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정치] [단독] 국회의원 겸직금지 결정, 국회의장 ‘입맛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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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인해 기자
입력 2017-12-21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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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장, 윤리심사자문위 의견 존중해 겸직금지 결정

  • ‘겸직 불가’·‘사직권고’ 가르는 객관적 기준 부재

  • “판단 주체에 따라 달라진다면 공동규율 오작동”

정세균 국회의장이 지난 6일 새벽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2018년도 예산안 수정안이 통과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사진=연합뉴스]


국회의장이 국회의원 겸직 금지에 대한 결정을 내릴 때 객관적 심사 기준이 없어, 의장 개인의 자의적 판단에 좌우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관련 기사 [법과 정치] 20일자 '겸직 사직권고 국회의원, 80%는 여전히 버티기' 참조)

21일 국회에 따르면 윤리특별위원회 산하 윤리심사자문위원회는 지난해 6월 ‘제20대 국회의원 겸직 및 영리업무 종사 금지 심사기준’을 최종 마련했다. 윤리심사자문위는 의원 겸직에 대한 의견서를 의장에게 제출하기 위해 설치된 기구로, 의장은 윤리심사자문위의 의견을 존중해 겸직 금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국회법 제29조는 현역 의원이 국무총리·국무위원과 ‘공익 목적의 명예직’, ‘다른 법률에서 의원이 임명·위촉되도록 정한 직’, ‘정당법에 따른 정당의 직’을 제외하곤 원칙적으로 겸직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윤리심사자문위의 심사기준을 살펴보면, ‘공익 목적의 명예직’은 ‘단체를 대표하지 않고, 단체의 주요 사항에 대한 결정권이 없으며, 단체 운영에 직접 관여할 수 없어 의원의 성실한 의정활동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직’으로 ‘대내외 업무사항을 결정, 집행, 감독하는 권한이 없는 직’과 ‘비상근 무보수의 직’ 두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윤리특별위 관계자는 “지난해 6월 심사 기준 발표 이후 수정·보완된 부분이 있다”며 “일차적으로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등록·설립 허가가 난 단체나 ‘비영리민간단체 지원법’에 따라 중앙기관 단체장이 지정한 단체를 공익단체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윤리심사자문위가 이 같은 내부 심사 기준에 따라 의원이 신고한 겸직에 대해 ‘겸직 가능’, ‘겸직 불가’ 의견을 국회의장에게 내면 의장은 국회법상 이를 존중해 ‘겸직 가능’, ‘겸직 불가’, ‘사직권고’ 등을 결정한다.

문제는 윤리심사자문위의 ‘겸직 불가’ 의견에 대해 의장이 ‘겸직 불가’나 이보다 완화된 형태의 ‘사직권고’ 결정을 내리는 데, 이를 가르는 객관적 심사 기준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사직권고는 겸직 불가와 달리 법적 구속력이 없어 권고를 이행하지 않더라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지만, 겸직 불가 판단을 받은 의원은 통보받은 날부터 3개월 이내에 해당 직을 휴직 또는 사직하지 않을 경우 윤리특별위 심사를 거쳐 징계를 받게 된다.

20대 국회 개원 이후 국회의장이 사직을 권고한 15명 가운데 지난달 30일까지 실제로 사직하고 국회사무처에 사직 신고서를 제출한 이는 20% 수준인 3명에 불과했다. 건수로 보면 23건 중 4건에 그쳤다. 반면 현재까지 겸직 불가 판단을 받고 3개월 이내에 해당 직을 휴직 또는 사직하지 않아 윤리특별위로부터 징계를 받은 의원은 없었다. 

국회의장실 관계자는 “국회의장이 겸직 불가·사직권고 판단을 내릴 때 객관적이고 명시적인 기준이 있는 건 아니다”며 “다만 해당 의원들이 이전 18대·19대 국회 때는 어땠는지 등 다른 여러 가지 요인들을 함께 들여다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겸직 가능과 겸직 불가 요인이 모호하게 섞여 있는 사안들 같은 경우 사직을 유도하는 차원에서 사직 권고를 내린다”고 말했다. 

이선미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팀장은 “겸직 불가와 사직권고를 가르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건 누가 봐도 문제”라며 “내부 가이드라인 없이 누가 판단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면, 그것은 공동의 규칙·규율로 작동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도 “윤리심사자문위의 심사 기준이 있다는 것은 국회의장도 따라야 하는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며 “만약 자문위의 기준이 시의성 등 부분에서 적절하지 못하다고 판단된다면, 의장이 자문위에 소명하는 절차와 같은 과정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아울러 누가 윤리특위의 기준을 마련하고 실제 운영할 것인가의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며 “한국도 영국과 일본, 미국처럼 시민사회가 국회의원의 직업 윤리적 측면에 관여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회법상 겸직 금지 예외조항인 '공익 목적의 명예직'을 삭제하거나 보다 구체화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제기된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애초 국회법에서 국회의원 겸직에 대해 절대 금지가 아니라 다소 융통성 있게 만들어 놓았다”며 “지금 사직 권고받은 의원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맡은 직이 ‘공익 목적의 명예직’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국회에서 공익목적의 명예직을 겸직하는 것에 대한 가능성을 남겨두기보다 다 없애버리든가, 아니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방식으로 관련 법을 개정하는 게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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