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이란 제재, '시아파 벨트' 시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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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미 기자
입력 2019-12-03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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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대이란 제재로 이란 경제 직격탄...충격파 시아파 벨트로 뻗어나가

중동의 '시아파 벨트'가 흔들리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위시한 수니파 진영에 맞서 중동 패권을 두고 경쟁하는 이란, 이라크, 레바논 등 시아파 국가들이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어서다. 지난해 미국의 대이란 경제제재 부활로 인해 시아파 맹주 이란의 경제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그 동맹국들까지 연쇄적으로 충격파가 전달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란은 휘발윳값 인상으로 시작된 2주째 반정부 시위가 전국을 휩쓸고 있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지금까지 시위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사망자가 최소 208명으로 집계됐다고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가 2일(현지시간) 밝혔다. 실제 숨진 사람이 400명을 넘을 수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앰네스티 만수레 밀스 이란 연구원은 "우리는 아주 짧은 시간에 200명이 넘는 사람이 죽는 것을 봤다"며 "이는 (이란) 이슬람공화국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관측통들은 이란의 현재 상황을 1979년 입헌군주제 팔라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이스람 종교 지도자를 최고 권력자로 세운 이슬람혁명 후 40년 만에 최악의 혼란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란 정부가 인터넷을 끊고 시위대에 실탄을 발포하면서 강경 진압에 나서고 있는 것 역시 이런 위기감을 반영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란의 시위를 촉발한 건 지난달 이란 정부의 기습적인 휘발윳값 인상이었다. 그러나 미국 제재로 인한 재정난과 민생고, 부패와 불평등 같이 묵혀있던 분노가 휘발윳값 인상을 계기로 한꺼번에 분출된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특히 미국이 이란 핵협정에서 탈퇴한 뒤 이란산 원유 금수조치를 포함해 대이란 경제제재를 부활시킨 것이 이란 경제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란의 원유 수출량은 지난해 4월 일일 250만 배럴에서 최근 25만 배럴까지 떨어졌다. 원유 수출에 의존하던 국가 재정이 흔들리고 이란 리알화 가치가 곤두박질치면서 식료품 가격에서 임대료, 소비까지 파장을 던졌다. 지난해 수도 테헤란 임대료 상승률은 70%에 달하고 리알화 대신 달러로 지불하라는 요구까지 등장할 정도라고 한다. 올해 물가상승률은 40%에 육박하고, 내년 실업율은 18%를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

미국의 대이란 제재 여파는 이란을 넘어 이라크와 레바논 등 시아파 주변국까지 전달됐다. 최근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이들 3개국에서 국민들의 경제 위기감은 미국의 대이란 적대정책 때문에 더 심화됐다"고 지적했다. 이란의 후원을 받는 시아파 세력이 이들 3개국의 정치체제를 떠받치고 있지만, 미국의 이란 제재 파장이 이란의 동맹국들까지 연쇄 피해를 입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레바논에선 이란의 지원을 받던 재향 군인과 시아파 노동계급에 대한 복지 혜택이 줄어든 상황에서 국민 메신저 왓츠앱에 대한 세금 징수 계획이 나오자 민심이 폭발했다. 레바논 정부가 스마트폰 메신저에 하루 20센트(약 230원)의 세금을 부과한다고 발표한 것이 경제난에 시달리던 민중의 분노에 불을 댕겼다. 사드 하리리 레바논 총리가 시위 보름만에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곳곳에서 시위가 과격화하는 양상을 보이면서 긴장감이 계속되고 있다. 

이라크는 10월 1일부터 민생고와 정부의 부패, 무능을 규탄하는 반정부 시위 시작됐다. 두달 만에 행정부 총책임자인 아델 압둘-마흐디 총리의 사임으로 이어졌다. 이란은 이라크에 강경 진압을 주문하면서 미국의 제재에 굴하지 않는다는 점을 과시하려 했으나 되려 이라크의 반이란 정서에 불을 떼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 이라크 시위대는 이란의 정치적 영향력이 큰 도시에 소재한 이란 영사관에 불을 지르고 이란 국기를 불태우면서 반이란 정서를 표출했다.

이란이 지원하는 정부 세력에 대한 반감이 심해지면서 역내 이란의 입김이 약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시리아 등 중동 각지에서 영국 대사를 지낸 존 제킨스 경은 최근 가디언 인터뷰에서 "이란이 억압받는 이들을 보호하고 부패한 자들을 벌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지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멀고 희미해지는 메아리만 남았다"면서 "현재 이라크, 레바논, 이란의 시아파 시위대들은 이미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들은 이란의 최고 종교지도자가 이끄는 천국이 아니라 그저 더 나은 삶을 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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