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축구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관중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다. 내게 중요한 것은 승리만이 아니었다." (151쪽)
요한 크루이프(1947~2016)는 축구 선수와 감독, 행정가로 현대 축구의 흐름을 바꿨다. 네덜란드 아약스에서 리그 8회 우승과 유러피언컵 3연패를 이끌었고, 스페인 바르셀로나 에서는 선수로서, 또 감독으로서 구단의 황금기를 열었다. '토털풋볼'(선수 전원이 공격과 수비를 유기적으로 수행하며, 공간과 조직력을 중시하는 현대 축구 전술)을 완성한 그는 펩 과르디올라 등 현대 축구 지도자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로 꼽힌다.
그의 자서전 <요한 크루이프>(요한 크루이프 지음, 이성모 옮김, 지식공작소)는 스포츠 영웅의 회고록이라기보다 조직과 리더십, 교육에 관한 책에 가깝다. 관중을 즐겁게 하는 축구, 실패를 통해 배우는 문화, 서로를 살리는 팀워크, 적재적소의 인재 배치까지. 그의 메시지는 축구를 넘어 모든 조직에 적용된다.
크루이프에게 승리는 목표였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그는 이기기만 하는 축구가 아니라 기술적이고 창의적이며, 관중이 다시 보고 싶어 하는 축구를 꿈꿨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생각하라고 주문했다. 공을 가졌을 때는 공간을 만들고, 공을 잃었을 때는 간격을 좁혀 압박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많이 뛰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 뛰느냐다. 축구는 체력보다 공간을 이해하는 능력, 개인보다 조직의 움직임이 먼저인 스포츠라는 것.
이 철학은 훗날 토털풋볼로 완성된다. 모든 선수가 공격과 수비를 함께 수행하고, 1명이 움직이면 10명이 함께 움직인다. 뛰어난 선수 11명을 모으는 것보다 서로 가장 잘 어울리는 조합을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축구는 머리로 하는 게임"이라는 그의 신념은 거리와 간격, 타이밍을 계산하는 치밀한 사고 위에서 구현됐다. 숫자와 암산을 좋아했던 그는 축구를 공간의 예술이자 논리의 스포츠로 이해했다.
축구 철학은 삶의 태도로도 이어진다. 크루이프는 깨끗한 드레싱룸을 유지하고, 축구화를 직접 닦으며, 자신의 물건을 스스로 관리하는 습관을 중요하게 여겼다. 좋은 선수가 되기 전에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이었다. 또 잭 레이놀즈 감독에게는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리누스 미헬스 감독에게는 선수 보호와 규율을, 야구에서는 경기 전체를 미리 읽는 시야를 배웠다. 그는 "내 인생은 늘 더 잘하고 더 발전하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말하며 실패조차 성장의 자산으로 받아들였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지도자와 행정가로서의 모습이다. 그는 감독이 된 뒤에도 자신이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골키퍼 코치 등 분야별 전문가를 팀에 합류시켰고, "리더란 적절한 위치에 적절한 사람을 배치하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은퇴 후에는 아약스 개혁을 추진하며 축구 경험이 없는 행정가가 현장을 좌우하는 구조를 바꾸려 했고, 선수 출신들로 이뤄진 자문위원회가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했다.
크루이프의 자서전은 자연스레 오늘의 한국 축구를 떠올리게 한다. 최근 한국 축구는 월드컵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경기력과 반복되는 행정 논란으로 팬들의 실망을 샀다. 크루이프가 평생 강조한 것은 유명한 사람보다 가장 적합한 사람을 세우는 일, 그리고 현장을 아는 사람들이 축구의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물론 크루이프가 유일한 정답일 수는 없다. 그러나 그는 철학 없는 전술은 오래갈 수 없고, 시스템 없는 강팀도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신의 축구 인생으로 증명했다. 크루이프가 쓴 한 문장이 오래 남는다.
"승리가 전부는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승리하느냐다." (1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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