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필립스코리아 일선 대리점에 갑질 정황… 판로 확보하니 "계약 연장 의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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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기자
입력 2020-02-11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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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가전부터 의료기기까지 제조·판매하고 있는 대기업 필립스코리아가 일선 대리점들에 이른바 ‘갑질’을 한 정황이 드러났다. 수년에 걸쳐 대리점들이 영업활동을 해 판로를 확보해 놓으면 대리점 계약을 해지해 거래처를 가로채 간다는 것이다.

10일 아주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2014년 필립스는 의료기기 사업 부문에서 각 지역별 영업판매 대리점을 모집하고 거래를 지속해 오다 2020년 3월 6개 대리점과 계약을 일방적으로 거절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재계약 희망 시 10억~15억원가량의 보증금을 내라고 요구한 정황도 포착됐다.

이에 대해 필립스 측은 “보증금이 아닌 거래 상 위험을 줄이기 위한 ‘담보 물권’에 대한 기준에 해당된다"면서 "담보 규모는 대리점의 신용 등급, 담보 능력, 과거 지급 실적 등의 항목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조정된다"고 설명했다. 보증금 요구가 대리점 계약을 종료하지 않는 대가가 아니라는 것.

하지만 필립스의 해명은 사실관계와 다소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본지가 입수한 문서에는 ‘의료기기판매대리점계약상 계약기간이 만료함에 따라, 더 이상 계약을 연장할 의사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라고 명시돼 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CT나 MRI 같은 특수 의료 장비의 경우 고객 개척부터 판매까지 적어도 3년 정도가 소요된다. 그만큼 오랜 시간 영업에 공을 들여야 하는 셈. 필립스 측도 이를 인지하고 대리점 모집한 이후 5년간 변동없이 계약을 자동 연장해 왔다.

이 때문에 갑작스런 ‘보증금’ 요구와 ‘계약 거절' 통보 배경을 두고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최근 필립스 측이 전국망을 대상으로 영업하고 있는 D사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의혹이 커지고 있다. 6개의 기존 지역별 대리점을 제치고 새로운 회사와 계약을 체결한 것. 현재 D사는 기존 대리점들과 거래하던 병원들을 대부분 거래처로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들은 필립스의 이 같은 '변심'이 소규모 업체를 이용한 특수의료장비 판매 수요가 정체단계에 들어선 것과 관련이 깊다고 보고 있다. 결국 소규모 대리점들을 이용하기보단 전국망을 가지고 있는 회사와 계약해 수익을 올리겠다는 것.

업계에서는 "수익성 악화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시장에 뛰어들겠다는 것을 반드시 나쁘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기존 대리점주들의 피해가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의료계에서 암암리에 진행돼 온 '병상 사고 팔기' 관행 때문이다.

의료법은 특수의료장비의 경우 200병상 이상의 병원에 설치가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0병상 미만인 의료기관의 경우 다른 의료기관과 공동활용해 200병상 이상이면 설치가 가능한데, 바로 이 '공동활용'이 문제다. 

필립스 대리점들은 지금까지 200병상이 안되는 병원에 장비를 팔기 위해 대량으로 병상을 확보해 두고 있었다. '공동활용'을 명목으로 군소병원의 병상을 직접 구매해 200병상 이상의 병원으로 만들어 MRI·CT 등 의료기기를 판매했던 것. 

업계에 따르면 병상은 1개당 100~15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음성적이지만 대리점들로서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300병상 이상의 대형병원의 경우 필립스가 직접 영업을 했기 때문이다. 대리점들은 200~300병상 사이의 중간급 규모의 병원들만 영업을 할 수 있었는데 시장이 그다지 크지 않다.  

게다가 CT와 MRI 등 특수의료장비 시장의 경우 국내에서는 필립스를 포함한 4개의 기업이 전체의 약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기 때문에 대리점으로서는 다른 방도가 없다.

하지만 필립스가 계약을 거부하면서 상당한 규모의 병상을 확보해 왔던 판매대리점들은 막대한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게 됐다. 기존에 거래를 해오던 병원과의 관계도 끊어지는 등 피해를 입고있다. 

한편 필립스는 표준약관인 대리점 계약서 조항을 들어 1년 단위로 재계약 할 수 있도록 하였으므로 적법하다고 주장한다. 현재 사업 구조의 경우 대리점이 장비를 재판매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의료장비 영업 상 손해는 필립스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사진=김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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