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청약자 볼모 잡은 금결원-감정원 '밥그릇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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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본 부국장
입력 2019-07-2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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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동본 부국장 겸 건설부동산부장

[구동본]


밥그릇싸움엔 오로지 이해 당사자 간 이기주의만 있을 뿐이다.
각자의 이익이나 권력을 쫓는 탐욕이 넘쳐난다.
이 싸움은 볼썽사납긴 하지만 그나마 참을 만 하다.
싸움이 제3자에 피해를 준다면 상황은 다르다.
피해가 단순한 불편이라도 용납될 수 없다.
하물며 타인에 불이익을 준다면 그건 범죄행위다.
공공의 이익이나 가치를 해치기 때문이다.
요즘 금융결제원(금결원)과 한국감정원(감정원) 간 밥그릇싸움이 한창이다.
아파트 청약 사이트 ‘아파트투유’ (APT2U) 시스템 이관이 쟁점이다.
이 시스템은 지난 2000년 구축돼 20년간 운용됐다.
그 주체는 민간 금융전산기관 금결원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9월 이 시스템의 감정원 이관을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감정원은 국토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금융위원회 감독을 받는 민간기관의 전산시스템이 옮겨가는 것이다.
그 시기도 오는 9월까지로 못 박았다.
이에 금결원은 겉으론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이관에 소극적이고 비협조적이라고 한다.
표면적으로 노조가 앞장서서 이관 저지에 나서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감정원에 대한 금결원 청약업무 이관 시 금융실명제법 위반 문제도 불거졌다.
청약업무를 이관하려면 불가피하게 청약통장 관련 개인 금융정보를 넘겨야 한다.
이는 엄밀하게 보면 개인정보 유출에 해당돼 처벌받게 된다.
감정원이 공공기관이더라도 비금융기관이란 게 이유다.
청약통장 관련 개인 금융정보 이관에는 공공성보다는 금융 전문성이 중요한 것이다.
감정원은 당초 금융위 유관해석 만으로 이런 개인 금융정보를 넘겨받으려 했다.
그러나 금융위는 감독대상 민간기관의 금융정보 제공을 거부했다.
금결원과 감정원 간 밥그릇싸움이 국토부와 금융위 간 대리전 양상으로 비화됐다.
결국 국토부는 주택법 개정을 통해 감정원이 금융정보를 제공받는 방법으로 우회로를 찾았다.
관련 입법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
금결원의 이관 협조에도 이 문제 해결 없인 감정원이 관련 서비스를 할 수 없다.
이관 대상 시스템은 청약 전산망이다.
청약통장 가입자 약 2500만 명이 관리 대상 고객이다.
이 사이트 접속자도 하루 20만 명이 넘는다.
전산망 운영에 작지 않은 조직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사업 수행에 따른 직·간접 수익도 생긴다.
금결원 관련 조직은 고객센터 직원 20명을 포함 모두 40명이다.
청약업무 수행에 따른 연간 직접 수입은 지난해 기준 44억원이다.
금결원의 연간 매출 약 1000억 원의 4.4%이다.
국토부가 내세우는 이관 명분은 청약업무 공공성과 전문성 강화다.
아파트 값은 서울의 경우 수십억 원 하는 곳도 많다.
주택 청약 과정에 부정과 비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주택 청약 역시 주택 정책 일환으로 종합관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명분 자체가 공무원스럽다.
공공업무 치고 공공성·전문성 강화가 요구되지 않은 업무가 어디 있는가.
금결원 입장에서는 이번 업무 이관을 날벼락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20년 간 아무 탈 없이 수행해온 업무를 느닷없이 내놓으라고 했기 때문이다.
사실 금결원 청약업무 수행과정에 그간 특별한 사고가 있었던 게 아니다.
앞으로 일어날 사고를 예단해 공공성·전문성 강화를 주장한 것이다.
