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수의 변방별곡] 휴가들 잘 다녀오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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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 작가
입력 2017-08-14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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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서명수 대표]


8·15 광복절 징검다리 연휴에 막바지 휴가를 떠나려는 사람들로 전국의 고속도로는 주말 내내 정체를 빚었다고 합니다. 공항 역시 모처럼의 징검다리 연휴를 이용하려는 해외여행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는 소식과 북한의 미사일 도발 위협에 따른 ‘한반도 긴장’ 뉴스가 교차하고 있지만, 휴가를 떠나는 대열은 줄어들지 않는 모양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아직 여름휴가를 가지 못한 사람들이 자격지심을 느낄 수도 있는 계절입니다.

변방에 머물고 있는 아빠를 찾아 나선 아이들을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맞이했는데, 그곳에서 만난 여행객들의 복장과 표정이 저 역시 솔직히 부러웠습니다. 그러나 입시를 앞둔 수험생이나 수험생 가족, 혹은 임용고시, 공무원시험 등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들에게 휴가는 먼 나라 남의 일로 치부되기도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익숙해진 여름날의 이 같은 풍경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우리는 언제부터 여름휴가에 목을 매다시피 했을까요? 제 유년의 기억을 더듬어 보더라도 여름에는 으레 '바캉스'라는 단어를 되뇌면서 무조건 해수욕장이 있는 바다로 떠났던 기억이 납니다. 그 한편에는 '여름휴가 길은 고생스러웠다'는 기억이 함께 덧씌워집니다. 

우리는 왜 여름에 집중적으로 휴가를 가고 있을까요? 여름 휴가비를 따로 책정해서 지급하는 회사가 꽤나 있고, 6월이 오면 각 부서마다 휴가일정을 겹치지 않게 조정하는 일들이 관행처럼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한꺼번에 휴가를 떠나게 될 경우 업무에 지장이 있지 않을까 염려해서일 겁니다.

업무 때문에 많은 직장인들이 법정휴가를 제대로 다 쓰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에 남들이 다 가는 여름휴가부터 쓴다고도 합니다. 그래선지 취임한 지 100일이 되지 않은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의 ‘연가’를 모두 쓰겠다는 공약을 실천하겠다며 엄중한 안보상황에도 불구하고 휴가를 떠나는 퍼포먼스를 벌였습니다. 대통령의 휴가를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마저 1년 중 가장 더운 때인 ‘7월 말~8월 초’를 선택해서 휴가를 가는 것을 당연시하는 휴가의식은 문제가 없을까 따져보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몰리니까 휴가지 물가가 올라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성수기 바가지요금을 잡겠다고 물가당국이나 행정관청이 개입해봤자 공급보다 수요가 많은 시장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할인이 아니라 할증을 하더라도 평소보다 더 쾌적한 숙소와 더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처럼 누구나 떠나는 여름휴가에 저는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장마와 폭염 혹은 집중호우가 번갈아 이어진 올해와 같은 변덕스러운 날씨에 선뜻 일을 접고 여행을 떠날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휴가는 열심히 일한 노동자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이고 육체적·정신적으로 피로가 쌓일 때 일을 하지 않겠다는 '무위(無爲)'의 행위입니다. 여행 역시 누군가 가라고 할 때, 혹은 다른 사람들이 떠날 때 가는 것이 아니라, 떠나고 싶을 때 혹은 여행하기 좋을 때 떠나는 것이 여행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열하는 태양과 폭염을 즐기고 싶다면 여름에 가고 피로를 풀기 위한 여행이라면 피로가 쌓였을 때 언제든지 떠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직장문화에서는 ‘(여행을)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는 없다’고 합니다.

1998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목격한 풍경은 당시로서는 충격적이었습니다. 해외여행이 지금처럼 대중적이지 않았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유명한 관광지를 구경하고 사진을 찍고 인증을 하는 것이 여행의 정석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 숙소 호텔에서 만난 한 유럽여행객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호텔에 머무는 내내 호텔 내 수영장에서 유유자적하거나 책을 읽거나 산책하는 것 외에는 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곳곳의 관광지를 둘러보고 파김치가 돼서 다시 숙소로 되돌아오는 '패턴관광'을 했습니다. 사흘째 저녁에도 여전히 수영장에서 놀고 있는 그를 보고 ‘호텔에서 쉴 바에야 이 먼 곳까지 비행기를 타고 왜 왔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20년이 지난 요즘에서야 그 여행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요즘엔 유명관광지로 가지 않고 집을 떠나 아예 도심 호텔을 찾아 편안하게 휴식하고 한적한 시간에 산책하고 영화를 보고 평소 가지 못한 박물관을 찾아나서는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행은 떠나고 싶을 때 떠나고 쉬고 싶을 때 쉬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도 이제야 알게 된 것입니다.

경제적 여유가 없던 1980년대 이전에는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여행다운 여행을 꿈꾸지 못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외환보유고가 걱정되던 시절에는 해외여행을 규제하기도 했습니다. 이제우리에게는 여유가 생겼고 규제도 사라졌습니다. 일상을 떠나 다른 곳에서 활력을 찾아서 돌아오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무위의 여행’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휴가를 떠나지 못했지만 휴가 일정이 남아 있다면 피로가 쌓일 때, 일상을 떠나고 싶을 때, 스트레스를 풀고 싶을 때, 여행을 계획하는 것이 어떨까 제안합니다. 휴가철이나 축제철에는 사람들이 몰리게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관광지 물가는 비싸지게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비싼 물가를 감당할 수 있는 여행을 원한다면 북적이는 관광을 즐기고 호젓한 여행을 계획한다면 그런 곳을 찾아 떠나면 됩니다.

휴가를 다녀왔는데 개운하지 않고 오히려 피로가 더 쌓여서 짜증이 나고, 바가지요금에 어쩔 수 없이 과다 지출하게 된 휴가비로 카드결제일을 걱정할 고통스러운 휴가를 더 이상 계속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세계에서 최장시간의 노동시간을 유지하고 있는 ‘일중독’ 국가입니다. ‘잘 쉬어야 잘 일할 수 있다’는 말처럼 각자가 생각하는 잘 쉬는 법이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변방의 여름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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