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돈잔치 속 커지는 성과급 전쟁, 한국 기업 보상체계 시험대

“내 실적에 따라 성과급을 받고 싶은데 이미 결과가 정해진 게임을 하는 것 같아요.” 

국내 한 대기업에 재직 중인 직장인 유모(31) 씨의 말이다. “성과급 기준이 해마다 달라져 예측이 어렵다”며 “문제는 돈이 아니라 기준이 계속 바뀌고 명문화돼 있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AI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국내 반도체 산업을 이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사상 최대 실적 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기업 현장에서는 성과급과 보상 체계를 둘러싼 갈등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AI 핵심 인재 확보를 위해 스톡옵션과 주식 보상을 대폭 늘리는 반면, 한국에서는 성과급 기준과 배분 방식을 둘러싼 노사 충돌이 반복되는 모습이다.
 

삼성전자 노사는 정부 사후조정 절차 끝에 막판 잠정 합의안에 서명하면서 노조가 예고했던 총파업도 일단 유보됐다. 다만 잠정 합의안에 대한 27일 조합원 찬반투표 결과에 따라 갈등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도 남아 있다. 삼성전자는 한국 전체 수출의 약 20%를 차지하는 핵심 기업인 만큼, 업계에서는 생산 차질 우려만으로도 국내 산업과 금융시장 전반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삼성전자 잠정 합의안의 핵심은 반도체(DS) 부문 성과급 재원을 노사가 합의한 사업성과의 10.5%로 고정하고, 지급 상한을 없앤 파격적 보상 체계를 도입한 데 있다. 이에 따라 메모리 사업부를 중심으로 직원 1인당 수억원대 자사주 성과급이 가능해지면서, AI 반도체 호황 시대에 맞춘 새로운 보상 모델의 시험대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23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의 '투명하게 바꾸고, 상한폐지 실현하자-4/23 투쟁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6.4.23 [사진=연합뉴스]
23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의 '투명하게 바꾸고, 상한폐지 실현하자-4/23 투쟁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6.4.23 [사진=연합뉴스]


이번 삼성전자 사태를 계기로 성과급 기준과 결정 과정을 보다 투명하고 예측 가능하게 바꿔야 한다는 요구가 힘을 얻고 있다.

업계에서는 불명확한 보상 체계가 반복적인 노사 갈등을 키운다는 지적이 커지는 가운데, 이번 합의가 AI 호황기 성과 배분의 새로운 기준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러한 흐름은 최근 파업 찬반투표가 가결되며 창사 이래 첫 본사 파업 가능성이 제기된 카카오를 비롯해 다른 ICT 기업들의 보상 체계 논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AI 호황 이후 한국과 미국 기업들의 보상 체계 차이는 더욱 뚜렷해졌다.

실제 국내 임금 상승은 기본급보다 성과급이 주도하는 흐름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조사’ 원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5년 상반기 특별급여(성과급 포함)는 전년 동기 대비 8.1% 증가하며 정액급여 증가율(2.9%)을 크게 앞질렀다.

 
국내 기업 규모별 경영성과급 도입 현황 지난해 6월 기준 1000인 이상 대기업의 성과배분제 도입률은 462였지만 300인 미만 중소기업은 64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 고용노동부·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실
국내 기업 규모별 경영성과급 도입 현황. 지난해 6월 기준 1000인 이상 대기업의 성과배분제 도입률은 46.2%였지만, 300인 미만 중소기업은 6.4%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 고용노동부·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실]  AJP 송지윤

다만 성과급 지급은 대기업 중심으로 편중돼 있다. 지난 5월 8일 국민의힘 김위상 의원이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성과배분제 도입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300인 이상 사업장의 43.8%, 1000인 이상 사업장의 46.2%가 경영성과급 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 반면 300인 미만 중소기업은 6.4%에 그쳤다. 성과배분제는 기업의 경영 목표 달성 여부를 기준으로 현금, 주식, 복지기금 등을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집단형 성과보상 제도로 개인 평가에 따른 개별 성과급과는 구별된다.

한국 기업들은 이처럼 회사 전체 실적을 기준으로 성과급을 배분하는 구조가 강하다. 현금 성과급이나 복지성 보상이 중심이며, 개인 성과보다 조직 전체 실적을 우선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핵심 인재 확보와 개인 기여도 중심으로 움직이는 미국 빅테크의 보상 시스템과는 차이가 있다.

전문가들은 반복되는 성과급 갈등이 단순한 기업 문화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시장 유연성, 성과평가 방식, 위험 분담 구조 등 구조적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한다.
 
미국 주요 테크기업들의 성과급 지급 방식과 영업이익 대비 성과급 비중을 비교한 그래프 메타와 아마존은 영업이익의 20 이상을 주식 기반 보상으로 지급한 반면 엔비디아·애플·구글 등도 주식 중심의 장기 인센티브 체계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TSMC는 현금 중심 성과급 체계를 유지했다 자료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 기준 AJP 송지윤
미국 주요 테크기업들의 성과급 지급 방식과 영업이익 대비 성과급 비중을 비교한 그래프. 메타와 아마존은 영업이익의 20% 이상을 주식 기반 보상으로 지급한 반면, 엔비디아·애플·구글 등도 주식 중심의 장기 인센티브 체계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TSMC는 현금 중심 성과급 체계를 유지했다. [자료=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 기준] AJP 송지윤

난양공대(NTU)의 에릭 캄브리아 교수는 “미국 빅테크들은 AI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연구인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며 “핵심 개발자들에게 스톡옵션과 장기 보상을 집중하는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AI 호황 이후 미국 빅테크들의 핵심 인재 확보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검토한 재무자료에 따르면 오픈AI의 2025년 직원 1인당 평균 주식보상 규모는 약 150만 달러 수준이었다. 메타는 같은 해 204억 달러, 알파벳은 271억 달러 규모의 주식 기반 보상을 반영했다.