선의로 보면 예방주사를 맞는 취지에서 국토부가 이관 결정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결과는 금결원을 공공성·전문성 취약기관으로 낙인한 것이다.
추진된 청약업무 이관 절차를 보면 더욱 황당하다.
청약업무의 감정원 이관 계획안은 9.13 부동산 대책에 처음 담겼다.
이 주요 대책 중 하나였던 청약제도 개편의 이행 프로그램이었다.
그 첫 번째 행정절차는 지난해 10월 1일 국토부 고시였다.
국토부는 그 고시에서 청약저축 전산관리기관으로 산하기관 감정원을 추가 지정했다.
대신 금결원에 대해서는 해당 전산관리기관 지정 취소 및 배제를 예고했다.
취소 시기는 감정원 추가 지정으로부터 1년 뒤인 올해 10월 1일이었다.
올해 8월 1일부터 10월 1일까지 2개월 간 경과조치도 명시했다.
그 두 달 간 금결원과 감정원이 해당 업무를 공동 시행토록 한 것이다.
감정원이 청약업무를 이관받아 차질 없이 수행토록 보살펴달라는 뜻으로 해석됐다.
이 고시의 근거는 국토부 소관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제6조 제3항 뿐이다.
민간기관 개발 전산 시스템과 운용 노하우는 해당 기관의 중요 자산이다.
국토부는 그런 자산에 대해 금결원에 아무런 대가 지불 약속도 없었다.
국토부가 산하기관에 대해 일감 몰아주기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도 민간 회사 업무를 돈 한 푼 안들이고 권력으로 빼앗겠다는 것 아닌가.
권위주의 정부에서나 있을 법한 권력기관의 횡포이자 탈취라 해도 할 말 없게 됐다.
지금 와서 보니 9.13 대책에 반영된 새 청약제도가 왜 그리 복잡하게 개편됐는지 알만 하다.
공교롭게도 청약제도 개편 이후 부적격 청약 당첨자가 유난히 크게 늘었다.
감정원은 금결원이 시스템 이관에 협조적이지 않으니 똑같은 시스템을 새로 개발 중이다.
이에 들어가는 예산이 61억원이란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감정원이 중복투자에 예산을 쏟아 붓는 것이다.
내 돈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감정원 감독 부처인 국토부는 이걸 알고도 모른 척 하고 있는 것 같다.
관전자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부추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금결원이 이관을 반대하며 버티는 가장 큰 명분은 감정원이 비금융기관이라는 점이다.
감정원이 청약 관리 업무를 떠맡아 금융정보를 다루는 게 미덥지 않다는 것이다.
금결원은 감정원이 “앞으로 어찌 하는지 두고 보자”며 팔짱 끼고 구경만 하는 모습이다.
시스템 운영 20년 노하우를 감정원에 전수할 의사는 눈꼽 만큼도 없는 것 같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금결원과 감정원 간 밥그릇싸움은 청약자와 건설사 등을 볼모로 잡고 있다.
이번 힘겨루기가 조속 매듭지어지 않는다면 오는 10월부터 주택청약이 전면 중단된다고 한다.
10월은 통상 연중 최대 분양 성수기다.
분양 차질이 생기면 수요자 입장에서 청약 전략이 꼬이게 된다.
건설사에도 막대한 피해가 돌아간다.
금결원과 감정원은 왜 하필이면 이런 시기에 치고 박고 난리인가.
이런 상황이 우연인가 고의인가.
정부는 어째서 이런 상황을 방치하는가.
이러고도 촞불정부라고 자랑할 수 있는가.
어떤 경우에서도 청약 중단 사태는 막아야 한다.
청약 중단이 불가피하다면 분양 성수기라도 피해야 한다.
국토부는 당장 변경 고시를 통해 이관 시기를 늦추고 제대로 협의·조정하기 바란다.
국토부가 안하거나 못한다면 국무조정실, 청와대가 나서지 못할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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