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 내 조국을 뜨겁게 사랑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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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07-1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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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지방보훈청 현충교육팀장 강창숙

[사진=부산지방보훈청 현충교육팀장 강창숙]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여러 글에 많이 인용되는 러시아 시인 니콜라이 네크라소프의 시구이다. 그의 시는 문학적으로 높이 평가되지는 않았지만 19세기 러시아의 전제정치에 맞서싸우던 혁명적 민주주의자들에게 자주 인용되며 시민들에게 많이 읽혀졌다고 한다. 시대와 민중의 마음을 잘 대변했던 모양이다.

최근 우리를 가장 슬프고 노엽게 했던 일은 세월호 사고이다. 4월 16일 우리는 300여 명의 생명이 우리 눈앞에서 바다로 가라앉는 모습을 TV로 지켜봐야 했다. 황당한 현실이었고, 슬픔보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무기력감이 먼저 다가왔다. 잠을 자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미안했다. 한순간 모든 일상이 미안해지고 일상의 평화가 깨졌다.

그리고 선사 직원들의 행태와 침몰 원인, 그 배후와 종교 집단, 사고를 수습하는 정부 관계자와 섣부른 판단으로 실언하는 정치인 등을 보면서 그 미안함은 분노로 바뀌었다.

무고한 생명을 그렇게 어이없게 잃어버린 배후에 이 나라 국민인 나도 뭔가 잘못한 것 같은 막연한 죄의식을 가지게 했고, 나아가 모든 국민을 죄인으로 만들며 슬픔에 빠뜨렸고 분노하게 했다.

니콜라이 네크라소프의 말처럼 사랑하는 내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더욱 안타깝고 슬프고 화가 났다. 그래도 여지없이 시간은 흘러 대다수의 국민은 이제 더 이상 자고 먹는 것이 고통스럽지 않게 되었다. 지방선거에 참여하고 월드컵축구를 즐기며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는 예년 그대로의 여름을 보내고 있다. 겨우 석 달 만에 세월호 참사는 관계자와 희생자 가족들만의 불행으로 희미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오는 7월 27일은 ‘유엔군 참전의 날’이다. 6․25 정전 60주년이 되었던 지난해에 6․25을 상기하자는 뜻에 국군과 UN군의 희생과 공헌을 기리고자하는 의미를 보태어 국가기념일로 새롭게 지정하고 정부기념식도 거행하게 되었다. 175만 명을 파병했던 미국은 지난해와 올해를 ‘한국전 참전용사의 해’로 지정했으며 캐나다에서도 7월 27일을 ‘한국전 참전기념일’로 정했다.

한국전쟁에는 150만 명의 국군과 194만 명의 유엔군이 참전했는데, 미국 등 16개국은 파병에 참여하였고 스웨덴 등 5개국은 의료지원을, 그 외 42개국은 물자를 지원하였다. 전쟁 결과 한국군 62만명, 유엔군 15만명, 민간인 240만이 사망, 부상, 실종했고, 현재 유엔군 전사자 2,300분이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잠들어 있다.

하지만 매번 우리의 슬픔과 분노는 길지 않은 듯하다. 겨우 1세기 동안 식민체제, 전쟁, 근대화, 민주화 등의 격동을 겪으며 터득한 처절한 생존법인지 우리의 분노와 슬픔은 언제나 단기적이다.

단원고 생존 학생들과 희생자 가족들은 자신들에 대한 연민과 관심을 거두어 주기를 바라면서도 희생자들이 잊혀질까 염려하며, 국민들에게 희생자들을 잊지 말아 달라고 당부한다.

그렇다면, 유엔기념공원에 잠들어 있는 전사자를 비롯한 유엔참전군과 그 유가족, 참전국가들, 우리 6.25 참전자와 그 유가족들도 우리들의 무관심에 서운해하며 자신들의 존재를 기억주기를 간절히 바라지는 않을까.

국가가 경제 재건에 매달려 있는 동안 수많은 참전자들은 상처를 안고 돌아가셨고, 1980년대부터 참전유공자의 희생과 공헌에 감사하고 명예를 선양하기 위해 노력해 오고 있으나 이미 연로하신 그 분들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의문스럽다. 상처를 치유하기에는 늦었지만 이제라도 그 분들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예우해야 한다.

더불어, 6․25전쟁 정전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인 7월 27일을 맞아 낯선 타국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던졌던 유엔군 참전의 의미를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 세계 15위 경제대국 대한민국은 민족 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의 상처 위에, 정전협정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토대 위에 가능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참전유공자들의 공헌과 고귀한 희생으로 대한민국을 지키고 평화를 유지해 올 수 있었으므로 그분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길이 간직하여야 한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 왔으니 이제는 뒤도 돌아보고 옆도 보면서 아픈 사람의 손도 잡아주고 늦게 오는 사람 기다려주면서 천천히 함께 가야한다. 6․25전쟁과 연평도포격, 천안함 피격, 세월호사고의 슬픔과 분노를 함께 나누며 오래 기억하는 것이 그날의 상처를 치유하는 길이며, 다시는 그러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길이며, 내 조국을 뜨겁게 사랑하는 길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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