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비선실세 의혹' 최순실 가계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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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10-2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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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씨. [사진=연합뉴스]


아주경제 유선준 기자 =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60)씨가 논란의 핵심 인물로 떠오르면서 아버지 최태민 목사를 비롯한 그의 가족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7일 박정희 대통령 시절 중앙정보부가 작성한 ‘수사 자료’와 1980년 계엄사 합동수사본부가 작성한 ‘조사 자료’ 등에 따르면 1912년 황해도 사리원에서 태어난 최 목사는 1950년 한국전쟁 전 경찰로 활동해 좌익 세력을 검거하는 데 앞장섰다.

이후 잠시 군에서 문관으로 일하다가 사업에 뛰어들어 대한비누공업협회 이사장을 지냈다. 1950년대 중반에는 돌연 승려가 되는가 하면, 경남 양산의 한 중학교에서 교장을 맡기도 했다.

1965년 유가증권위조 혐의로 경찰의 수배를 받았던 최 목사는 1973년 독단적인 교단을 운영하면서 목사로 신분을 바꿨다.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된 건 육영수 여사가 세상을 떠난 1974년쯤이였다. 최 목사는 육 여사가 세상을 떠나고 상심에 빠진 박 대통령에게 여러 차례 서신을 보냈다.

 

최순실 부친인 최태민(왼쪽) 목사와 박근혜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최 목사는 서신을 통해 박 대통령에게 "어머니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 나를 통하면 항상 들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호감을 느낀 박 대통령은 최 목사에게 ‘대한구국선교단’을 발족하라고 명했다. 

최 목사가 총재를 맡고 박 대통령이 명예총재로 추대됐다. 이 단체는 1976년 ‘구국여성봉사단’에 이어 1979년 ‘새마음봉사단’으로 이름을 바꿨다.

중앙정보부의 수사 자료에 따르면 최 목사는 이 단체의 업무를 사실상 총괄하면서 기업으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거두고 조직을 확대해 수백만 명의 단원을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사기와 횡령 등 각종 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나와 있다. ‘수사 자료’ 작성을 주도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10·26 뒤 재판부에 제출한 항소이유보충서 중 ‘구국여성봉사단과 연관한 큰영애의 문제’에서 “이 문제가 10·26혁명의 동기 가운데 간접적이지만 중요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최 목사가 언론의 주목을 다시 받은 것은 1990년 육영재단 운영권을 둘러싸고 박 대통령과 동생 박근령씨가 마찰을 빚을 때였다. 당시 박씨를 지지하던 숭모회 회원들은 재단 고문을 맡고 있던 최 목사의 전횡을 비난하며 그의 퇴진을 요구했다.

이들은 최 목사가 육영재단의 각종 사업을 배후 조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사기꾼 최 목사를 엄벌해 최 목사에게 포위당한 언니 박근혜을 전직 국가원수 유족 보호 차원에서 구출해 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청와대에 제출하기도 했다.

최 목사는 이로부터 4년 뒤인 1994년 지병인 만성신부전증으로 사망했다.

최 목사는 결혼을 다섯 차례 했고 이들 사이에 3남 6녀를 뒀다는 정도만 알려졌다. 최 목사는 첫째 부인과 사이에 장남을, 둘째 부인과 사이에 딸과 아들을, 셋째 부인과 사이에 딸을 낳았다.

그리고 넷째 부인과 사이에 아들을, 다섯째 부인과 사이에 네 딸을 뒀다. 최씨는 최 목사가 마지막에 결혼한 부인 임모씨와의 사이에 둔 다섯 번째 딸이다.

최씨는 박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정윤회씨와 결혼해 딸 정유라(20·정유연에서 개명)를 낳았다. 최씨와 정씨는 2014년 5월 이혼했다.

최씨의 큰언니인 최모씨는 어머니 임씨의 전 남편 소생으로 알려졌다. 아버지인 최 목사에게는 의붓딸인 셈이다.

그의 친오빠인 조순제씨를 두고도 의혹이 제기됐다. 최 목사는 자신의 성을 따르지 않은 의붓아들 조씨를 친아들처럼 대했다고 한다.

조씨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박 대통령이 검증청문회에서 자신을 모른다고 증언하자 “나를 모른다고 했던 부분은 물론 최씨(최태민 목사)와 관련된 진술은 대부분 거짓말”이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당에 제출했다.

조씨는 “75년 구국선교단을 시작으로 80년 새마음봉사단에 이르기까지 박 후보(박근혜 대통령)가 몸담았던 봉사단체는 박 후보와 최 목사, 그리고 나 이렇게 3인 협의체제로 운영됐다”고 주장했다.

실제 조씨는 박 대통령이 이사장을 지낸 영남대재단 운영에 깊이 관여했고, 역시 박 대통령이 이사장을 맡았던 한국문화재단에서 이사를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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