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칼럼] 신자유주의 포용국가의 허구성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입력 2019-03-04 05:01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



‘좌회전 깜빡이 켜고 우회전한다.’ 좌회전 깜빡이는 포용국가의 구호로, 우회전은 신자유주의 핸들로. 문재인 정부의 국정 비전이 소득주도성장에서 포용적 성장을 거쳐 포용국가에 이르면서 신자유주의 색채가 두드러지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으로 대표되었던 소득주도성장은 ‘속도조절’을 위한 입법화에 들어가면서 야당도 더 이상 폐기를 요구하지 않을 정도로 실종되었다. 지난해 7월 청와대 경제수석이 교체되면서 종종 언급되었던 포용적 성장 또한 혁신성장과 공정경제를 포괄하는 비전으로 제시되었지만, 실제 정책에서는 공정경제는 사라지고 규제혁신과 사실상 등치되는 혁신성장만 살아남았다.
‘성장의 결실을 골고루 나눈다’는 포용적 성장 비전에서는 원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경제적 불평등을 확대해 성장동력을 떨어뜨리고 그와 함께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돼 왔다”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이 분명히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포용국가 비전으로 옮아가면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명분으로 신자유주의가 경제정책의 중심에 다시 자리를 잡았고, 소득불평등의 문제는 사회정책영역으로 밀려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혁신적 포용국가’를 비전으로 재천명했다. 목표는 기초생활을 넘어 2022년까지 국민의 기본생활을 보장하는 데 있다. 앞서 2월 19일 실시된 포용국가 사회정책 대국민보고에서는 튼튼한 사회안전망과 질 높은 사회서비스 제공, 사람에 대한 투자, 질 좋은 일자리 확대, 충분한 휴식 보장이 4대 정책으로 제시되었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계속 죽어가는 현실에서 질 좋은 일자리의 확대를 거론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비정규직의 핵심이 고용유연성이 아니라 저임금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일본처럼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또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이 확대되면서 충분한 휴식시간이 보장될지도 의문이다.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뿌듯하다면 다른 선진국들이 3만 달러 시대에 40시간 노동을 했었다는 사실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는 규제 완화, 민영화, 감세도 포함된다. 규제완화는 일찌감치 현 정부 경제정책의 중심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을 강화하는 데마저 지극히 소극적이다. 새로운 의료기기에 대해서는 과학적인 검증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아도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대통령의 지시와 ‘김용균법’이 ‘경영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기업의 입장을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은 같은 맥락이다.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신자유주의 지향성은 ‘2019년 경제정책 방향’에서 민자 유치 대상을 “모든 공공시설”로 확대한 데서도 발견된다. 민자 고속도로가 개통될 때마다 비싼 통행료가 시빗거리가 되고, 민자 경전철은 예외 없이 ‘세금 먹는 하마’로 전락하고, 민자 지하철은 비싼 요금과 열악한 서비스로 승객들을 괴롭혀도 정부는 민자 사업을 고집해 왔다. 문재인 정부마저 ‘작은 정부’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돈벌이를 통한 공공성의 확보’라는 허상을 좇는다면 소비자 피해는 계속 늘어날 뿐만 아니라 간호사들의 ‘태움’은 계속되고 헌신적인 의사의 과로사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증세를 거부하고 감세를 환영하는 것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다. 현 정부는 보유세 인상에 주저하다 부동산시장 안정에 실패했다. 반면에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 지원’을 명분으로 기획재정부는 유류세를 인하했고, ‘자본시장 활성화’를 이유로 금융위원회는 증권거래세 인하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감세보다 정부지출 증대가 경제성장에 더 효과적이라는 경제이론의 상식은 무시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소득불평등이 악화되었다는 통계청 발표에 청와대 대변인은 “아프다”는 촌평을 남겼다. 이어 4분기에는 상·하위 20% 가구의 소득격차가 무려 7.53배로 역대 최악으로 벌어진 것으로 밝혀지자, 기재부 장관은 “죄송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함께 잘사는 포용국가’를 표방하면서도 심화되는 소득불평등에 앞에서 무기력하고 무관심한 채 ‘경제 활력’에 몰두하는 정부는 신자유주의 정부이다. 자국 인재의 해외 유출에는 무관심을 넘어서 “동남아시아로 나가라”고 망언을 하면서 2022년까지 해외 과학기술인재 1000명을 유치하겠다는 나라에 누가 기꺼이 올까? 해외 인재에게 베풀 ‘인건비 현실화’를 자국민에게 베풀면 안 될까? 신자유주의 포용국가에서는 상충하는 정책들의 ‘짜깁기’가 일상이다. 망국적인 불평등의 완화는 시장소득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포용국가가 지속가능하려면 사회정책은 보충성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