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화보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모두 ‘샹그릴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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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2-22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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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마(白馬)산맥[사진 =인민화보사 ]


바이마둬지(白瑪多吉)는 쑹찬(松贊) 계열 호텔의 창립자이자 대표이사다. 세계적인 여행 사이트인 트립 어드바이저(Trip Advisor)는 2008년부터 9년 연속 쑹찬 계열 호텔을 ‘중국에서 가장 멋진 호텔 25’에 선정했다. 영국의 <태틀러(Tatler)> 잡지는 쑹찬을 ‘세계에서 가장 멋진 호텔 101’에 선정했다. 미국의 CNN 방송은 쑹찬을 중국에서 경치가 제일 좋은 호텔 9곳에 꼽았다.
 

바이마둬지(白瑪多吉)[사진=인민화보사 ]


인민화보 왕숴(王爍) 기자 =새벽의 샹거리라(香格里拉, 샹그릴라)는 햇살이 아름답고 하늘은 깨끗하게 씻어놓은 것처럼 파랬다.
쑹찬린스(松贊林寺, 송찬림사)와 커나(克納)촌 중간에 자리잡고 있는 쑹찬뤼구(松贊綠谷)호텔 정원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상쾌한 향기가 있었다. 빠르게 또는 천천히 불어오는 바람이 마치 퉁소 소리 같았고, 마당 한켠에 쭉 뻗어있는 자작나무와 안개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려 원을 그리며 떨어지고, 그 잎들은 햇빛에 부딪쳐 눈부신 황금색과 검붉은 빛을 뿌렸다. 정원에는 4층짜리 아름다운 짱(藏)족식 호텔이 있었다.
이곳은 바이마둬지가 나고 자란 곳이다. 지금은 중국에서 제일 유명한 부티크호텔 중 하나가 됐다.
전날 밤 출장에서 돌아온 바이마의 얼굴은 초췌했지만 ‘캉바 한쯔(康巴漢子·캉바 티베트 족 사나이)’의 특징인 차분함은 그대로였다. 온화한 말투와 침착한 태도가 마치 잔잔한 물결 같았다. 이런 차분함은 마음에서 비롯된 편안함일까 아니면 타고난 성품일까?
바이마 곁에 있는 관리팀은 출신 배경이 다양하다. 현지 마을 사람, 외국계 임원은 물론 오랫동안 호텔 관리업에 종사한 전문 인력도 있다. 그러나 직원들은 바이마를 사장이지만 자신들의 선생이자 선배라고 생각한다. “그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얻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베푸는 것으로, 자비심과 포용심을 가지고 고객을 대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었다.” 쑹찬뤼구의 매니저인 아전(阿珍)은 “그는 어디서나 타인을 생각한다. 고객과 직원 한 명 한 명에 관심을 갖고 직원들의 가족까지 챙긴다”고 말했다.

