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희칼럼] 가짜뉴스와 대적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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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병희 기자
입력 2017-07-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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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장영희]

초빙논설위원·시청자미디어재단 서울센터장(경제학박사)


지난 5월 대선이 끝난 후 소강상태를 보이던 가짜뉴스 사건이 다시 불붙고 있다. 역시 국민의당발 제보조작 사건이 재점화시켰다. 그 불길이 어디까지 번질지 예측하기 어렵다.
가짜뉴스의 기승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대선이 끝난 미국과 프랑스도 몸살을 앓았다. 오는 9월 총선을 앞둔 독일 정부도 선거에 미치는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가히 세계는 가짜뉴스와 전쟁 중이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2016년 세계의 단어로 ‘탈진실(post-truth)’을 선정할 만큼 가짜뉴스는 탈진실의 시대를 대변하고 있다.
가짜뉴스(Fake News)란 무엇일까. 정체를 규정하기가 도통 쉽지가 않다. 가짜뉴스는 정식으로 간판을 내건 언론사가 생산한 오보에서부터 진원지를 알 수 없는 유언비어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지난 6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세계신문협회(WAN-IFRA) 주최로 열린 ‘2017세계편집인포럼’에서 나온 지적처럼, 흔히 잘못된 정보를 가짜 뉴스로 통칭하지만 의도성과 해악의 정도에 따라 정확히 구분해내는 일은 복잡한 문제다.
지난 2월 한국언론학회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연 ‘가짜뉴스의 개념과 대응방안’ 세미나에서 정리된 개념은 이렇다. ‘정치·경제적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언론보도의 형식으로 유포된 거짓 정보’. 가짜뉴스 범주를 획정해 보자. 우선 풍자나 패러디는 빼고 싶다. 특정 프레임에 맞춘 정보만 제공하거나 앞뒤 맥락을 바꾸는 오도는? 이건 논란이 있을 듯하다. 명백히 속일 의도로 정보나 이미지에 손을 댄 ‘조작’과 100% 꾸며낸 ‘날조’라면? 이건 누구나 수긍하는 가짜뉴스가 틀림없다.
사실 가짜뉴스는 인류 커뮤니케이션의 역사만큼이나 길고 오래된 얘기다. 역사 속에서 무한 반복돼온 가짜뉴스에 최근 새삼 경각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이전과 확연히 다른 위험성과 해악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21세기형 가짜뉴스’의 중심에는 글로벌 IT기업이 있다. 언론사가 아니다. 가짜뉴스의 폭증은 2010년대 인터넷이 발달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전면화되고부터다. 사람들이 뉴스를 접하는 채널이 전통 미디어인 신문·방송에서 포털사이트와 SNS 같은 디지털미디어 플랫폼으로 옮겨갔다. 이제 페이스북과 트위터·구글 같은 IT 기업은 ‘디지털 뉴스 중개자’이고, 그들이 만든 플랫폼은 가짜뉴스의 온상이 됐다.
IT기업발 가짜뉴스의 해악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2016년 11월에 치러진 미국 대선이 아닐까. 당시 페이스북에 가장 많이 공유된 기사 5개 중 4개가 가짜뉴스였다. 인터넷 매체 '버즈피드(BuzzFeed)'가 지난해 11월에 낸 분석 기사에 따르면, 미국 대선 전 3개월간 가짜뉴스 상위 20개의 페이스북 내 공유와 반응, 댓글 수는 871만건을 넘었다. 이는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같은 주요 언론의 기사에 대한 반응(730만 건)을 웃돈다. 확산 속도도 빠르다. 미국언론연구소(API)가 트위터 10만건을 분석한 결과 자극적인 가짜뉴스의 확산 속도가 이를 바로잡는 뉴스보다 8배나 빨랐다.
이제 언론은 수익성 악화뿐만 아니라 가짜뉴스와의 전쟁에서 이길 방도를 찾아야 한다. 팩트 체킹을 위한 연합체나 소셜미디어 대응팀을 꾸리는 것은 언론사만의 몫이 아니다. IT기업들에 더 다급한 과제다. 페이스북은 ‘저널리즘 프로젝트’를 들고 나왔고, 구글은 검색엔진 알고리즘 개선으로 가짜뉴스 차단에 나서고 있다.
각국 정부도 부심하고 있다. 독일은 아예 강수를 두었다. 지난달 말 독일 연방하원이 일명 ‘페이스북법’이라 불리는 네트워크운용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오는 10월부터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의 소셜미디어 기업은 가짜뉴스나 테러·폭력을 선동하는 게시물, 차별·혐오 발언 같은 불법 콘텐츠를 인지하고도 24시간 안에 지우지 않으면 최대 5000만 유로까지 벌금을 물어야 한다. 한국 국회에도 가짜뉴스를 퇴치하기 위한 3개 법률이 발의되어 있다.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포털사이트와 SNS 사업자가 가짜뉴스임을 확인하고 즉각 삭제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리는 내용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가짜뉴스에 대한 이런 규제나 압박은 도움이 되겠지만 뭔가 부족한 감을 지울 수 없다. 결국 뉴스 소비자 혹은 수용자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가려낼 수 있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3월에 나온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뉴스 판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진짜뉴스와 가짜뉴스를 섞어 6개의 뉴스를 제시했을 때 이를 모두 식별할 수 있는 사람은 1.8%에 불과했다. 절반인 3개를 맞춘 사람도 38%에 그친다.
국민의 뉴스 판독능력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 화제를 모은 책 '무기화된 거짓말'은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 책의 저자인 미국의 신경과학자·인지심리학자 대니얼 J 레비틴 박사는 세 가지 전략적 방어책을 제시한다. ‘전문가와 인터넷을 의심하라’는 방법과 함께 저자가 가짜뉴스에 맞서는 최선의 방어책으로 ‘비판적 사고법’을 꼽는다. 모든 시민에게, 특히 학생 때부터 비판적 사고법을 배우고 가르치라는 것이다. 여기서 비판적 사고법은 ‘미디어를 읽고 쓰며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인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교육과 같다. 미국의 여러 주에서는 이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학교 교과과정에 포함하는 법안이 만들어지고 있다. 안호영 의원이 발의한 법안 중에는 이 내용도 있다. 미디어교육 전문기관인 시청자미디어재단이 가짜뉴스 피해예방 사업을 하도록 하는 ‘방송법 개정안'이다.
비판적 사고법 익히기, 즉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받는 것은 가짜뉴스의 위험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방어무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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