’이라는 것을 내세워 검찰과 법원을 쥐고 흔드는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법치의 핵심은 힘 있는 사람, 힘 있는 집단부터 법의 지배를 받게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검찰과 법원 등 법 집행 기관들이 아무리 권력자, 권력 집단이라고 하더라도 ‘불법에는 불법’이라고 분명히 선언할 수 있어야 한다. 검찰과 법원이 권력 눈치를 살펴 불법을 합법이라고 하거나 어물거리는 순간 법치는 이미 죽은 것이나 같다.

여당이 압승했다고 범여권 세력이 검찰과 법원을 쥐고 흔들어 권력 하수인으로 몰아간다면 우리는 법치 후진국 신세를 면할 수 없다. 범여권 세력의 법치 훼손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다.  우리가 법치 후진국으로 남느냐 아니냐는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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