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익 칼럼] 4차 산업혁명과 꼰대들

김창익 IT과학부 부장입력 : 2019-03-13 18:16
- 당신은 VR섹스를 타액교환과 같다고 생각하는가

 



정신은 물질보다 늦다. 문명이 바뀌어도 문화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매개가 되는 정신의 변화가 생각보다 더디어서다. 아노미, 즉 질서의 공백이 생기는 이유다.

꼰대는 늙은이나 선생님을 가리키는 신세대 은어다. 번데기의 방언 꼰데기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이완용처럼 일제강점기에 작위를 받은 친일파를 꽁떼(백작의 프랑스어)로 부른 게 기원이란 얘기도 있다.

늙은이나 선생님이라고 모두 꼰대는 아니다. 꼰대의 특징은 고착이다. 기성질서와 자기기준에 아스팔트 위의 습한 나뭇잎처럼 착 달라 붙어 있는 사람이다.

꼰대는 4차 산업혁명의 적이다. 혁명은 기존 문명과 질서의 파괴다. 새로운 것들로의 전환(Transformation)이다. 그것은 문명이 바뀌고, 생각이 변하고, 문화가 진화하는 순서를 밟는다.

꼰대는 아노미를 연장한다. 문명이 변했는데 생각이 고착됐다. 영화 데몰리션맨에서 실베스터 스탤론이 연기한 주인공 스파르탄은 가상현실(VR) 섹스를 경멸한다. 그에게 섹스는 타액 교환이다. 생각이 동면 이전에 머물러 있다. 꼰대다.

행복 연구가로 유명한 구글 CBO(Chief Business Officer) 모 가댓은 "행복은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Happiness is Feeling happy)"이라고 했다. 자극된 뇌가 받아들인 구체적인 결과다. 이 관점에서 행복의 근원이 가상이냐 현실이냐는 중요치 않다. 뇌가 그것을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면 둘은 동일하다.

VR이건 현실이건 뇌는 똑같이 섹스로 느낀다. 팩트고 현실이다. 스파르탄의 생각은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스파르탄은 과거에서 왔다. 동면에서 해동되는 순간 그의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그에겐 먼 미래였다. VR 기기는 몰랐고,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더더군다나 미지다.  데몰리션맨은 수컷 냄새 충만한 마초가 아니라 부적응자였다.

스파르탄은 사랑을 즐기려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VR 작동법을 배우거나 타액 교환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다. 그는 후자를 택했다. 꼰대는 말한다. “역시 섹스는 타액 교환”이라고.

기성질서에의 고착, 새로움에 대한 부정의 뿌리를 니체는 ‘르상티망(Ressentiment)’이라고 했다. 강자에게 느끼는 질투·증오·시기심이다. 유대인이 나치에게 갖는 원망, 노숙자가 벤츠 탄 부자에게 느끼는 시기심이 니체의 관점에서는 같다. 스파르탄이 VR 섹스를 즐기는 여주인공에게 허세를 떤 것도 사실은 르상티망 때문이다. 르상티망의 대상을 부정함으로써 극복하는 것이다. 이솝우화 속 여우가 포도를 못 따고 어차피 너무 시어서 맛이 없을 거야라고 자위하는 식이다.

니체는 르상티망에 순응해야 한다고 했다. 유대인에게 하느님의 천국은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르상티망을 극복하기 위한 장치다. 독일군은 야만인이고 지옥에 떨어질 불쌍한 민족이다. 유대인에게 종교는 소극적 복수란 게 니체의 생각이다. 차라리 현실을 인정하고 힘을 키워 독일을 짓밟는 게 낫다는 것이다. 니체는 스파르탄에게 말했을 것이다. "괜한 허세 부리지 말고 VR기기 다루는 법을 배워"라고.  

경영 컨설턴트 야마구치 슈는 최근 책 ‘철학이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에서 마케터들은 르상티망에 대한 순응을 이용해야 한다고 했다. 샤넬 백이 부러우면 백을 가진 친구를 속물이라고 비난할 게 아니라 돈을 벌어 가방을 사라고 광고하란 얘기다.

인도보다 미국이 자본주의가 발전한 건 니체의 기준에서 보면 두 나라가 르상티망을 극복하는 방식이 달랐기 때문이다. 뉴델리보다 실리콘밸리가 4차 산업혁명이 빨리 진행되는 이유도 설명된다. 제프 베이조스가 부러우면 아마존을 이겨야 한다는 게 미국식이다. 인도인은 내세로 회귀한다. 합장하고 천국을 생각한다. 

꼰대는 르상티망을 부정한다. 권위있는 선배는 꼰대의 눈엔 다른 꼰대다. 부자 동료는 속물이고 잘난 후배는 시건방진 놈이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 칼럼에서 꼰대가 되지 않는 법을 간접적으로 제시했다. 소확행을 추구하는 재미형 인간이나 자기만의 가치를 추구하는 의미형 인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실패는 스트레스가 아니라 다른 도전이다. 미지의 세계는 헛디딜까봐 두려운 곳이 아니라 재미있는 공간이다. 이들은 선배·동료·후배를 뒷담화할 시간이 없다고 최 교수는 말한다. 

4차 산업혁명은 재미형 인간의 무대다. 고착형 인간, 즉 꼰대는 새로운 세계로의 전환을 늦춘다. 그에게 최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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