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 ​'세 개의 전쟁' 전사들에게 힘을 실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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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논설고문 · 서울 시립대 교수
입력 2020-03-01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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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국무총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비상체제로 전환된 대구시청을 방문해 권영진 대구시장으로 부터 보고를 받고 있다. (사진=문화체육관광부 제공).





정통과 이단(異端)은 인간의 영역 어디에서나 나타나지만 특히 종교에서 이단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란이 벌어진다. 모든 종교는 초기에 이단으로 출발했다. 이단이 정통과의 싸움에서 이기면 새로운 정통이 된다. 이단이 나쁜 것이 아니라 사교(邪敎)가 나쁘다. 신천지가 국내외에 선교활동을 하고 신도들을 모아 예배를 보는 것은 종교의 자유에 속하겠지만, 코로나의 창궐 과정에서 감염병예방법을 위반했거나 교단 돈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난다면 그에 따른 처벌을 받아야 한다.

청와대가 여야 대표들에게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신천지 교회 신도의 유증상자 중 코로나 양성 판정 비율이 87.4%이고 증상이 없는 신도도 72.9%였다. 신천지 교회가 일본 요코하마항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처럼 코로나균의 배양접시가 돼버린 것이다. 크루즈선 승객들은 배 안에 갇혀 있었지만 신천지 신도들은 주말마다 예배를 보며 코로나를 교회 안팎에서 확산시킨 데 더 큰 심각성이 있다.

대구의 신천지 교인들이 모두 검사를 마칠 때까지 확진자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확진자 8명이 나온 지난달 16일 신천지 과천교회 예배에 전국에서 9930명이 참석했다. 인구 2400만이 몰려 살고 국가의 중심기능이 있는 수도권으로 불길이 옮겨 붙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신천지 교인들이 예배하는 동영상은 일반 교회의 모습과는 달랐다. 마루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상체를 좌우로 흔들고 박수를 치며 예배를 드렸다. 6·25전쟁 후 한국교회 부흥기에 볼 수 있었던 예배 방식이다. 입원 중이었던 31번 환자가 이런 예배에 두번이나 참석했다.

그렇다면 31번 환자 같은 신천지 교회의 조기감염자들은 어디서 코로나를 얻은 것인가. 신천지교회가 홈페이지와 유튜브 영상 등을 통해 공개한 해외 포교 현황을 보면 포교활동의 중심인 '시온기독교선교센터'가 중국에서 우한과 베이징, 상하이, 칭다오, 다롄, 톈진, 선양에서 지부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만희 교주, 공개 사과하고 신도에 "당국 조사 협조" 당부하라

홍콩의 유력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우한의 신천지 교인들이 작년 12월까지도 포교 활동을 하다 1월 말 춘제(설) 때 고향으로 갔다"고 중국의 신천지 교인들을 인터뷰해 2월 26일 보도했다. 우한에서 포교활동을 한 한국 신천지 교인들이 잠복기 상태로 입국한 후 2월 초 신천지 대구교회 예배에 참석해 대규모 감염을 유발시켰을 가능성이 유력하다.

신천지가 신도 명부, 전국의 교회와 선교센터 주소를 당국에 제출했지만 아직도 신도들이 동선을 숨기거나 투명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신천지 교주 이만희씨가 기자회견을 해 신도들에게 당국의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외출과 집회 참석을 자제하라고 당부하는 것이 옳다. 교주 이씨와 신천지 간부들이 '피해자' 운운하는 논쟁을 벌일 일이 아니라 종교인으로서 도의적 책임감을 갖고 국가위기 극복에 발 벗고 나서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세월호의 소속사 청해진해운의 회장이었던 구원파 교회의 유병언이 떠오른다. 그는 청해진해운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자 고령에 도피행각을 벌이다 야산의 텃밭에서 사체로 발견됐다. 요즘도 '그가 살아 있다'는 음모론이 있지만 나는 방송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그의 시신을 병원 안치실에서 확인했다. 밭에서 그의 시신을 수습한 장의사 직원도 인터뷰했다.

정부·여당과 친여권 사람들이 신천지에 삿대질을 한다고 해서 정부·여당의 책임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신천지 교회의 집단발병이 나기 전에는 지하철을 타면 마스크를 쓴 사람이 3분의1에 못 미쳤다. 요즘은 99%가 착용하고 있다. 코로나 공포감이 대한민국의 하늘을 덮고 있는데 마스크를 사려고 편의점에 가도 없고, 약국에 가도 없다. 대구에서는 마스크를 사려고 긴 행렬이 늘어섰다. 마스크 관리도 못하면서 코로나를 어떻게 잡겠다는 건가.

미국은 중국과 이란에 대해 최근 14일 이내에 그 나라를 방문한 사람의 입국을 전면 금지시켰으면서도 한국에 대해서는 여행금지를 대구에 국한했다. 워싱턴주에서 대구를 방문하고 돌아온 여성이 코로나 양성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한국에 대해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 합리적 판단이다. 한국의 검진 및 의료역량 , 정부의 투명성을 평가한 것이다.

중국의 무례, 미국 조치 합리적

미국의 중국인 전면 입국금지는 미국이니까 가능한 조치다. 야당이 중국을 통한 입국자를 전면 통제하라고 주장하지만 일본도 못하고 있다. 다만 우리가 괘씸한 것은 우한 폐렴 발생 초기에 중국에 원조물자도 보내고 전면 입국금지도 안 시켰는데 중국의 지방도시들이 한국에 사전 통보도 하지 않고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들을 격리시킨 소행이다.

한 전직 대사는 “한·중 관계가 이렇게 된 것은 한국이 자업자득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도미타 고지(冨田浩司) 주한 일본대사와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는 2월 7일 신임장을 함께 제정했는데, 도미타 대사는 한국에 들어와 두달 여나 기다리다가 했고, 싱 대사는 입국한 지 8일 만에 했다. 중국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 나머지 다른 나라에 우선한 특혜를 부여할 이유가 없다.

소련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소련의 요구에 순응한 핀란드의 외교 정책을 핀란디제이션(Finlandization)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국이 중국의 덩치에 눌려 핀란디제이션을 할수록 중국은 무리하고 무례한 짓을 서슴지 않는다. 싱하이밍 대사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신임장도 제정하기 전에 “여행과 교류를 불필요하게 막을 필요가 없다”고 압박성 기자회견을 했다. 심각한 외교적 결례다.

우리는 세 개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하나는 코로나와의 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전쟁이고, 셋째는 외교전쟁이다. 여든 야든 국난을 맞아 모든 것을 진영논리로 몰고 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대구에서 전쟁을 치르는 정세균 총리와 권영진 대구시장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정 총리는 대구에서 불길이 꺼지기 전까지는 서울에 올 생각을 말라. 쇼트커트 머리를 한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도 오송을 떠나 대구에서 지휘를 하는 것이 좋겠다. 대구의 불길을 꺼야 대한민국의 코로나 재앙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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