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오전 강원 철원의 최전방 일반전초(GOP) 철책에서 30대 여성이 가위와 니퍼로 철책을 감싼 감지 센서를 끊었다.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2㎞ 남짓 떨어진 곳이다. 여성은 전날 오후 허가 없이 민간인통제선(민통선) 북쪽으로 들어왔다. 군은 폐쇄회로(CC)TV로 여성을 발견하고 병력을 보냈지만 놓쳤고, 다시 찾아낸 것은 여성이 철책 센서를 자르기 시작한 뒤였다. 처음 발견부터 신병 확보까지 약 20시간이 걸렸다. 최전방 경계에 또다시 구멍이 났다는 지적이 쏟아지는 가운데, 군은 이 철책을 지키는 병력을 지금의 4분의 1 수준으로 줄이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반복되는 경계 실패: 노크 귀순에서 민간인까지
다음 날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공방이 벌어졌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첫 발견 이후 20시간 뒤에 광망이 절단됐다. 절단되기 전 이 사람을 CCTV에서 확인하지 못했느냐"고 따졌다. 강신철 국방부 장관은 “GOP가 뚫린 게 아니다”라고 답했다가 "그게 뚫린 것"이라는 반박을 받았다. 진영승 합참의장은 "초기에 신병 확보가 제한된 것은 문제점"이라며 "반드시 보완하겠다"고 했다. 합참은 "민통선은 국민을 감시하는 선이 아니다"라며 '민통선이 뚫렸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표현을 두고 다툼이 있지만, 최전방 경계가 도마에 위에 오른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12년 10월 강원 고성에서는 북한군 병사가 철책을 넘어 GOP 생활관 문을 두드리고 귀순했다. 이른바 '노크 귀순'이다. 당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명백한 경계 작전 실패"를 인정하며 대국민 사과를 했고, 장성 5명을 포함해 14명이 문책 대상에 올랐다.
그 뒤로도 비슷한 일이 이어졌다. 2019년에는 북한 목선이 동해안 경계망에 걸리지 않고 삼척항까지 들어와 8군단장이 해임됐다. 2020년 11월에는 북한 남성이 고성의 GOP 철책 두 겹을 넘었는데 철책 감지 센서는 울리지 않았고, 군은 14시간이 지나서야 그를 붙잡았다. 이듬해 2월에는 오리발을 신은 북한 남성이 해안 배수로로 들어왔고, 2022년 1월 1일에는 같은 지역에서 월북 사건이 일어났다. 올해 6월에도 철원에서 북한군 병사가 지뢰지대와 철책을 지나 귀순했는데, 당시 수백m 안에 있던 다른 북한군은 감시 장비에 잡히지도 않았다.
2. 첨단 장비도, 사람도 모자라다: 시스템의 민낯
군은 2016년부터 레이더와 카메라, 열영상장비, 철책 감지 센서를 하나로 묶은 '과학화 경계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 사람의 눈을 기계로 보완하겠다는 취지였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유영하 국민의힘 의원이 지상작전사령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과학화 경계 시스템의 오경보는 약 2200건으로 지난해의 두 배를 넘었다. 원인의 41%가 장비 결함과 노후화였다. 경보가 너무 자주 울리면 정작 진짜 침입을 놓치기 쉽다.
장비가 정상이어도 안심할 수 없다. 2022년 고성 월북 사건은 철책 센서와 CCTV가 모두 정상 작동하는 상태에서 일어났다. 결국 화면을 보고 판단해 현장으로 달려가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 그런데 사람이 부족하다. 고성을 맡은 22사단은 육상 30㎞와 해안 70㎞, 모두 100㎞를 지킨다. 다른 GOP 사단이 맡는 25~40㎞의 두세 배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2022년 "모자란 인력을 보강하기 위해 과학화 경계를 강조하고 있지만, 인적·기술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철책 지키는 병사, 4분의 1로 줄인다: 2만2000명에서 6000명으로
이런 상황에서 군은 GOP 경계 체계를 통째로 바꾸려 하고 있다. 지금 약 2만2000명인 GOP·전방초소(GP) 경계 병력 가운데 6000명만 철책선에 남기고, 나머지 1만6000명은 후방에서 대기하다 상황이 생기면 투입하는 구조다. 2040년까지 인공지능(AI) 기반 유·무인 복합 체계로 빈자리를 채운다는 구상이다. 안규백 당시 국방부 장관은 지난 4월 철책선 중심의 경계를 지역 방어 개념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이르면 2029년 동부전선 GP 한 곳에 무인 감시 장비를 시범 투입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배경에는 인구절벽이 있다. 2023년 남자 신생아는 11만여 명 수준이다. 장기적으로 해마다 군에 갈 수 있는 인원이 16만 명 안팎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면서 상비군 50만 명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강건작 전 육군 교육사령관은 지난해 한 포럼에서 "세계 어느 나라에도 정규 상비군을 이렇게 대규모로 경계 작전에 투입하는 군대는 없다"며 경계의 과학화를 주장했다.
여기에 정부는 접경지역 규제를 풀기 위해 민통선을 평균 2㎞ 북쪽으로 올리는 방안을 내년부터 시행한다. 민통선이 군사분계선에서 평균 6㎞ 정도로 가까워진다. 이번 사건이 우려를 키운 것도 이 때문이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총장은 "민통선이 북상하면 민간인이 GOP 일대에 접근하기가 더 쉬워지는 만큼 이를 보완할 방안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욱 연구위원은 "비무장지대(DMZ)부터 민통선에 이르는 공간이 군의 작전 수행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는 역할을 한다"며 "북한이 설치한 방벽을 믿고 우리 방어선의 종심을 줄이는 것은 군사적 실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병력이 줄어드는 현실에서 사람 대신 기계에 경계를 맡기는 상황을 타개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순서다. 장비는 해마다 오경보를 쏟아내고, 군은 민간인 한 명을 20시간 동안 찾지 못했다. 경계가 제대로 된다는 확신이 서기 전에 철책을 지키는 사람부터 줄이면 공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14년 전 생활관 문을 두드리던 노크 소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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