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수돗물 100일] ① 적합·적합·적합…그러나 시민 불안은 '빨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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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숙 신동근 홍승완 기자
입력 2019-09-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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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해보상 접수 불구 시민들 불안은 계속…접수액 100억 달해

  • 시민들 "여전히 냄새나고 불안…필터 이전보다 빨리 오염돼"

  • 인천시 "검사해보면 정상, 피해구제 기간 늘리려 민원 제기"

 


지난 5월 30일 인천에서 발생한 붉은 수돗물 사태가 오는 6일로 발생 100일을 맞는다. 생존에 필수적인 수돗물의 오염으로 수십만 해당 지역 시민들은 불안에 떨었고 많은 국민들이 수돗물을 불신했다. 그럼에도 사태 수습과 문제 해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시민들의 불안은 분노로 바뀌고 있다.

6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인천 서구 지역 적수(赤水) 유입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왔으며, 무려 2만9116명이 서명을 했다.
 

[사진=청와대 청원게시판 캡처]


붉은 수돗물 사태는 피해규모도 엄청나다. 인천시가 집계를 한 피해추정 가구만도 26만1000가구, 피해추정 업체만도 3만 곳에 달한다. 그야말로 대란이다.

수돗물 오염 사고는 인천에서 끝나지 않았다. 서울 영등포구, 경기 안산시, 경북 포항시 등 전국 곳곳에서 수돗물 피해 사례가 접수됐다. 수돗물 불안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환경부와 각 지자체는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사태발생 100일이 지난 지금도 불안과 불만은 줄지 않고 있다. 박남춘 인천시장은 지난 8월 5일 기자회견을 열고 7월 말 기준으로 공촌수계 수질은 사고 이전으로 회복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수돗물 대란 피해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의 목소리는 달랐다. 여전히 수돗물을 안심하고 먹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인천시가 내놓은 피해보상 정책에 대해서도 불만은 높다. 인천시는 1일 지난달 12일부터 30일까지 진행한 붉은 수돗물 피해 보상 접수에 총 4만485가구와 805개 업체가 보상금 92억8100만원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피해가구 중 16%, 피해업체 중에서는 3%만 보상신청을 한 것이다. 일괄적 피해보상이 아니라 피해자들이 입은 손해사실을 직접 증명해야 하는 방식은 피해를 입은 시민들의 불편을 오히려 가중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주민들은 소송까지 준비하고 있어 수돗물 대란 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인천뿐만 아니라 수돗물 피해가 발생했던 지역 곳곳에서도 여전히 수돗물을 믿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당장 현재 수돗물 공급에 사용되는 수도관들이 상당부분 노후됐다는 사실은 이 같은 불안을 더욱 가중시킨다.

전문가들은 이번 수돗물 대란 사태는 우리나라의 수돗물 행정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행정 시스템을 방치했다가는 앞으로 비슷한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단 사건이 발생할 때 바로 대응할 수 있는 대응팀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 수십년간 방치됐던 노후된 시설의 교체는 물론이고 체계적 점검을 위한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제안들이 나왔다.

이를 위해서는 일단 현재 수돗물 공급 체계에 대한 철저한 현장파악이 우선돼야 한다. 특히 쏟아내기식 대책 마련이 아닌,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유기적 협력이 요구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

<아주경제>는 인천에서 시작된 수돗물대란 100일을 맞아 수돗물 피해현장의 목소리를 다시 들어보는 것을 시작으로 수돗물 공급 체계 전반과 향후 대안 마련을 위한 전문가들의 제언을 듣는 심층기획 보도를 5회에 걸쳐 연재한다.
 

5월 30일 붉은 수돗물 사태가 발생한 뒤 한 가정의 수돗꼭지 필터에 이물질이 껴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상화됐다고 하면 뭘 합니까? 아직 수돗물을 믿을 수가 없는데. 인천시에서 정상화됐다고 해도 저는 이제 생수 먹을 겁니다."(8월 28일 네이버카페 검암애맘에 올라온 피해자 글) 

인천에서 붉은물 수돗물 사태가 발생한 지 3개월이 훌쩍 넘었다. 그러나 여전히 피해지역 주민들은 불안하다. 지자체는 수질이 정상화됐다고 발표했고 피해보상 접수도 이미 지난달 말에 마감됐다. 그러나 기존보다는 확연하게 빠른 속도로 검게 변하는 필터를 끼우고 하루하루를 견디는 주민들은 의심을 거두기 힘들다고 호소한다. 붉은 수돗물이 나온 지 100일. 상수도행정에 대한 신뢰는 회복되기는커녕 여전히 '빨간불'이다.
 
◆"안심하고 음용하세요" 문구 빠진 수질검사 자료

2019년 5월 30일 인천광역시 상수도사업본부 홈페이지에 올라온 원·정수 및 수도꼭지 수질 검사결과 자료에는 "인천의 수돗물 '미추홀참물' 안심하고 음용하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러나 그날 오후부터 인천 서구 검암·백석·당하동 가정집에서 붉은 물이 흘러나온다는 민원이 접수됐다. 

당초 검사가 이뤄졌던 같은 달 7일 이후 정수장의 급수구역을 교체했지만, 이후 가정집으로 공급되는 수질은 따로 점검하지 않은 탓이다.

붉은 물 사태가 불거진 이후 인천광역시 상수도사업본부가 6월 10일 실시한 수질검사 결과표에 따르면 4개 취수장, 7개 정수장, 184개 수도꼭지를 대상으로 실시한 수질검사에서 나온 수돗물은 모두 먹는 물 수질 기준 '적합'이었다. 다만 "안심하고 응용하세요"라는 문구는 빠졌다.  

