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AI 시대의 신(新) 지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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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가천대 교수
입력 2019-03-14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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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교수 ]


바야흐로 AI(인공지능) 시대다. AI는 경제, 교육, 문화, 정치, 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활용되는 21세기의 만병통치약이다. AI가 2040년께 인간의 인지 능력을 넘어서는 이른바 싱귤래리티 (기술적 특이점)에 도달할 것이란 예측도 있어 AI 붐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런 AI가 이제 지정학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AI 시대를 맞아 종래의 지정학(地政學) 상식이 크게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는 지금 대규모 세력 변동기에 놓여 있다. 전통적 대륙세력인 러시아와 중국이 해양세력의 중심임을 자처해온 미국·일본과 대격돌의 시대를 열고 있다. 대륙세력은 해양진출을 노리고, 해양세력은 대륙세력을 포위하려는 거대한 패권 전략이 맞부딪치고 있는 것이다. 주변국들은 이런 세력 판의 충돌 속에 복잡한 합종연횡의 포석을 두고 있다. 유럽의 정치·경제 유동화, 북아프리카와 아랍에서의 민주화, 중동과 서아시아에서의 무력충돌, 구미국가와 러시아가 맞붙어있는 우크라이나 문제도 멀든 가깝든 간에 모두 세력의 변동기라는 한 묶음에 수렴된다.

국가 간의 전쟁 영역도 육전(육군 대 육군) 과 육·해전(육군 대 해군) 시대를 거쳐 20세기 후반부터는 무대가 공전(공군과 전략핵미사일)으로 진화했고, 이제 사이버공간과 우주공간으로 확대되고 있다. 게다가 미국과 소련이 누려왔던 최첨단 군사기술의 독점체제가 인터넷 확산으로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어느 나라든 군사 면에서 질적 우위에 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지정학의 큰 변화를 뜻한다. 전통적 지정학 이론 가운데 대표주자는 미국 해군전략가 알프레드 마한(1840~1914)으로 ‘해양권력론’(Sea Power)을 제시했다. “해양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해양은 미래의 슈퍼하이웨이”라는 그의 명언은 해양권략론의 키워드다. 그 뒤를 이은 주자는 영국의 지리학자 핼포드 존 매킨더로 ‘하트랜드(Heartland)론’을 제창했다. 그는 오랜 세월에 걸친 대륙과 해양 전쟁의 역사를 ‘랜드 파워’와 ‘시 파워’의 싸움으로 정리하고 있다. 그는 현재의 러시아에 해당하는 부분을 유라시아 대륙의 ‘하트랜드’로 정의하고, 이 지역을 압도적인 ‘랜드 파워’가 장악하면 세계를 제패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이를 전력을 다해 저지하는 것이 ‘시 파워’의 숙명이므로 양자의 균형이 자유의 기초가 된다고 그는 주장했다.

이 두 사람의 이론을 바탕으로 20세기 냉전기의 미국의 전략 개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은 미국의 지정학자인 니콜라스 스파이크만 예일대 교수였다. 스파이크만 교수는 매킨더의 ‘하트랜드론’을 발전시켜 하트랜드 주변 지역(극동, 중국, 동남아시아, 인도, 중동, 지중해, 중·동부유럽, 북유럽)을 ‘림랜드(Rimland)’라 규정하고, 이 ‘림랜드’를 지배하면 유라시아를 제압하게 되며, 유라시아를 장악하면 세계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유라시아에서 강력한 세력이 ‘림랜드’를 제압하면 미국은 지정학적으로 포위된다면서 유라시아의 강대국들이 ‘림랜드’를 누르고, 미국에 적대적인 동맹을 유라시아에서 구축하는 것을 막는 것이 미국의 전략이라고 주장했다.

냉전시대에 풍미했던 마한, 매킨더, 스파이크만의 전통적 지정학은 그 대전제가 육지와 바다에 한정되어 있었다. 이런 대전제가 IT혁명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육·해·공을 넘어선 제4, 제5의 영역으로서 사이버공간과 우주공간이 인류에게 새롭게 다가온 것이다.

일본 캐논글로벌 전략연구소의 미야케 구니히코(宮家邦彦) 연구주간은 “AI는 군사 면에서 인간의 관여를 저하시키고 국가 간의 지리적 거리를 변질시킨다는 점에서 지정학적·전략론 상의 ‘게임 체인저’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7년 미국 하버드대학 케네디 행정대학원의 연구기관인 벨퍼과학·국제정세센터는 ‘AI와 국가안보’라는 보고서를 펴냈다. 이 보고서는 “AI는 국가안보에 군사·정보·경제적 우위를 가져다준다. AI 혁명은 국가정책에도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AI관련 병기의 군비경쟁은 불가피하다”고 지적하면서 “정부는 AI 기술을 촉진하면서 관리해야하며, 군민협력으로 AI 기술연구를 추진해야 한다”는 내용의 국가전략을 제시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AI와 지정학의 관계를 잘 파악하고 있어야 복잡한 국제정세를 보다 다각적이고 중층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예컨대 미국과 중국 경제 마찰도 민간 활력을 중시하는 전후(戰後)의 자유경제체제와, 강력한 자본력과 통제력으로 대두한 국가자본주의와의 다툼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나아가 이 두 강대국의 경쟁이 ‘지정학적 리스크’가 되면서 세계경제의 심한 부침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게 된다.

여기서 미·중 지정학 리스크의 인과관계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미·중 경제마찰(경제 제재와 응수)→미·중 정책마찰(‘중국제조 2025 전략’을 공격)→미·중 기술마찰(AI, 5G 등)→미·중 기업마찰 (화웨이 5G제품 거부)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마찰은 지정학으로 보면 패권전략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지난 2월 11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AI 분야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강화하기 위한 ‘AI 이니셔티브’에 서명한 것은 이를 확실히 뒷받침해주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이 이니셔티브는 미국의 번영을 증진하고, 국가와 경제의 안전보장을 향상시키며, 미국 국민의 생활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연방정부의 자원을 AI 개발에 투입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은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AI 이니셔티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본 정부는 ‘AI 이니셔티브’가 어떤 형태로 구체적 시책에 반영되는가, 미국의 AI 관련 정책의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유럽의 AI 전략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이런 변화에 대해 일본은 어떤 형태로 대응해야 하는가를 분석하면서 새로운 국가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AI 시대를 맞아 국제관계도 날이 갈수록 한층 복잡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격변의 저류를 형성하고 있는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의 AI 정책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그 움직임과 본질을 면밀히 간파해 대처해 나가야 한다. AI 시대를 맞아 한반도가 새로운 지정학적 리스크에 빠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사진=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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