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바다의 향기’ 자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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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4-12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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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견 없는 세상 꿈꾸는 부안군장애인근로작업장

아주경제 최규온 기자 =전북 부안군 부안읍 봉두길 외곽, 그 한 켠엔 잘 닦여진 사회복지시설이 여럿 자리하고, 시설 끝자락에 공장 건물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김 가공·생산 공장이다. 밖에서 보기에는 일반 공장과 다를 게 없다. 그러나 공장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여느 공장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작업장 안으로 들어서자 누구라 할 것 없이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라는 인사를 건네며 낯선 객을 반가이 맞아준다. 그들은 대부분 중증장애인들이다. 하얀색 위생복 차림에, 머리엔 하얀 두건을 쓴 종업원들의 손놀림이 쉼 없이 움직인다. 한 치 빈틈조차 없는 숙련된 손놀림이다. 둔탁한 기계음이 없다면 깊은 적막만 흐를 것 같다.
 

 

이곳은 장애인들에게 희망의 싹을 틔워주는 부안군장애인근로작업장이다. 작업장 이름은 ‘바다의 향기’(원장 조상완). 바다에서 나는 ‘김’과 장애인들의 떼 묻지 않은 영혼에서 품어 나오는 ‘향기’가 조합된 이름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공장 내부엔 고소한 맛김 냄새에 맑고 순수한 사람의 향기가 진하게 코끝에 잠긴다.

‘바다의 향기’는 부안군에서 (사)부신정회에 위탁한 장애인직업재활시설로 사회적기업이다. 공장에서 근무하는 종업원 55명 가운데 43명이 근로장애인이다. 이중 33명이 지적장애 등 중증장애인이다. 그밖에 고령자(6명)와 일반근로자(6명), 간호사, 영양사, 사회복지사 등 65명이 종사하고 있다.

◇지긋지긋한 편견, ‘장애는 편견으로부터 시작된다’

‘바다의 향기’가 첫 공장 시험가동에 들어간 것은 지난 2011년 5월. 부안군장애인근로작업장이라는 이름을 달고 출발했으나 2년 후 사명(社名)을 ‘바다의 향기’로 바꿨다. 김을 취급하는 식품시설에 ‘장애인’이라는 글자가 큰 벽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이 생산한 제품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판매에 큰 제약이 따랐다. ‘장애는 편견으로부터 시작된다’ 했는데, 지긋지긋한 편견은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공장 하나 제대로 움직이는 것만도 숨이 턱에 차오르는 판에 이들은 편견이라는 무시무시한 장벽과도 싸워야 했다.
 

 

“우리가 걸으면 길이 된다”. 그들이 내세운 슬로건이다. ‘길 없는 길’을 자신들이 갈고 닦아 자신들과 같은 후인들에게 고단한 짐을 덜어주자는 것이다. 해서 이들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대한민국 장애인 직업재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도하는 것이다.

편견은 무지(無知)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많다. 장애인에 대한 일반인들의 무지한 편견을 극복하는 길은 자신들이 만든 제품을 보란 듯 최고의 반석 위에 올려놓는 것, 그래서 공장 살림을 반듯하게 꾸려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조금씩 체득해 나갔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조상완 원장을 비롯한 종사자들의 헌신적인 뒷받침이 보태졌기에 가능했다.

공장 설립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난관이 그들 앞을 가로막아왔는지 새삼스럽게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다.

◇전국 유일의 장애인 최저임금 보장, 노동조합도 결성

‘바다의 향기’ 큰 자랑거리 가운데 하나라면 ‘최저임금 보장’이라는 것이다. 현재 시간 당 근로자 최저임금은 5,580원. 장애인들에게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곳은 단 한곳, 이곳뿐이다.

살림이 넉넉해서 그런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자금난으로 가슴 졸이던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마땅히 장애인들의 권리와 최소한의 경제적 자립을 보장해 주고, 이를 전국적인 선례로 남겨 제도를 정착시키자는 이유에서다. 때문에 고통을 감내하면서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부안군장애인근로자사업장 '바다의 향기' 공장 건물


헌법 제32조에는 ‘장애인에게 직업생활(근로)은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국민으로서의 고유한 권리이자 의무다’라고 명시돼 있지만, 임금 부분은 먼 나라 얘기다.

