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 파탄잘리의 요가수트라] 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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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 서울대 교수(종교학)
입력 2018-09-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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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가수트라I.30

 

배철현 교수(서울대 종교학)

산란
‘요가수련’이란 반복이며 자신이 원하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금 당장 실현하기 위한 연습이다. 삶에 가치가 있는 것들이 정성과 몰입을 요구한다. 이것들을 통과하지 않는 가치는 아침에 등장했다 저녁이면 시들어 버리는 하루살이와 같다. 나는 새벽 여명에 산 너머 어디에선가 광채를 조금씩 보여주는 태양을 기다리며, 하얀 방석 위에 앉았다. 어제 일들을 반추해 보며 묻는다.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거룩한 가치를 달성하기 위해 온전히 집중했는가? 아니면, 오감의 자극이나 타인들의 평판에 경도돼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생각, 말, 그리고 행동으로 어제라는 시간을 낭비했는가? 나에게 감동적인 나를 위해 뚜벅뚜벅 정진하는데, 그 걸음을 방해하는 훼방꾼은 누구인가?

그 훼방꾼은 내 자신이다. '요가수트라' I.29에서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외부의 평가에 연연하고 외부의 자극에 쉽게 동요되는 마음의 산란을 ‘빅세파(viksepha)'라고 불렀다. 요가수트라 I.30은 요가수련자의 마음을 분산시켜 수련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아홉 가지 훼방꾼을 나열한다. 마음의 산란이란 구심점으로부터 불특정 다수의 외부로 무작위로 분산하는 상태다. 요가수련자가 수련을 통해 장악해야 할 대상들이다. 우리 대부분은 외부의 유혹에 쉽게 반응하여 마음이 끊임없이 동요한다.

목표망각
내가 스스로 나의 마음을 온전히 헌신할 수 있는 목표를 망각하거나 그것을 소홀히 여길 때 나는 내가 당연히 가야 할 길을 잃는다. 나는 하루라는 수련장을 이탈한다. 그리고 힘을 쓸데없이 소진한다. 요가 수련은 42.195km를 달리는 마라톤 경주와 같다. 마라토너가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목표 지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지점을 알지 못하는 것은, 선수가 정해진 길을 달리다가, 누가 길가에서 손짓한다고 해서, 그를 따라 샛길로 빠지는 것과 같다.

이족보행을 한 인류는 사족보행하는 동물들과 경쟁하고 사냥하기 위해, 몸에서 서서히 털을 제거하여, 오랫동안 뛸 수 있도록 진화했다. 사족보행하는 포유동물들은 온몸이 털로 덮여있어 체내에서 분비되는 땀을 배출하기 위해 20분 정도 달린 후엔 반드시 숨을 고르며 쉬어야 한다. 체내 온도가 3도 이상 올라가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2시간 이상 달리는 동안에 지속적으로 땀을 배출하여, 체내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 특히 마라토너들은 30km정도에서 뇌에서 고통을 잊게 하는 신경화학물질인 도파민과 세르토닌 등이 분비된다. 이 경험을 ‘러너스하이(Runner’s High)'라고 부른다. 러너스하이는 목적지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힘차게 발을 내딛는 선수에게만 주는 진화의 선물이다.

우리가 목표를 상실하거나 망각한다면 그를 끊임없이 유혹하는 훼방꾼들을 물리칠 수 없다. 그가 어떤 단기적인 목표를 세우지만, 그 목표가 자기 삶의 궁극적인 목표와 일치하지 않는다면, 일상에서 마주치는 장애물 앞에서 넘어지고 만다. 그는 자신을 훈련시켜 궁극적인 가치를 실현하도록 만드는 분명한 목표선정과 그 목표에 대한 전폭적인 헌신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사회의 제 분야에서 최고라고 인정되며 존경을 받는 리더들은 보통사람들이 경험할 수 없는‘러너스하이’를 경험해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더 자신을 수련하여 그 목표점을 숭고하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세명의 마라토너들' (기원전 333년, 고대 그리스 판-아테네 경기 상품 항아리 테라코타, 크기 67.3 cm, 영국 박물관) [사진=배철현 교수 제공]


