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인] "세금으로 만든 국민연금 의결권, 독립성·전문성 갖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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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종 기자
입력 2019-06-06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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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제도팀장 인터뷰

  • 시대적 소명 다한 동일인 지정, 투자·일자리 해법 안돼

  • 벤처기업 차등의결권 도입은 주주 판단에 맡겨야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제도팀장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대기업 집단 동일인 지정제도는 세계화와 재벌 3세 시대, 기업 간 격차 등으로 상식적으로 맞지 않게 됐다”며 “이제는 기업이 어떻게 하면 투자를 늘리고 일자리 창출 할 수 있는지 고민하면서 반칙은 제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이범종 기자]

[데일리동방] 지난달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기업 동일인(총수) 발표를 두고 ‘시대에 뒤떨어진 정책’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정부가 몇몇 기업을 대표선수로 키워주는 대신 총수에게 책임을 묻던 1980년대식 관치를 시대에 맞에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제도팀장은 “이제 민간 기업의 규모와 역량이 커지면서 동일인 제도에 큰 의미가 없어졌다”며 “갈수록 기업이 쪼개지고 희석되는 상황에서 ‘누가 동일인이냐’는 논란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총수만 움켜쥐면 되는 시대 끝나 “투자와 일자리 창출 방해”

공정위가 발표한 공시대상기업집단 59곳에서도 양극화가 뚜렷했다. 자산규모 1위인 삼성은 414조5000억원인 반면 다우키움은 5조원에 그쳐 80배 차이를 보였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역시 1위 삼성과 34위 KCC 간 격차가 40배에 달한다. 올해 IT업계 최초로 카카오가 대기업 반열에 오르면서 경직된 규제로 인한 외국 기업과의 역차별 우려가 나왔다. 유정주 팀장은 1987년 도입된 세계 유일 제도의 수명은 끝났다고 본다.

그는 “과거 경제 성장기는 대기업이 정부의 재원과 인력 조달이 필요했고 정부도 대기업을 총수 한 사람과 동일시해 교섭하는 방식이 필요했을 것”이라면서도 “지금은 민간기업 규모와 역량이 정부를 넘어서서 동일인 지정에 큰 의미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한항공이다. 조원태 사장이 동일인으로 지정됐지만 누가 진정으로 기업 전체를 지배하는지에 대한 논란은 수없이 벌어지게 된다는 설명이다.

“네이버 창업자 이해진 GIO(글로벌 투자책임자)는 네이버 주식이 5%가 되지 않고 해외 사업에만 힘 쓰는 반면 국민연금은 최대 주주입니다. 이 GIO가 정말로 네이버를 지배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에게 책임 지우는 구조는 더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세계적 기준이 아니지요.”

하지만 재벌체제 역시 세계적 기준은 아니다. 유 팀장은 국가 경제 규모가 작았던 시절의 재벌과 지금은 다르게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윤 대부분을 수출이 차지하는 시대에 국내 시장만 쥐고 흔드는 방식은 외국 기업과의 형평성 문제를 부른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1987년 공정거래법 제정하며 동일인 제도를 도입할 때 참고했던 일본이 오히려 2002년 공시제도만 빼고 나머지를 버렸습니다. 기업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방해되니까요. 우리처럼 재벌 비슷한 체제가 있어서 과거 통제를 시작했지만 수출 규모는 물론 민간영역이 커지면서 이런 식의 규제는 의미가 없어졌지요.”
 

유정주 팀장은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가 실제 주주인 국민들의 의사를 그대로 반영할 수 있는지 우선 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직 대통령의 후보 시절 지지자도 개별 사안에서는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이범종 기자]

◆국민연금 의결권 ‘진짜 국민 의사’인지 돌아봐야

벤처기업 성장을 위한 ‘차등의결권’ 도입도 과제다. 1주 1표 권한만으로는 경영권을 유지하며 투자금을 모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유정주 팀장은 우선 제도를 도입하고 이를 따를지는 주주들에게 맡기는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벤처에 대한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뒤 기업 발전에 도움된다면 상법 일반으로 확대하는 편이 좋습니다. 그렇다 해도 회사마다 정관을 바꿔야 하기 때문에 주주들이 동의해야 차등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일단 제도를 도입한다 해도 실제 개별 회사에 적용할지는 3분의 2에 달하는 주주들 의사에 달린겁니다.”

미국은 구글과 페이스북, 포드 등이 차등의결권을 도입했고 프랑스는 LVMH가 활용하고 있다. 일본은 ‘단원주(單元株)’ 형식으로 차등의결권 효과를 본다. 정관으로 정한 일정 수의 주식을 1단원으로 묶어 한 개 의결권으로 인정한다. 100주당 의결권 하나를 주고 그 이하 주식을 가지면 의결권을 인정하지 않는 식이다. 다만 법률상 제약과 주주 반대로 실제 차등의결권을 행사하는 기업은 많지 않다는 설명이다.

경영권 방어가 국민적인 관심을 끈 사례는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 3월 대한항공 사내이사직을 잃었을 때다. 대한항공 주식 11.02%를 가진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기관 투자자의 의결권 행사)가 영향을 줬다는 평가다.

유 팀장은 “주주 권리 행사는 원론적으로 맞다”면서도 “국민연금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OECD 회원국 가운데 ▲정부가 국민연금기금 조성에 기여하지 않으면서 ▲기금운영에는 보건복지부 장관을 통해 직접 참여하고 ▲주식보유에 따른 의결권을 기금운용위원회가 직접 행사하는 국가는 한국뿐이다. 정부가 가진 대기업 주식은 세금으로 마련됐지만 실제 의결권 행사에 국민의 뜻이 반영되느냐는 ‘주인-대리인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연금 의결권을 결정하는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을 보건복지부 장관이 맡는 나라는 OECD 중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충분한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뒤에 의결권을 행사해야 합니다. 포르투갈과 노르웨이도 기금운용위가 직접 의결권을 행사하지만 정부가 기금을 직접 조성·운용합니다. 반면 한국은 정부가 기금 조성에 참여하지 않지요. 공적연금의 국내 기업 경영 간섭을 막기 위해 일본・폴란드・스웨덴・프랑스・핀란드 등은 의결권 행사를 전문기관에 위탁합니다. 기금운용위가 아예 없는 멕시코와 칠레도 개별 민간위탁운용사들이 의결권을 행사하죠.”

국민 노후 보험료로 만들어진 기금 운용을 전문가에게 맡기고 기업 직접 지배 가능성을 막을 견제장치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유 팀장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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