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아베총리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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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
입력 2019-07-18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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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몇년 전 어느 관상학자가 쓴 글을 읽어보니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눈썹이 진해 상당히 강단이 있어 보이며, 때로는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 식의 승부사 성향이 얼굴에 다분히 나타나 있다고 했다. 외모와 성향이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와 쏙 빼닮아 시류에 몸담는 재주가 탁월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아베 총리는 세계 어느 지도자보다 자주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골프 라운딩을 함께한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에 잘 보이기 위한 그의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손에 쥐는 것은 별로 없다. 지난 5월 말 아베 총리는 일본을 국빈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극진한 환대를 베풀었지만, 성과라고는 고작 양국 간 새로운 무역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을 참의원 선거 이후로 늦춘다는 언질뿐이었다. 은근히 기대했던 일본산 수입자동차와 부품에 대한 약 25%의 고율관세 부과 위협을 철회하겠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우방국들을 위해 준비된 미국의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부과 면제 조치도 일본에는 해당되지 않고 있다.

지난달 말 오사카에서 개최된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는 참의원 선거를 앞둔 아베 총리에게 자신의 외교적 성과를 국내외에 과시하려는 빅 이벤트였다. 관심을 모았던 트럼프와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오사카 회동에서 두 정상은 추가 관세부과를 보류하고 양국간 무역협상을 재개하기로 합의해 무역전쟁의 확전은 일단 피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판문점 '깜짝' 회동이 성사되면서 아베가 고대했던 G20 주최국을 향한 스포트라이트는 금방 사라졌다. 아베는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승부수를 띄운다. 한국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이다.

'공정 무역'을 강조했던 '오사카 선언'에 정면 배치되는 무역 보복 조치를 일본 정부가 갑자기 내놓은 이유 중 하나는 임박한 참의원 선거 때문으로 볼 수도 있다. 우선 아베의 지지층인 보수 유권자들의 결집을 노린 것이 분명하다. 납북 피해자 송환 문제 등 대북 관계에서 속도를 못 내는 등 아베 정권의 외교 실책을 '한국 때리기'로 유권자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베의 자민당과 연립여당이 오는 21일 실시되는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관측은 오래전부터 굳어지고 있던 상황을 감안하면, 일본의 강공이 그저 선거용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일본은 반도체 핵심 소재 3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 강화 조치를 취한 데 이어 다음 달 한국을 안보우호국 성격의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방침까지 구체화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공언한 대로 이 리스트에서 한국이 제외되면 반도체 장비 등 제품 수출뿐 아니라 양국간 지식·기술 교류도 제한을 받게되어 양국 산업계에 미치는 파장은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우리 정부는 일본이 사실상 경제전쟁을 선포한 것으로 간주해 일본에 타격을 줄 보복 카드로 맞불을 놓을 태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가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높은 성장을 도모하는 시기에 우리 경제의 성장을 가로막고 나선 것이나 다름없다"며 "일본의 의도가 거기에 있다면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려스러운 일이지만 대통령의 지적대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는 단순한 일회성 무역분쟁이 아니라 한·일경제협력 역사의 근간을 뒤흔드는 엄중한 사태로 전개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 대법원의 강제 징용 판결로 촉발된 이번 사태가 정치적·외교적 해법을 찾지 못하고 확전(擴戰)의 길로 접어들 조짐을 보이자 양국 기업들은 공포에 떨고 있다.

일본은 한반도에 대한 전략을 '두 가지 위협' 측면에서 고려하고 있는 듯하다. 하나는 북한의 핵이고 또 하나는 남한의 경제력 상승이다. 이런 남북한이 힘을 합쳐 반일(反日)로 나선다면 '잃어버린 20년'을 거치면서 크게 쇠약해진 일본은 경제와 안보 측면에서 미국의 도움 없이는 설 땅이 없게 된다. 제재 조치를  불쑥 내밀면서 일본이 뚜렷한 근거도 대지 못하면서 터무니없이 한국의 대북 제재위반 의혹을 핑곗거리로 거론하는 것을 보면, 이번 조치가 남북과 미·중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한반도의 안보 상황에 일본도 개입하기 위한 철저히 계산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즉, 경제보복 차원을 넘어 동아시아 지역의 안보 프레임 재조정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아베는 전후 일본 정치사에서 우뚝 선 인물이다. 2006년 최연소 총리로 선출되어 1년 만에 사퇴했지만, 2012년 불사조처럼 복귀해 올해 11월에는 역대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우게 된다.   

보수 자민당 내에서도 극우파로 꼽히는 아베에게 이번 참의원 선거는 자신과 외조부의 숙원인 전후체제 극복을 위한 시험대이다. 선거 이후에도 그는 전략적으로 한국 때리기를 계속하며 일본의 교전권과 전력 보유를 금지하고 있는 평화헌법 9조의 '개헌'을 추진하며 일본 재무장을 위한 본격 행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앞날엔 가시밭길이 보일 뿐이다.

먼저, 2020년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는 참의원 선거 이후로 미루었던 일본에 대한 통상압력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일 간 무역이 불균형 속에 있고 미국이 큰 손해를 보고 있다는 인식이 강해, 향후 양국간 무역 협상에서 농산물 수입과 자동차 수출에서 일본에 크게 불리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또한 오는 10월 소비세(부가가치세)의 세율 인상이 예고된 가운데 그동안 '아베노믹스'라는 비정상적인 재정 확대와 마이너스 금리 정책으로 살아났던 일본 경제가 다시 침체의 늪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거기다가 한국과의 갈등이 봉합되지 않고 장기화되면서 양국의 경제적 피해가 확대된다면, 아베의 정치적 생명도 위태롭게 될 것이다. 즉, 자신이 던진 무리한 '승부수'는 당장 거두어들여야 한다. 그리고 아시아의 중심 국가인 일본의 총리로서 과거의 잘못을 사과하지는 못할망정 이웃 나라에 사사건건 시비 걸지 말고 잘 지내는 것이 유리하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앞세우는 트럼프는 우방보다는 자국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기 때문이다. 
 

거리 유세하는 아베 (후나바시 AP=연합뉴스) 참의원 선거 유세에 나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7일(현지시간) 도쿄 인근 후나바시 거리에서 연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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