외부시선
내가 요가수련에 몰입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내 시선과 관심이 내 자신이 아닌 외부의 자극을 향해있기 때문이다. 나는 몇 년 전부터 TV 시청을 줄였다. 지금은 외국의 다큐멘터리, 감동적인 영화, CNN 그리고 스포츠 경기만 즐겨 본다. 한 채널 건너 등장하는 무한히 등장하는 홈쇼핑은 나에게 지속적으로 ‘나를 인생의 중요한 것을 소유하지 않은 부족한 사람’으로 만든다. 내가 그 물건을 사지 않으면, 나는 멍청한 사람이거나 진부한 사람으로 전락시킨다. 홈쇼핑 채널 중간 중간에 나오는 내용들은 더 심각하다. 굳이 내가 몰라도 되는 방송인들이 나와 내가 보고 싶지 않은 그들의 일상과 잡담들, 그들이 음주하며 수다를 떠는 것, 그들이 먹는 것은 내 시선을 침범한다. 또한 선정적인 옷과 몸짓으로 떼를 지어 노래하는 아이들과 유명 지식인들이 돌아다니며 상대방의 얄팍한 지식에 서로 감동하고 찬양한다. 휴대폰이 나를 외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내가 보고 싶은 자료를 쉽게 찾아준다. 그러나 쉴새없이 울리는 휴대폰 벨소리와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알림 소리가 나를 휴대폰 사용 기피자로 만들었다. 내가 내 자신을 위해 몰입하는 시간과 공간을 함부로 침입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외부 세계의 물건과 타인의 시선에 경도돼 있다. 내가 간절히 원하는 일을 하기 보다는 주위 사람들이 선호하는 일을 하여 인정받기 원한다. TV와 휴대폰은 나의 정신을 쉽게 분열시켜 나를 공허하게 만든다. 일본이나 미국에서 지하철을 타면 책을 읽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책을 골라, 틈틈이 자신이라는 무식과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다. 우리 지하철 풍경은 전혀 다르다. 겉보기에만 IT강국이다. 우리가 초고속 인터넷을 통해 탐닉하는 것은 인터넷 포털의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뉴스와 인터넷 게임이다. 자신에게 온전히 몰입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아닌 외부의 자극에 쉽게 자신을 항복시킨다.

우리가 스스로를 제어하지 않으면, 우리는 쉽게 자신의 관심이 본능적으로 중심에서 벗어나 외부로 달려나가려는 성향인 원심성(遠心性) 환자가 된다. 그러나 요가는 원심성 환자를 구심성(求心性) 인간으로 개조하는 훈련이다. 파탄잘리는 요가수트라 I.29에서 요가훈련의 결과를 “마음속 깊이 숨어있는, 항상 내면을 향하는 진정한 의지(意志)”의 표출이라고 말했다. 구심성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고귀한 삶의 모습을 위해 자신의 환경과 주위를 정리해 그 삶을 달성하기 위해 효과적으로 자신의 시간과 장소를 장악한다.

훼방
파탄잘리는 요가수트라 I.30에서 요가수련자를 끊임없이 유혹하여, 외부의 자극에 본능적으로 자극하도록 유혹하는 훼방꾼 아홉 가지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브야디 스트야나 삼샤야 프라마다 알라스야 아비라티 브라티다르샤나 알라브다 부미카트바 아나바스티타트바니 치타 빅세파 테 안타라야(vyādhi styāna saṁśaya pramāda ālasya avirati bhrāntidarśana alabdha bhūmikatva anavasthitatvāni citta vikṣepāḥ te antarāyāḥ)" 이 긴 문장에 대한 번역은 다음과 같다. “병, 권태, 의심, 소홀, 게으름, 욕심, 미혹, 무목적, 불안정 (아홉 가지다) 이것이 (요가수련자들의 수련을 막는) 마음의 훼방꾼들이며 장애물들이다.” 파탄잘리는 마음과 육체를 혼미하게 하여 훈련을 하지 못하도록 마음을 산란시켜 목적지까지 갈수 없도록 막는 조건들을 나열했다.

