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지진, 지열발전소 탓"…정부ㆍ기업상대 줄소송 불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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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길 기자
입력 2019-03-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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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구단 "잣은 물 주입작업에 지반 약해졌다"

  • 자연발생 주장 뒤집혀…손배소 중요변수로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대한지질학회 주최로 열린 '포항지진과 지열발전의 연관성에 관한 정부조사연구단 결과발표 기자회견'에서 공동조사단장인 세민 게(Shemin Ge) 미국 콜로라도대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사상 두 번째로 컸던 규모 5.4의 포항지진이 자연지진이 아니라 인근 지역 지열발전에 의해 촉발됐다는 최종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에 따라 사업을 추진한 정부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며 정부가 막대한 액수의 손해배상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조사연구단 조사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고 지열발전소를 완전 폐쇄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는 최선을 다해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 정부조사연구단의 1년간의 연구 결과…"자연지진 아니다"

이강근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장(서울대 교수·대한지질학회장)은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포항지진과 지열발전의 연관성 분석 연구' 과제 결과를 발표했다.

이 단장은 "지열발전소 지열정을 굴착하고 이곳에 유체를 주입하며 미소지진이 순차적으로 발생했고, 시간이 흐르며 포항지진이 촉발됐다"고 밝혔다.

2017년 11월 발생한 포항지진은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지진 중에서는 2016년 9월 경북 경주에서 일어난 규모 5.8 지진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컸다.

포항지진 발생 당시 원인에 대해 인근 지열발전소에 의한 '유발지진'이라는 의견과 자연 발생적이라는 의견이 대립했다.

이에 산업통상자원부는 포항지진과 지열발전과 상관관계를 조사하기 위해 국내외 전문가로 구성된 '포항지진 조사연구단'을 구성하고, 지난해 3월부터 약 1년간 정밀조사를 진행해 왔다.

이번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열발전소에 지열정을 굴착할 때 이수(mud)가 누출됐고, 유체(물)를 주입할 때 압력이 발생해 포항지진 단층면 상에서 규모 2.0 미만 미소지진을 일으켰다. 이 미소지진 영향으로 시간이 지나며 규모 5.4의 본진이 발생했다.

이 단장은 "'유발(induced)지진'은 자극을 받은 범위 내에서 '촉발(triggered)지진'은 자극을 받은 범위 너머에서 발생한 지진이라는 의미에서 '촉발지진'이라는 용어를 썼다"며 "자연지진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남송리에 있는 포항지열발전소 모습. 20일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은 2017년 발생한 포항지진은 인근 지열발전소가 촉발했다는 결론을 발표했다. [사진 = 연합뉴스]

◆ 포항지진 영향끼친 지열발전소는?

포항지진을 촉발시킨 것으로 지목된 포항 지열발전소는 한국에서 지열발전 타당성을 확인하기 위해 2010년 '㎿(메가와트)급 지열발전 상용화 기술개발'이라는 이름의 정부지원 연구개발사업으로 추진됐다.

㈜넥스지오가 사업 주관기관으로 발전소를 소유하고 포스코, 이노지오테크놀로지, 지질자원연구원, 건설기술연구원, 서울대 등이 연구에 참여했다. 정부 연구개발 사업을 관리하는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이 사업 진행 상황을 보고받는 전담기관이다.

이 사업은 정부와 민간이 총 473억원(정부 195억원, 민간 278억원)을 투자해 2015년까지 포항에 지열발전소를 건설·실험하는 것으로, 2012년 9월 25일 포항 북구 흥해읍 남송리에서 기공식을 했다.

포항지진 당시 지열발전소는 90% 완공된 상태로 상업운전을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그전부터 주기적으로 땅에 물을 주입하고 빼내는 작업을 반복해왔다.

지열발전소는 지하 4㎞ 내외까지 물을 내려보내 지열로 만들어진 수증기로 터빈을 돌린다. 이를 위해 땅속 깊이 들어가는 파이프라인을 깔아야 하는데 라인을 설치할 구멍을 뚫는 과정에서 물을 주입하고 빼는 작업을 반복했고, 조사단은 이런 작업이 단층을 자극해 지진을 촉발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조사단은 지열발전소가 지진을 직접적으로 일으킨 '유발지진'이 아니라 이미 지진이 날 가능성이 큰 단층에 자극을 줘 간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촉발지진'이라고 했다. 손해배상 책임을 따질 때 이 차이가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포항지진범시민대책본부는 작년 10월 지열발전사업을 추진한 정부와 넥스지오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모성은 포항지진범시민대책본부 공동대표는 "현재 약 1300명이 소송인단에 동참하고 있으며 만약 포항시민 전원이 소송에 참여하면 총 소송금액이 5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넥스지오는 현재 법정관리에 들어간 상태로 손해배상 능력이 불투명하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2017년 12월 발표한 포항지진 피해액은 546억1800만원이다. 한국은행 포항본부는 3323억5000만원으로 추산했다.

정승일 산업부 차관이 20일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에서 2017년 11월 발생한 포항지진은 인근 지열발전소가 촉발했다는 정부연구단의 결론에 대한 산업부의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 정부 책임론 부상…정부 "조사 결과 겸허히 수용…지열발전소 영구 중단"

정승일 산업부 차관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정부는 조사연구단의 연구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피해를 입은 포항시민들께 깊은 유감을 표한다"라며 "연구 결과에 따라 정부가 앞으로 취해야 할 조치를 최선을 다해 추진해 나가겠다는 점을 분명하게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우선 산업부는 현재 중지된 지열발전 상용화 기술개발 사업은 관련 절차를 거쳐 영구 중단시키고, 해당 부지는 전문가와 협의해 안전성이 확보되는 방식으로 조속히 원상 복구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지열발전 상용화 기술개발 사업의 진행과정과 부지선정의 적정성 여부 등에 대해 엄정하게 조사할 계획이다. 현재 이번 사안에 대해 감사원의 국민감사가 청구돼 있다.

올해부터 향후 5년간 총 2257억원을 투입하는 포항 흥해 특별재생사업을 통해 주택 및 기반시설 정비, 공동시설 설치 등을 신속하고 차질 없이 추진할 방침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11월 14일 제14차 도시재생특별위원회에서 포항 흥해읍을 특별재생지역으로 지정하고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총 2257억원의 재정을 투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 차관은 "어떤 조치가 추가로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관계부처 및 포항시 등과 긴밀하게 협의하면서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며 "다시 한번 포항지진으로 상처를 받고 어려움을 겪은 포항시민 여러분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손해배상청구와 관련된 질문에는 "국가 등을 피고로 하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현재 진행 중에 있기 때문에 법원의 판결에 따르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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