업체에서 장애인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 제외’ 신청을 하면 임금 부분은 고용주 맘이다. 심지어는 고작 월 10만~20만 원 정도 지급하는 작업장도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임금 차별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고, 이쯤 되면 ‘착취’에 속한다. ‘바다의 향기’는 종업원 급여대장을 타 관련기관에 보내고 있다. 보고, 느껴서 실천에 옮기라는 간절한 의미이다.

이곳에는 노동조합도 결성돼 있다. 여타 관련기관에서는 웬만해선 꿈도 못 꿀 일이다. 장애인들의 권익과 인권보호에 회사 측에서 얼마나 세심하게 신경을 쓰고 있는지를 실증적으로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말이 있다. 장애인을 둔 부모들의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곳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장애인이 20여명 쯤 대기 중이다. 공장이 협소해 이들을 모두 수용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노릇이다. 회사측에서 제2공장 설립을 간절히 원하는 이유다.

◇OEM 방식으로 90% 이상 국내 굴지의 삼해상사에 납품

‘바다의 향기’는 (주)삼해상사 부안 줄포 공장에서 원초(생김)를 받아 가공해 완제품을 OEM 방식으로 90% 이상을 삼해상사에 납품하고 있다. 매출의 30%는 100% 국내산인 ‘해미金김’이라는 자체 브랜드로 판매한다.
 

'바다의 향기' 자체 브랜드 상품인 '해미金김'
 

삼해상사는 ‘名家김’으로 유명한 국내 최대 김 생산업체로 본사는 서울에 있다. 이런 업체에 OEM 방식으로 납품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품질은 입증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지금은 제품 불량률이 되레 삼해상사보다 낮을 만큼 기술력이 뛰어나다. 장애인 사업장이라는 편견을 씻어내고, 빌미를 잡히지 않으려고 청결이나 품질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는 탓이다.

삼해 측에서 오히려 장애인들을 훈련시켜 보내달라고 할 정도로 무한 신뢰를 얻고 있다. 실제로 부안여상 학생 4명을 교육시켜 보내기도 했다. 삼해에서 근무하던 전문 기술자 9명이 이곳으로 옮겨올 정도다.

2011년 12월 전북도생물산업진흥원 지원사업인 KSQ ISO9001 인증에 이어 지난해 9월 광주식약청으로부터 HACCP(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 인증을 획득했다. 이를 계기로 전북지역 학교급식도 뚫었다. 10월에는 전북사회복지사협의회 사회공헌 프로그램 우수상, 12월에는 고용노동부로부터 일자리 창출 유공 포상을 받았다.

극심한 경기침체 속에도 불구 ‘바다의 향기’ 성장 스토리는 멈출 줄 모르고 있다. 연간 매출액 규모를 보면 2011년 5월부터 그해 3억8,000만원, 2012년 7억, 2013년 9억1,000만원, 2014년 10억6,000만원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올해엔 13억, 내년엔 15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장애인 관련단체 등 방문 잇따라

해외수출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2013년 10월 전국 478개 장애인직업재활시설 중 국내 최초로 중국 통디무역회사의 수출 대리인인 (주)고상과 중국 수출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일본, 베트남 등과도 수출 길을 모색하고 있다.

오는 5월에는 상하이식품박람회에도 출품할 계획이다. 2년 뒤에는 제2공장 건립계획도 예정돼 있다. 아직도 가야 할 길,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멀고 높다.
 

전북도의회 환경복지위원들의 현장 방문


‘바다의 향기’ 모범 사례가 하나 둘 전파되면서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장애인 관련단체 등의 견학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7일에는 남원시 소속 사회복지직 공무원 56명이 다녀갔다. 올 1월에는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일행도 이곳을 찾아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바다의 향기’ 대표를 맡고 있는 조상완 원장은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패러다임이 속히 바뀌어야 한다”고 누차 강조했다.

“이곳 ‘바다의 향기’는 김을 팔기 위해 장애인을 고용하는 게 아니라 고용하기 위해 김을 파는 기업이다”는 조 원장의 말에서 그의 강건한 철학과 신념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작업장 내부 벽에 큼지막하게 붙은 “당신이 ‘바다의 향기’ 자랑입니다”라는 문구가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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