미국 기업들은 성과급 역시 회사 전체 실적뿐 아니라 개인 성과와 전략적 기여도를 함께 반영하는 구조를 강화하고 있다. 메타와 구글 등은 직급, 개인 평가, 조직 성과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보상을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AI 인재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글로벌 채용 플랫폼 인디드(Indeed)에 따르면 기업 현장에 AI 시스템을 직접 적용하는 ‘포워드 디플로이드 엔지니어(Forward-Deployed Engineer)’ 채용 공고는 지난해 4월 643건에서 올해 4월 5330건으로 약 729% 증가했다.

최재필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AI가 반복 업무를 표준화할수록 전략적 가치를 만드는 ‘슈퍼스타 인재’에게 보상이 집중되는 현상이 강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과거에는 정량화하기 어려웠던 성과도 AI를 통해 보다 투명하게 평가할 수 있게 되면서 기업들의 차등 보상 체계 도입도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며 “결국 AI 시대에는 ‘누가 대체 불가능한가’가 보상의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핵심 인재를 유지할 수 있는지가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것”이라며 “기업들도 스톡옵션과 장기 인센티브 중심으로 보상 체계를 바꿔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다만 “한국은 여전히 집단 중심 문화와 현금 성과급 중심 보상 체계가 강해 차등 보상 체계 도입 과정에서 미국보다 더 큰 내부 반발이 나타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AI 시대를 맞아 미국과 한국 주요 기업들의 성과보상 체계 차이를 비교한 이미지 미국 테크기업들은 RSU·스톡옵션 등 주식 기반 보상과 개인 기여 중심 평가를 강화하는 반면 한국 대기업들은 현금 성과급과 조직·집단 성과 중심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AJP 송지윤
AI 시대를 맞아 미국과 한국 주요 기업들의 성과보상 체계 차이를 비교한 이미지. 미국 테크기업들은 RSU·스톡옵션 등 주식 기반 보상과 개인 기여 중심 평가를 강화하는 반면, 한국 대기업들은 현금 성과급과 조직·집단 성과 중심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 종합] AJP 송지윤

노동시장 구조 차이도 반복되는 성과급 갈등의 배경으로 지목된다.

연세대 경영대학의 신현한 교수는 미국 기업들이 평가 기준과 보상 체계를 상대적으로 투명하게 공개하는 배경으로 ‘노동시장 유연성’을 지목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불만족한 핵심 인재들이 경쟁사로 곧바로 이동하기에 기업들도 인재 유지를 위해 자연스럽게 더 높은 보상을 제시하게 된다”며 결국 조직에 남는 직원들은 기업 문화에 동의한 사람들이 된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은 이직에 따른 임금 손실과 경력 불확실성 부담이 커 직원들이 쉽게 회사를 떠나기 어렵다”며 “결국 불만을 가진 직원들이 조직에 남아 목소리를 낸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아무리 성과급을 올려도 상대적 박탈감이 남는 “성과급 논란의 악순환”이라고 표현했다.  

평가 방식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 신 교수는 “미국 기업들은 KPI(핵심성과지표)나 OKR(Objectives and Key Results) 등을 비교적 명확하게 공개하지만, 한국 기업들은 평가자의 정성적 판단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그 결과 정보 비대칭이 심화된다”며 결국 “해고의 자유도가 기업의 투명성을 결정하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직원들에게 중요한 것은 “예측 가능성”이라며 “기본급은 유지하되 성과급만 차등 지급하는 방식도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준이 투명해질수록 직원들도 결과를 더 쉽게 납득하거나 필요 시 이직이라는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신현한 교수 사진신현한 교수 제공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신현한 교수 [사진=신현한 교수 제공]

이미 “노력과 보상이 연결되지 않는다”는 인식도 퍼지고 있다.

국내 한 대기업 계열사에 근무하는 30대 직장인 SJ 씨는 “우리가 납품하는 회사들은 성과급 파티를 하는데 정작 우리에게는 남는 게 없다”며 박탈감을 토로했다. 

그는 “수직계열화 구조에서는 계열사 수익성이 내부 거래 구조나 그룹 차원의 배분 방식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며 “개인·부서·사업 단위별 평가 기준을 보다 투명하고 일관되게 공개해야 직원들도 결과를 납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아무리 성과를 내도 회사가 늘 ‘위기 상황’이라는 논리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며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직원들도 동기부여를 느끼고 조직과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전문가들은 미국식 보상 체계를 그대로 도입하는 것이 해답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김진영 교수 사진김진영 교수 제공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김진영 교수 [사진=김진영 교수 제공]

김진영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의 높은 보상은 해고 위험과 소득 변동성까지 함께 감수하는 구조”라며 “성과를 함께 나누려면 실적 악화 시 위험도 함께 부담하는 구조가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에서는 미국식 높은 보상만 주목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 이면에는 고용 불안정성과 노동시장 리스크도 존재한다”며 “기업 내부의 성과급만으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 사회 구조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AI 시대가 본격화할수록 한국 기업들도 결국 보상 체계 개편 압력을 더 강하게 받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미국식 성과보상 체계를 단순히 모방하기보다 한국의 노동시장 구조와 조직문화에 적합한 방식으로 보상 체계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데 입을 모았다.

최 교수는 “결국 중요한 것은 직원들이 성과평가와 보상 체계를 얼마나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다고 느끼느냐”라며 “AI 시대에는 보상 체계뿐 아니라 조직 문화와 노동시장 구조 전반의 변화가 함께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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