뗄 수 없는 고향에 대한 마음
호텔 업계에서 쑹찬은 ‘후발주자’에 속한다. 중학교를 졸업한 바이마는 쿤밍(昆明)의 한 축산학교에서 공부했다. 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와 2년 동안 수의사를 했다. 현지에 방송국이 설립된다는 소식을 들은 바이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을 공부하기로 했다. 윈난(雲南)방송국에서 실습하면서 그는 베이징전영학원(北京電影學院)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었다. 베이징에 온 바이마는 내지 사람들은 짱족문화를 잘 모를 뿐 아니라 오해하고 있는 부분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당시 사람들은 짱족 지역 하면 대개 설산과 매 정도를 떠올렸고 짱족 사람들은 거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짱족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짱족은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으며 내성적인 면도 있다.”
1992년 중앙텔레비전방송국(CCTV)에서 인재를 선발했다. 바이마는 TV라는 플랫폼을 통해 ‘다리’를 놓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 노력으로 보다 많은 내지 사람들이 짱족문화를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한 가족이기 때문이다.”
CCTV에 입사한 바이마는 짱족문화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었고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 1998년 직접 감독하고 촬영한 다큐멘터리 <큰산의 초상(大山的肖像)>이 프랑스 칸 방송제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CCTV 시절 바이마는 일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각 문화에는 모두 우수한 부분이 있다. 그것들을 공부하다 보면 마음이 단련되어 단단해지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자기 마음을 관리할 수 있게 되면 일에 대해 견해가 생기고 이 과정에서 지혜가 생긴다.”
바이마는 스스로 플랫폼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나는 플랫폼이 있으면 더 많은 사람에게 짱족문화를 알리고 민족 간의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가족이 같은 처마아래에 있으면 보다 쉽게 융합될 수 있다.”
당시 한 동료가 윈난(雲南)성 디칭(迪慶)으로 출장을 다녀올 때마다 “디칭은 무릉도원이라고 불릴 정도로 좋은 곳인데 숙박시설은 너무 안좋다”고 바이마에게 푸념을 늘어놓곤 했다. 이 말에 바이마는 프랑스 파리의 아름다운 작은 호텔이 떠올랐다. 방송제에 참가했을 때 그는 개선문 근처 숙소에서 묵었다. 어릴 때부터 살았던 커나촌 집을 떠올린 그는 부티크호텔을 개장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당시 그의 집은 1000여 ㎡ 면적에 두 채가 있었고 한 채는 부모님이 살고 다른 한 채는 여동생과 매제가 살고 있었다.
2001년 바이마는 자기 집을 헐고 6만 위안(약 1000만원)의 현금을 들고 자신의 꿈을 시작했다. 그는 객실 22개 규모의 쑹찬뤼구호텔을 건설했다. 같은 해 그의 고향 윈난성 디칭짱족자치주는 ‘중뎬(中甸)현’이었던 이름을 ‘샹거리라현’으로 바꾸었다.
 

쑹찬츠중호텔 [사진=인민화보사 ]