나의 수련을 막는 첫 번째 훼방꾼은 ‘병(vyādhi)'이다. 요가훈련을 위해 자신의 몸을 최적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요가는 육체 훈련이면서 정신훈련이다. 이 두 가지 훈련은 하나다. 파탄잘리는 육체 훈련을 강조하는 ‘하타 요가’의 두 요소이자 자세 훈련인 ‘아나사’와 호흡 훈련인 ‘프라나야마’를 요가수트라에 포함시켰다. 두 번째 훼방꾼은 ‘무기력(styāna)'이다. 어떤 수련자는 건강하지만 요가수련을 하겠다는 의지가 부족하다. 만성 피로는 자신의 삶에 뚜렷한 목표를 상실할 때, 다가오는 병이다. 자신이 무기력하여 훈련을 하지 않아 육체가 점점 약해진 상태다. 세 번째는 ‘의심(saṁśaya)'이다. 요가수련의 당위성과 결과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없는 마음의 상태다. ‘의심’은 성공을 방해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자신의 목표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신뢰, 자신과 자신이 선택한 훈련방법에 대한 충성은 요가 훈련에 필수적이다. 의심은 목표를 가리고 수련자를 그 길에서 이탈시키는 단초를 제공한다. 네 번째는 ‘소홀(pramāda)'이다. 소홀은 훈련을 하찮게 여겨 탁월함을 퇴색시키는 원인이다. 소홀은 인간을 진부하게 만들고 철저는 인간을 월등하게 만든다. 요가는 마치 어린아이가 불을 가지고 노는 것과 마찬가지다. 만일 요가수련을 소홀히 한다면, 곧 해를 입게 된다.

다섯 번째는 ‘게으름(ālasya)'이다. 게으름은 훈련에 대한 의욕과 의지가 부족한 ‘권태’와는 달리, 편리와 익숙함에 탐닉하여, 최선을 다하지 않으려는 습관이다. 무기력이 육체적인 병이라면 게으름은 심리적인 병이다. 건강을 회복하면, 무기력을 극복할 수 있지만, 게으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습관을 수정해야 한다. 여섯 번째는 ‘세속적인 욕심(avirati)'이다. 욕심은 자신의 존재 의미가 타인과의 경쟁에 있다고 착각해 자신에게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남들을 부러워하고 추종하는 마음이다. 만일 세속적인 부, 명에, 명성을 효과적으로 획득하기 위해 요가수련하다면 그는 실패할 것이다. 요가는 남들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자신을 극복하여 자신에게 자랑스런 자신을 구축하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일곱 번째는 ‘미혹(bhrānti-darśana)'이다. 미혹이란 자신의 편견과 무식에 근거해 세상을 보고, 자신이 본 것이 허상이 아니라 참모습이라고 착각하는 마음이다. 내가 지금 보는 ‘붉은 색’은 정말 붉은 색인가? 그 색은 내 안구로 들어와 내가 인식할 수 있는 한계 안에서 추상적으로 ‘붉다’라고 간주한 것이다. 미혹은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한 소크라테스의 겸손을 통해 줄어들거나 사라진다. 여덟 번째는 ‘무목적(alabdha bhūmikatvad)'이다. 무목적이란 요가수련자가 삼매경에 진입하지 못해,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가 궁극적인 목표를 위한 중요한 단계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때 생기는 마음이다. 마지막으로 아홉 번째는 ‘불안정(anavasthitatvāni)'이다. 불안정이란 자기 자신을 직시하지 못해, 무슨 훈련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다. 그것은 마치 태권도를 막 시작한 초보자가 검은 띠 훈련을 하려고 시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이 훼방꾼들이 내 삶에 들어와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가? 나는 나를 위해 정신적인 영적인 ‘러너스하이’를 경험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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