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 대한민국 ‘양극화’] 한번의 대학 입시가 인생 결정…'패자부활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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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승일·윤상민 기자
입력 2019-03-05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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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모 소득이 교육환경 선택권 결정

  • 대입으로 일찌감치 승자ㆍ패자 갈려

  • 인문계ㆍ직업계 구분부터 없애고

  • 일ㆍ학습 병행제도 다양한 기회 줘야

‘한 번 실패는 영원한 실패.’

대한민국 젊은이들은 대학 입시에 실패할 경우 영원한 패배자로 낙인 찍힐 것을 두려워한다. 대한민국 교육에는 ‘패자부활전’이 없기 때문이다.

학교 교무부장이 쌍둥이 딸에게 시험지를 유출한 의혹을 받는 숙명여고, 교사나 학생이 학교생활기록부를 조작한 사건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교육부가 발표한 ‘초중고 감사결과 공개 및 종합 대응방안’을 보면 교사나 학생 시험문제 유출 사건만 전국 26개 중·고교에서 적발됐다.

한 번의 대학 입시가 승자냐 패자냐를 결정짓는 교육 시스템상 이 같은 비리는 예고된 것이었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란 비관론이 나오는 이유다.

양질의 교육을 받을 기회가 소득에 따라 달라져 승자와 패자가 정해지는 ‘교육 양극화=기회 불평등’도 보다 고착되고 있는 실정이다.

부모의 부가 대물림되고, 계층 사회가 공고화될수록 교육 기회의 쏠림 현상도 반복되는 사회 구조상 양극화 해소는 요원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 전문가들은 국내 교육 시스템에 ‘패자부활전’과 같은 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나 학생부종합전형(학종), 수시 또는 정시의 천편일률적인 입시제도에서 벗어나 다양한 대입전형을 통해 학생들의 선택권(기회)을 늘려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일학습 병행제’ 등 중·고등교육 단계부터 다양한 진로를 경험,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전형 실패 시 재수뿐 아니라 타 대학 입학 후 편입학하거나 연수나 취업 후 특별전형으로 입학 가능한 대입 제도 개편도 거론되고 있다.
 

2015년 이후 초중고 감사결과[자료=교육부]

◆인문계, 직업계 구분부터 없애야

“프랑스나 핀란드 같은 유럽 선진국들은 한 고등학교 안에 직업계, 인문계 학생들이 함께 교육받는 체제다. 우리 사회도 직업 교육에 대한 인식을 바꿔 인문계와 직업계 구분이 사라지는 교육 방향을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한다.”

박백범 교육부 차관은 최근 국가교육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직업교육을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이 바뀌어야 할 시기라며 이같이 밝혔다.

박 차관은 교육양극화의 주된 원인인 대학서열화 폐단을 줄이려면 '인문계-직업계' 구분부터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내 교육은 대학에 진학하는 인문계 고등학교와 직업 교육을 받고 졸업 후 취업하는 실업계 고등학교가 별개로 운영되고 있다.

인문계=대학, 실업계=취업으로 단순화돼 있는 교육구조상 청소년들은 10대에 이미 진로가 결정돼버린다.

학업을 하다 직업교육으로, 직업교육을 하다 학업으로 전환하는 기회를 박탈당한 채 오직 정해진 하나의 루트로만 교육을 받는 실정을 박 차관이 꼬집은 것이다.

학생들은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없다보니 인문계-대학-취업준비 등 정해진 공식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소득에 따라 교육을 받는 사교육 시장이 범람하고, 대학서열에 따라 진로와 직장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결정되는 교육양극화가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 교육이 양극화된 이유로는 △망가진 공교육 △소모적인 사교육 경쟁과 창의력 상실 △학생 건강과 삶의 질 추락 △비효율적인 교육투자 등이 꼽힌다.

교육 양극화가 급격히 심화되기 시작한 시기는 대학의 경쟁을 본격화시킨 1995년 5·31 교육개혁부터다.

한국 시장을 장악한 신자유주의가 대학에까지 침투하며 경쟁 일변도로 학생들을 몰아갔고, 극소수 학생들만이 성공할 수 있는 피라미드 구조를 만든 것이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 안 난다...‘개천용지수’ 주목

부의 되물림에 따른 계층서열화가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를 마감하게 했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2000년대부터 급속도로 진행된 교육양극화는 결국 부모의 경제력 차이가 그 원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근 주병기 서울대 분배정의연구센터장(경제학과)이 개발한 개천용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부모의 지위가 높을수록 더 우월한 소득분포를 보이는 기회불평등 국가에 속한다.

기회불평등지수를 뜻하는 ‘개천용지수’는 1에 가까울수록 기회불평등 사회, 0에 가까울수록 기회가 균등한 사회를 나타낸다. 부모 학력이 낮을수록 수능 고득점 획득에 실패할 확률이 상승하고 지역간 기회 불평등도 매우 높다.

의사 부모 아래서 사교육의 혜택을 받은 뒤 서울 명문 사립대를 졸업하고 서울 대기업에 취업해 가처분소득 수준을 높이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때문에 소득에 상관없이 중·고등단계부터 진로를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일학습병행제'가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2014에 도입된 한국형 도제시스템인 일학습병행제는 기업에는 숙련된 인력을, 청년에게는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정부 프로그램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직업훈련을 받는 이 제도는 시행 4년 만에 참여기업이 1만5000여개로, 학습 노동자는 7만6000명으로 증가했다. 직업계 학생들을 위한 실질적인 진로 교육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은 “교실에 엎드려 잠만 자는 중하위권 아이들도 학업에 의욕을 가질 수 있도록 중고등학교에서 실질적인 직업 교육과 진로 교육이 활성화돼야 한다”며 “이제는 직업교육 경로를 통해서도 발전경로를 보장해주는 틀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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