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자의 공지마지]​맹자가 와서, 요즘 한반도 외교판을 둘러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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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영길 발행인
입력 2018-10-11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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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위원장과 만난 미국 폼페이오 장관. 트위터 캡처]



2018년 10월8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무장관은 중국을 방문했다. 그가 김정은 북한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을 때와는 분위기가 딴판이었다. 시진핑 주석과의 면담도 없었고, 왕이 국무위원과의 회담은 냉랭했다. 한반도에서 환대받은, ‘북미 비핵화회담’의 한 축인 미국을 시큰둥하게 대한 건 최근 소용돌이치는 남북주변의 4강 외교지도에서 인상적인 대목이었다. 그 소용돌이는 더 급박해질 전망이다. 곧 블라디보스톡에서 북러 정상회담이 있을 것이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달중 중국을 방문해 중일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며, 이어 북일 정상회담까지 모색하고 있다.

그야말로 한반도는 21세기 4강외교의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백미는 물론, 11월로 예정된 김정은-트럼프 2차 북미정상회담일 것이다. 4강의 소용돌이는 한반도의 새로운 흐름이 주도하고 있으며 또한 4강의 움직임은 한반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귀착될 것이다. 이런 흐름과 변화를 주도하는 ‘중재자’역할을 맡은 한국은 올 11월이 국가명운을 건 타이밍일지 모른다. 어느 하나도 만만치 않은 4대국과 그들을 지렛대로 삼은 남북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세계 외교사에 남을 용기와 끈기와 숙고(熟考)와 결행(決行)의 기념비일 수 있다.

이 시점에서 맹자의 ‘낙천자 외천자(樂天者 畏天者)’를 생각한다. <양혜왕편>에 나오는 이 말은, 작은 나라와 큰 나라의 외교 기본을 천명하고 있다.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대하는 것은 하늘의 태평함을 즐기는 것처럼 해야 하며,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대하는 것은 하늘의 삼엄함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 하늘의 태평함을 즐기면, 세상을 보전할 수 있고, 하늘의 삼엄함을 두려워하면 한 나라를 보전할 수 있다. (以大事小者,樂天者也 以小事大者,畏天者也。樂天者保天下,畏天者保其國(이대사소자 낙천자야 이소사대자 외천자야 낙천자보천하 외천자보기국)).

이렇게 말했던 맹자가 와서, 한반도를 들여다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우선 트럼프 미국대통령. 그간 한국에 수출했던 전략무기의 천문학적 액수는 벌써 까먹은 듯 하고,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손질해서 자국의 마이너스를 손질하는 센스. 안보혈맹이자 경제파트너인 그는 손해보고는 거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시진핑 중국주석. 2015년 베이징 전승절 기념식서 그는 푸틴대통령과 함께 천안문에 올라섰다. 이때 함께 있었던 사람이 박근혜 전대통령이다. 당시 중국내 박 전대통령의 인기는 스타급이었다. 시주석도 최상의 예우를 한 바 있다. 요즘은 어떤가. 중국인들이 싫어하는 한국대통령이 ‘그분’이 됐다. 사드배치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천안문에 올랐던 박 전대통령에 대한 ‘당시 호평’은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이게 대국 외교의 비정한 진면목일까.

러시아. 지금 얘기는 아니지만, 우리 역사에 치명적인 기억을 더듬어 보자. 1950년 1월12일 미국은 한반도를 방위선에서 제외한다는 ‘애치슨라인’을 발표한다. 남한의 전략적 가치가 낮게 평가된 것일까. 미군은 철수했고 북한의 오판으로 6.25전쟁이 터진다.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공산당 서기장은 이 전쟁을 통해 중국과 미국이 한반도에서 맞붙은 상황을 만들어낸 셈이다. 당시 강대해졌던 양국의 전력을 제어한, 일종의 이이제이(以夷制夷)였다. 북한 김일성의 손을 들어주면서 미중의 동북아갈등을 고착화시켰으니, 놀라운 심산(心算)과 술수다.

이런 대국(大國)들이니, 세상의 태평함을 만들어낼 ‘큰 외교’보다는 철저한 국익 중심의 주판알 외교를 벌이는 건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맹자가 개탄하는 소리가 들릴지언정 현대 외교의 비정한 현실이다.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험난한 다자외교에 제대로 임하고 있는가. 대국의 ‘낙천자’를 기대할 순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순리의 삼엄함을 두려워하는 ‘외천자’를 실천할 수 있을까. 그러려면 대국의 국익외교에 부응하는 투철한 실리와 함께, 한반도의 미래의 만들어낼 비전을 함께 갖추는 실사구시(實事求是)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 최근 흥행 영화이기도 한 ‘안시성’의 전투처럼, 온국민이 일치단결해 외교전투를 치를 수 밖에 없어 보인다.

한데 현실은 어떤가. 갈등공화국이라고 할만큼 곳곳이 갈등이다. 진보와 보수간 진영갈등은 기본과 원칙,상식을 한참 벗어나 있다. 북핵과 미중무역전쟁이 초유의 외교적 긴장감을 자아내고 있는데도 정치지도자들의 가벼운 언행과 품격없는 비방들은 그야말로 하루하루 공해같은 뉴스를 채우는 아수라가 되었다. 치명적인 적전분열(敵前分裂)이 불안하지도 않은가. 요즘 정치인들의 말들을 구업(口業)에 비유하는 이도 있었다. 구업은 불교용어로, 간단한 말이 아니다. 천수경의 <일악참회(一惡懺悔)>에 등장한다. 구업은 망어(妄語:거짓말),기어(綺語:사기말),양설(兩舌:두가지 말),악구(惡口:욕)가 사람들을 속이는 죄로 가장 길고 지독한 형벌을 받는다고 돼 있다. 천하는 그야말로 백척간두로 나아가는 느낌인데, 이들의 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유비무환, 국리민복을 위해 그 혀와 머리를 써야하지 않겠는가.

정유재란때의 의병처럼, 1907년 일제에 맞서 국채보상운동을 벌인 민초들처럼, 외환위기때 금모으기운동에 나섰던 국민들처럼, 촛불을 뛰어나왔던 시민들처럼, 속이 터진 민초들이 나오기를 기다리는가. 기본, 원칙,상식의 정치가 돌아와야 기본, 원칙, 상식의 외교가 가능하다. 하늘의 삼엄함을 두려워 하면 최소한 나라의 안전은 지킬 수 있다는 맹자의 말이, 요즘 푸른 가을하늘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듯 하다.

                                                      곽영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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