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는 지상에서는 AI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며 우주에 데이터센터를 띄우겠다고 밝혔다. AI 패권 경쟁에서 ‘반도체’와 함께 ‘전력’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데 우주가 아닌 땅에서 답을 내놓은 나라가 있다. 발전량의 99%(EU 평균 71%)를 화석연료 없이 만들어내는 스웨덴이다. 스웨덴은 1991년 탄소세를 도입한 이후 온실가스 저감과 경제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호르무즈 해협 불안으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진 와중에도 스웨덴 중앙은행은 9월 24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2%에서 2.8%로 0.6%포인트 올려 잡았다. 유로존 전망치(0.9%)의 세 배를 웃돈다. 이제 깨끗한 전기가 국가 경제안보와 직결되는 시대가 열렸다.
빅테크는 이미 스웨덴을 향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스웨덴 내 AI 데이터센터를 늘리고 있고, 구글은 최대 2GW 규모의 데이터센터 부지 매입을 추진 중이다. 북유럽은 무탄소 전력이 풍부하고, 연간 최대 8000시간 바깥 공기로 서버를 식히는 자연 냉각이 가능하다. 서버 폐열을 지역난방망으로 되돌려 쓰는 것은 덤이다. 지난해 스웨덴 송전망에 접수된 데이터센터 전력 연결 신청 규모는 기존 데이터센터 총용량의 5.6배에 달한다. 데이터센터가 늘어나면 전력을 대고 서버를 식히는 설비도 함께 필요해진다. 이 수요는 발전기, 배전장비, 냉각설비,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연관 시장을 키우고 있다.
제조업 판도도 바뀌고 있다.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비용이 올해부터 기업의 회계 장부상 원가 부담으로 반영되기 시작하면서 EU 기업들은 공급망에서 저탄소 원자재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러한 수요에 대응하는 대표적 기업이 스웨덴 철강회사 SSAB다. 2021년 세계 최초로 수소환원 철강을 선보인 SSAB는 독일 라인메탈 등 글로벌 기업과 그린스틸 공급을 위한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탄소 비용의 압박은 원자재를 넘어 운송 분야로 번지고 있다. EU가 2028년부터 도로수송 연료에도 탄소배출권거래제(ETS2)를 적용할 예정인 가운데, 글로벌 물류업체들이 스웨덴산 전기 상용차 확보에 나섰다. 볼보그룹은 최근 1년간 전기 상용차 주문이 39% 늘었고, 스카니아의 무공해 상용차 출하량 역시 1년 새 두 배 넘게 늘었다. 대형 상용차의 전동화 기술은 진입장벽이 높아 스웨덴 친환경 상용차의 성장 흐름에 주목할 만하다. 원자재에서 운송까지, 탄소 비용이 기업의 선택을 바꾸고 있는 셈이다.
스웨덴에서는 무탄소 전력이 산업을 일으키고, 늘어난 수요가 다시 전력 투자를 촉진하는 선순환 구조가 자리 잡았다. 스웨덴 국영 송전망공사는 2027년부터 3년간 송전망 확충에 약 70억 달러를 집중 투입할 계획이다. 원전의 빗장도 열렸다. 스웨덴 정부는 원전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양방향 차액계약(CfD), 정부 대출 등 재정 지원 패키지를 도입했다. 이에 힘입어 올해에만 총 2.6GW 규모의 소형모듈원전(SMR) 프로젝트 2건이 본궤도에 올랐다. 가동 중인 원전 6기의 수명을 20년 늘리는 사업도 검토 중인데, 링할스 3·4호기는 한국 원전과 같은 노형이어서 우리 기업 진출이 유망하다. 원전과 송전망 시장이 열리는 만큼, 원전·송배전 기자재 기업과 ESS 제조사는 현지 진출을 검토할 만하다. 내년부터 이어질 송전망 투자 계획과 원전 사업의 진행 상황을 살피며 분야별 진출 시점을 가늠해야 한다.
스웨덴은 17~18세기 풍부한 산림에서 나온 목탄으로 세계 철 시장을 주도했지만, 18세기 말 영국의 석탄 기반 제철 기술에 밀려 주도권을 내어주었다. 화석연료에 밀려났던 스웨덴이 약 240년이 흐른 지금, 무탄소 전력을 앞세워 다시 도전에 나섰다. 머스크가 전력난을 피해 우주를 바라보는 사이, 스웨덴은 차가운 땅과 깨끗한 전기를 무기로 AI부터 그린스틸에 이르는 새로운 산업 패권을 노리고 있다. 데이터센터와 그린스틸, 전기 상용차, 원전과 송전망까지 우리 기업이 눈여겨볼 분야도 다양하다. 탄소가 곧 비용이자 경쟁력인 시대, 대한민국 제조업의 미래 돌파구를 스웨덴과의 비즈니스 연대에서 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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