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 칼럼] 미중 수교 40년과 키신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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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논설위원
입력 2018-12-19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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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8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인민대회당에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을 만나고 무역분쟁 등 양국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사진=신화통신]

 

 

새해 1월 1일은 미·중 수교 40주년이 되는 날이다. 미국은 1970년대 초 '핑퐁 외교'와 헨리 키신저의 '비밀 외교'를 통해 중국의 '죽(竹)의 장막'을 열어젖혔다. 1971년 키신저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특사로 아시아 순방 중 파키스탄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극비리에 베이징을 방문, 20시간에 걸쳐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와 비밀 회동을 가졌다. 이듬해인 1972년 2월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毛澤東) 주석 간의  최초 미·중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78년 12월 15일 양국은 1979년 1월 1일 국교를 맺는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중국도 마침내 덩샤오핑의 주도하에 개혁·개방의 길로 본격 진입하게 된다.    

키신저와 저우언라이가 닉슨과 마오쩌둥의 세기적 만남을 성사시킬  당시, 미국의 외교는 냉전시대 헤게모니 경쟁을 벌이던 소련의 견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전의 수렁 속에서 달러 가치 하락 등 경제 상황이 악화되어 소련과의 군비 경쟁을 완화할 필요가 있었다. 키신저는 1973년 베이징 미국 연락사무소 개설을 위해 중국을 다시 방문했을 때 닉슨 대통령에게 "우린 이제  암묵적으로 동맹이 됐다"는 편지를 보내며 환호했다. 적어도 당시에는 위에서 언급된 4명의 미·중 지도자들은 개인적 신뢰감을 바탕으로 평화를 위한 역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채워갔다.   

1971년 키신저의 극비 중국 방문은 냉전  질서를 허문 데탕트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었다. 당시 '잠자던 거대한 용(龍)' 중국을 다른 국가들과의 무역과 투자를 통해 고립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야말로 미국을 더 안전하게 할 것이라는 그의 믿음은 확고했다. 미·중 수교 이후 미국의 기업들은 인구 10억의 거대한 중국 시장으로 몰려갔다. 1989년 톈안먼(天安文) 유혈 사태에도 불구하고 양국 간 무역과 투자·교류는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 중국의 몸집은 너무 거대해져 '슈퍼 파워' 미국의 지위를 크게 위협하고 있다. 오늘날의 중국의 눈부신 경제발전은 미국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이제 미국은 자칫하면 중국의 도전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중국에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미국의 중국 견제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적어도 10년 전부터 미국은 공장이 문을 닫고 일자리가 감소하는 것을 중국 탓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2012년부터는 미국인들의 대(對)중국 여론도 긍정에서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미국은 그동안 야심찬 도전자에 대해 가벼운 견제의 잽을 날리다가 이젠 강 펀치를 실제로 휘두르며 돌진할 태세이다.

양국은 '관세폭탄'을 퍼붓다가 일시적으로 휴전에 들어갔다. 이번 무역 전쟁에서 누가 승자가 될지 견해가 엇갈리지만 미·중 간 대결이 다시 격화되면 국제 무역질서가 훼손되고 세계 경제는 엄청난 피해를 받게 될 전망이다.  하지만 양국의 무역 전쟁은 장기화될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이는 무엇보다도 급부상하는 중국에 대해 미국이 강경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의견이 미국의 정치인들뿐 아니라 기업인, 학계, 미디어 등 여러 분야에서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서서히 글로벌 경제 질서 속으로 들어가면 중국의 정치와 사회도 서구와 융합되는 모습으로 변할 것이라는 미국의 기대감은 시진핑 국가주석의 1인 체제가 공고화되면서 사라지고 있다. 미국 기업들은 중국이 자신들의 기술을 절취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대학 교수들은 중국에서 건너온  유학생 일부가 스파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군부는 중국의 팽창하는 군사력에 대해 경계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초기에 그의 '오른팔'로 불리다 경질된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지난 9월 홍콩 일간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가진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전쟁 전략은 유례없으며 중국을 거대하고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라며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에서 손꼽히는 대중 강경파이며 극우파의 상징인 배넌은 주한미군 철수와 중국과의 무역전쟁 주장과 같은 극단적인 미국우선 고립주의를 주창하던 인물이다. 그는 작년 8월 트럼프의 책사에서 물러난 직후 미 동부 코네티컷주 켄트의 시골 마을에 있는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자택을 방문했다. 중국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 위해서였다. 배넌은 키신저가 국무장관으로 외교 정책을 이끌던 당시의 대중 정책이 이젠 시대에 너무 뛰떨어진 것이라는 것을 피력하고 싶었던 것이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키신저는 배넌과의 수시간에 걸친 대화 후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서로 견해가 달랐기 때문이다. 키신저는 미·중 관계가 아무리 악화될지라도 "부분적인 협력'은 필요하다고 배넌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일 미·중 정상 간의 '90일간 휴전' 합의 후 양국은 무역 전쟁을 물밑에서 타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트럼프와 만나기 몇 주 전 베이징에서 9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자문관 역할을 하고 있는 키신저 전 국무장관과 만났다. 철저한 국제정치 현실주의자인 키신저는 이 자리에서 "미국과 중국이 전면적으로 맞서면 구소련 붕괴 이후에 정착된 현재의 세계질서가 무너질 것"이라며, 중국이 더 이상 미국에 맞서지 말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은 지난 18일 중국 개혁·개방 40주년 연설에서 덩샤오핑의 중국특색 사회주의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중국몽(中國夢) 실현에 노력할 것이지만 중국은 영원히 패권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미·중 수교의 산파 역할을 했던 키신저.  반세기 만에 또다시 두 정상 사이를 오가면서 누구보다도 남다른 감회를 느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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