쑹찬에서 체험하는 현지문화
쑹찬뤼구호텔의 첫 매니저는 친구의 소개로 쿤밍에서 초빙한 사람으로, 4성급 호텔을 운영한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호텔의 정체성 문제로 충돌을 빚었다. “나는 편안하고 문화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호텔을 만들고 싶었지, 떠들썩한 곳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개장 초기 호텔은 경영 면에서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현금흐름도 원활하지 않아 적자를 기록했다. 이후 바이마는 독일인, 오스트리아인을 초빙하고 중국 국내의 시안(西安) 사람도 초빙했지만 그들 모두 호텔을 정상 궤도로 올려놓지 못했다. 당시 호텔은 1인당 식비 11위안에 단체 관광객을 유치하거나 하루 숙박비 80위안에 객실을 내놓기도 했다.
2003년 바이마는 자신이 직접 호텔을 관리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호텔에 살면서 날마다 직원들과 소통하고 그들을 교육시켰다. 이를 통해 직원들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쑹찬과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독려했다. 그런 후 바이마는 지금의 호텔 매니저인 장민(張敏)을 초빙했다. 함께 노력한 결과 호텔은 마침내 양호한 상태로 변했다. 그들은 현지 문화를 잘 아는 직원을 선발해 고객에게 짱족의 종교, 문화, 역사를 소개했다. 그는 “우리 호텔에서 고객들이 짱족 문화의 온화함과 자연스러운 생활 방식을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쑹찬뤼구의 객실 요금은 점점 올랐지만 고객은 오히려 더 많아졌다. 짐을 다른 곳에 놓고 하루만 머물다 가려고 했던 개인 여행객도 일단 하룻밤 묵고 나면 짐을 이리로 가져왔고 하루가 일주일이 되기도 했다.
쑹찬뤼구호텔이 유명세를 타자 투자하겠다고 바이마를 찾아오는 사람도 늘었다. 그러나 바이마는 거절했다. “당시 나는 자본을 유치할 만큼 기반이 잡히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있었다.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해봤다. 남은 시간을 전부 돈으로 바꿔야 할까 아니면 돈으로 남은 시간을 사와야 할까?” 바이마는 일을 하려면 과학적인 방법으로 해야지 함부로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자원은 한번 파괴되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디칭의 관광자원은 세계에서도 드문 것이었다. 운용을 잘할 수 있다면 개발해도 되지만, 좋은 방법이 없다면 지혜가 있는 나중 사람을 위해 남겨두어야 한다.
호텔 설립 초기 바이마의 목표는 분명했다. 하지만 이 목표를 어떤 플랫폼에 접목시켜야 적합할지 고민을 거듭했다. 지속 가능한 플랫폼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거의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연구하고 시험했다. 이 기간 그는 홍보나 광고를 하지 않았고 급속한 확장도 하지 않았다.
2006년 바이마는 마침내 같은 철학을 가진 파트너를 만났고 그의 꿈도 뚜렷해졌다. “지리적으로 디칭은 진사(金沙)강, 란창(瀾滄)강, 누(怒)강이 합류하는 지역에 위치해 있다. 이런 지리적 특징을 잘 활용해 나는 우리 호텔이 옛날의 역참 역할을 하길 원했다. 역참들은 처음과 끝이 연결되는 순환선을 이뤄야 하고 풍경이 모두 달라야 했다.”
2009년 쑹찬린스 맞은편 산에 조루(碉樓·방어형 망루 모양 주택) 형태의 쑹찬린카(松贊林卡)호텔이 개장했다. 모두 수작업으로 완공한 것이었다. 2011년 디칭 중심지역에 쑹찬호텔 4곳이 차례로 개장했다.
샹거리라에서 출발해 차로 약 1시간이면 도착하는 진사강변의 번쯔란(奔子欄)은 과거 차마고도의 필수 경유지였다. 쑹찬번쯔란호텔은 십여 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 안 협곡 사이에 위치해 돌길 하나로 외부 세계와 연결돼 있다. 호텔 창문은 산 입구와 마주하고 창 아래는 마을 사람의 집이다.
번쯔란에서 출발해 바이마(白馬)산맥을 넘으면 란창강변의 더친(德欽)현에 도착한다. 여행객은 대부분 메이리(梅里)설산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쑹찬메이리호텔의 위치는 바이마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부분이다. 객실에서 창문을 열면 신비한 모습을 살짝살짝 드러내는 메이리설산이 정면으로 보인다.
란창강 협곡을 따라 남쪽으로 향하면 츠중(茨中)에 도착한다. 지난 세기 초, 프랑스 전도사가 이곳에 와서 천주교 성당을 지었다. 쑹찬츠중호텔은 성당에서 불과 200여 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츠중의 가정은 대부분 자신의 포도농장을 보유하고 있다. 프랑스 전도사의 양조기술과 해발 3000m 이상에서 자란 양질의 포도가 특색있는 와인을 탄생시켰다.
츠중에서 차로 4시간 가면 타청(塔城)에 도착한다. 이곳에는 유명한 달마동굴과 검은들창코원숭이 국가공원이 있다. 쑹찬타청호텔은 마을, 계단식 밭, 산맥, 강 사이에 박혀있다.
이로써 쑹찬은 샹거리라를 중심으로 하는 아름다운 여행 순환선을 완성했다.
 

쑹찬메이리호텔[사진=인민화보사 ]

쑹찬타청호텔[사진=인민화보사 ]

쑹찬뤼구호텔 직원들 [사진=인민화보사 ]


