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 프리즘] ​ 무원칙.무논리.무사고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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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 경희대 교수
입력 2019-09-09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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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 교수 ]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의 임명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청와대의 졸속 의사결정이 문제를 야기한 경우를 자주 목격했다. 우리 외교정책의 의사결정 과정은 어떤가?  우려스럽지만 무원칙, 무논리, 무사고(無思考)로 정의할 수 있다. 이런 하자들은 최근 대일 무역 갈등,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갱신 포기와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주변국과의 공조 문제 등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외교에서 무원칙, 무논리, 무사고는 무목표, 무정책, 무전략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역으로, 무목표, 무정책, 무전략이다 보니 무원칙, 무논리에 무사고적인 외교를 펼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모든 결정이 시간의 여유와 인내 없이 조급하게, 성급하게, 신속하게 이뤄져 졸속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이에 희생되는 것은 국민뿐이다. 정부가 설명과 이유 없이 졸속 외교를 펼치려니 선동과 선전의 수단과 방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문도 모르던 국민들은 정부가 선동과 선전을 위해 선택한 자극적인 단어와 용어에 격분하게 되고 사회는 곧 양분화되어 서로 간 험담하고 물어뜯는다. 이를 위해 국민이 지불해야할 사회적 비용은 우리 경제의 부담과 손실로 고스란히 돌아온다. 정부의 선동에 국민은 이성을 잃어버린 나머지 감정싸움에 매몰되어 사회는 혼란에 빠지기 십상이다. 감정이 격해지면 이성에 귀를 기울일 수 없는 게 인간이다. 그러면서 여론이 정부에 1%만 유리하게 나와도 민주주의의 ‘다수결’원칙이라며 정부는 자신의 선택과 결정을 합리화한다.

그런데 정부 인사의 발언에서 더 경악스러운 사실은 이들이 자신들의 결정이 가져올 결과를 모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알면서 우리 국민의 반응과 행태를 이용해 정부의 선택과 결정을 합리화하겠다는 발상 자체다. 이런 발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결국 의사결정과정에서 고민을 배제하겠다는 뜻이다. 고민의 부재는 결국 자신의 소신과 신념을 관철하는 데 있어 선동과 동원과 같은 수단 외에 다른 방법은 필요 없다는 식이다. 이런 고민 없이 군중의 동원과 선동에만 의존해 정책을 밀고 나가는 통치체제를 우리는 독재, 전체주의, 권위주의라고 한다.

전체주의, 권위주의와 독재 통치 형태의 특징은 정부의 소신과 신념이 국민의 것과 일치한다고 착각하는 데 있다. 우리 정부는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나라라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정부가 반대 의견을 여론의 이름으로 무시하는 것을 종종 목격해왔다. 민주주의정치에서 정쟁과 논쟁을 하는 이유는 반대 의견과의 입장 차이 축소를 통해 국민의 공감대를 확장시키고 나라에 더 건설적이고 유익한 의견과 제언을 모든 진영에서 유추해 국익에 보탬을 주기 위해서다.

지난 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에서 지소미아 갱신 포기의 후과와 관련된 질문 중 우리 국방장관의 해답은 경악스러웠다. 우리 정부의 지소미니아 갱신 포기 결정을 반길 나라의 질문에 그는 북한, 중국과 러시아라고 답했다. 이를 알고서 내린 우리 정부의 결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나. 미국과 일본의 불만이 자명할 것을 알면서 내렸다는 결정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정부는 외교를 아직도 항쟁의 개념으로 취급하고 있다. 우리가 자주독립적인 국가인지 이미 70여 년이 넘었는데 왜 항쟁의 프레임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스스로 가두는지 모를 일이다. 특히 일본과의 외교 문제에서 항쟁 멘탈은 온 나라를 이성을 잃게 만든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정부가 의사결정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선택과 결정을 정당화한 데 있다. 21세기 외교에서 자주와 독립을 강조하는 어처구니없는 처사다.

국가안보회의실의 한 인사는 한·일 무역 갈등의 중재를 미국에 요청하지 않은 이유를 미국에 호구 잡히지 않기 위함이라는 상상조차하지 못할 답변을 했다. 대신 그의 방미 이유는 우리의 입장을 설명하기 위함이라 했다. 이것이 워싱턴까지 가야했던 사안이었나. 그는 얼마 후 지소미아 갱신 포기와 관련하여 미국과 긴밀한 협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 협의는 9차례의 통화로 이뤄졌다. 두 경우 서로 반대되는 접근방식이 모름지기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우리 외교의 현실은 두 가지 면모를 갖추고 있다. 하나는 미국의 동맹체제의 구속을 받는다. 그러나 구속을 받는다고 해서 자주적이지 못하고 독립적이지 못한 것은 아니다. 제약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제약을 극복해 자신의 이익과 신념을 관철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그게 바로 외교를 하는 이유다.

또 다른 면모는 다른 나라와 똑같이 우리 또한 세계화와 상호의존이 심화된 세상에서 살고 있다. 국제분쟁과 갈등문제에서 우리만의 해결법이 없다. 공감과 지지의 확보는 필연적이고 이런 전제 속에서 우리의 신념과 이익 추구가 보장된다. 제 아무리 약소국의 침공을 받아도 이를 독자적으로 격퇴한 나라의 경우는 냉전시기 이후 거의 없다. 북한의 핵위협이나 재래식 무기의 위협이 얼마가 되든 우리가 그런 위협을 가지고 사는 한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국제공조의 망을 견고하게 짤 필요가 있다.

정부는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의 임명을 여론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여론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식의 의사결정이 외교에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어 심히 우려스럽다. 여론도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국내 정치 분위기와 여론을 국제사회가 이해할 리 만무하다. 그래서 외교가 필요하다. 진정으로 우리 국민의 의견을 국제사회에 전달하고 우리의 신념과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선 말이다. 그 수단과 방법은 감성팔이에 젖은 호소로는 역부족이다. 냉정하고 이성적인 통찰력을 기반으로 몇 수 앞을 읽을 수 있는 혜안으로 원칙, 논리와 전략을 마련하는 것만이 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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