인천광역시 상수도사업본부 급수부 민동욱 담당자는 지난달 30일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홈페이지에 올린 수질검사는 5월 7일에 채취된 수돗물을 대상으로 이뤄진 것으로, 검사는 3주 정도 걸린다. 그러다 보니 결과가 적합으로 나왔더라도 실제 가정에 나오는 물과는 수질이 다를 수 있다"고 해명했다. 

또 안심하고 음용하라는 문구가 빠진 이유에 대해서도 "붉은 수돗물 사태 이후 시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자극적인 문구는 빼자'는 의견이 내부에서 나와 삭제했다. 6월과 7월에 실시된 수질도 검사 결과 적합으로 나왔다. 그러나 아직 해당 문구(안심하고 음용하세요)를 추가할지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수질검사는 적합이라면서도 수돗물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커, 지자체의 보증이 담긴 문구를 전면 배치하기가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붉은색 없애는 약 넣은 거 아니냐"··· 수돗물 불신 극대화

피해자 접수 마지막 날인 지난달 30일 인천 서구 당하동 행정복지센터에는 주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붉은 수돗물 피해자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곳 중 하나인 당하동 주민들은 지난달 4일까지의 피해사항을 접수하면서 불안감을 줄곧 호소했다. 

인천 서구 당하동 새마을부녀회 회장인 윤필선씨는 "수돗물은 앞으로 못 먹는다고 생각한다"고 단정했다. 윤 회장은 "지금도 (필터가) 금방 까맣게 변한다는 사람들이 많다. 내 집도 그렇고 주변에서 예전보다 필터가 금방 더러워진다는 이야기가 계속 들리는데 (수질이 정상이라는) 지자체의 발표를 어떻게 믿을 수 있냐"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당하동 피해보상센터에 피해 접수를 하러 온 40대 부부 조서진·김종철 씨도 지자체의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다고 호소했다. 조씨는 "예전보다는 물 색깔이 덜 변하는데 요즘에는 약냄새가 많이 난다"면서 "색이 변하지 않도록 어떤 약물을 쓴 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든다"고 말했다. 인천시가 실제로 수질을 개선한 것이 아니라 눈가림을 위해 약물처리를 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씨는 "학교나 공공기관에서 정상화가 됐다고 하니까 인천시 전체가 정상화됐다고 하는 것 같다"면서도  "그런데 학교의 정수기는 세번 걸러지는 필터를 장착하지 않았나? 그런데 각 가정이 그 정도의 정수를 할 여력은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6월 1일 인천 서구 3단지 피해자들이 네이버 카페 달콤한 청라맘스에 올린 피해 사진들 [사진=네이버카페 달콤한 청라맘스 ]


피해보상센터에 나온 또 다른 시민들도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피해 시민은 "노후 상수도가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단계적으로 계획을 어떻게 세울 것'이라는 정도를 알려주면 좋겠다. 지금 사는 곳을 떠날 것도 아니고, 사후 대책에 대해서 제대로 들어야 믿음이 생길 것 같다"고 강조했다.

무조건 발뺌으로 일관한 자치단체의 대처에 실망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피해시민은 "잘못을 하지 않았다고 해명하고 시간을 끄는 사이에 차라리 빨리 대처에 나서 피해를 막았으면 좋겠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한편 정창화 인천수돗물피해보상 TF팀 팀장은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사고가 난 뒤 시민들의 요구대로 주요 지점을 대상으로 수돗물 표본검사를 실시했는데 모두 기준치 이내로 정상치가 나왔다"고 강조했다. 

피해자들의 불만이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피해보상 시점을 8월 4일로 정한 이유에 대해서도 시민들의 요구를 수용한 결과라고 정 팀장은 밝혔다. 최종적으로 수질검사를 실시했으며, 주민들 설명회 등에서 수돗물이 예전대로 돌아왔다는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내린 결론이라는 것이다. 

인천시는 지난달 5일 수돗물 수질 정상화를 선언했다. 정 팀장은 "원래 정상화 발표는 7월 말에 하려고 했지만, 자꾸 여기저기서 나온다는 주민들의 불만이 이어져 이를 반영한 뒤에 정상화 발표를 했다"고 강조했다. 

수돗물에 여전히 문제가 있다는 시민들의 목소리와는 배치되는 해명이다. 이에 대해 정 팀장은 "정상적인 수돗물에도 이물질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결국 필터는 더러워지게 된다"면서 "수돗물을 모두 확인해보면 정상수치로 나오는데 일부 주민들이 피해보상 기간을 늘려달라는 차원에서 자꾸 민원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붉은 수돗물 피해 발생 100일이 가까워진 지난달 28일에도 온라인상에서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회원 1만4646명을 거느린 온라인 커뮤니티인 네이버의 검암애맘 카페 회원이며 '검암1승후승우맘' 회원명을 사용하는 피해자는 "지금 필터 갈고 2시간 뒤면 필터가 누렇게 변하고 검은 알갱이가 달라붙고 난리도 아니다"라고 불안을 호소했다. 다른 피해자 회원들도 "3일 만에 필터를 바꿔야 할 지경이 됐다. 도대체 뭐가 정상화라는 거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피해접수 현장에서도 온라인에서도 시민들은 여전히 불안을 호소하고 있지만, 인천시는 수질이 이전과 같은 수준으로 되돌아 왔다고 적합만을 외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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