집같이 따뜻한 짱족식 호텔
많은 여행객이 쑹찬호텔의 짱족문화 분위기에 감탄한다. 4층짜리 쑹찬뤼구호텔의 짱족식 객실에 들어서면 마치 짱족문화의 품에 푹 안긴 듯한 느낌이 든다. 탕카, 조각과 회화, 객실 인테리어, 심지어 방석과 침대 시트 하나하나에서 짱족문화를 느낄 수 있다. 이곳은 판에 박은 듯이 똑같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 때로는 호텔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호텔에 있는 짱족식 가구와 장식품은 대부분 바이마의 개인 소장품이다. 왜 개인 소장품을 로비와 홀, 심지어 객실처럼 부서지거나 훼손되기 쉬운 곳에 놓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바이마는 ‘소장’의 가치는 ‘전시’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소장품이 오랫동안 사람을 못보면 우울증에 걸린다”고 말했다.
원시 생태의 마을과 자연환경을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바이마는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 호텔을 건설했다. 목공, 석공에서 동공(銅工)까지 모든 공예 단계에서 현지 전문가를 최대한 초빙해 만들었다. “쑹찬린카를 건설할 당시 훌륭한 동공을 찾아냈다. 하지만 그는 생계 때문에 부조(浮雕)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우리 호텔로 오면 당신이 하고 싶을 때까지 작업을 계속해도 된다고 말했다. 현재 쑹찬에는 동공이 5명 있다. 문의 테두리와 문고리에서부터 구리솥과 대야까지 모두 그들이 손으로 두드려 만들었다. 쑹찬호텔의 모든 동제품은 그들이 직접 만든다” 이 뿐만이 아니다. 쑹찬은 주변의 전통 수공예 공방과 협력해 손님을 데리고 가 참관하고 체험하도록 하여 소비를 촉진하고 현지 수공예 발전을 이끌었다.
커나촌 출신인 바이마는 교육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 2005년부터 그는 커나촌 아이들의 진학을 후원했다. 쑹찬호텔이 생기는 곳이면 그곳 아이들의 진학을 후원했다. 중학생은 1년에 500위안, 고등학생은 1년에 1000위안, 대학생은 1년에 2000위안씩 후원하고 있다. 그는 ‘삶은 긴 여정이므로 좋은 일을 해야 이 여정이 더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현재 ‘쑹찬 계열’ 직원 가운데 98%가 현지인이다. “현지화된 문화의 특징은 어디서 오는가? 바로 현지 짱족 직원에게서 비롯된다. 그들은 호텔 옆에 사는 마을 사람이다. 그들은 일반적인 호텔 기준에 따라 서비스하지 않고 그들 생활 속의 신앙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친밀한 관계에 따라 일을 한다. 나는 이런 정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라고 믿는다.”
호텔이 발전하면서 바이마는 ‘사람들이 쑹찬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요즘 사회는 너무 척박하다. 치열한 경쟁과 물질만능주의는 사람들에게 너무나 많은 스트레스를 주었다. 2001년 첫 번째 호텔을 개장한 이후 지금까지 벌써 15년이 흘렀다. 나는 쑹찬이 짱족문화를 나누는 동시에 고객에게 먼 곳에 있는 집이 될 수 있길 바란다.”
샹거리라는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파라다이스로, 영국 작가 제임스 힐튼이 1933년에 펴낸 <잃어버린 지평선>이란 소설에서 거론해 유명해졌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이곳에서 자란 바이마에게 샹거리라는 엽서식의 풍경 사진이나 신비한 색채가 가득한 무릉도원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난 행복감이다. 바이마는 “샹거리라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다. 그것은 사심이 없고 사람의 마음을 건드린다”라고 말했다.
인터뷰 마지막에 바이마는 기자에게 최근 쑹찬은 윈난성 리장(麗江)과 시짱(西藏) 라싸(拉薩)에 새 호텔을 건설 중이며, 2017년 5월에 준공해 개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9년 시짱 산난(山南)과 르카쩌(日喀則)에 짓는 호텔이 완공되면 시짱 지역을 순환하는 구도가 완성될 것이다. 그는 “앞으로 기회가 되면 카메라를 들고 다큐멘터리를 찍어 생동감 넘치는 영상으로 짱족문화의 진수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아마도, 바이마의 길은 이제 막 시작된 듯하다.

* 본 기사는 중국 국무원 산하 중국외문국 인민화보사가 제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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