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코너는 개인에 대한 비난이나 낙인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연애 예능·리얼리티에 드러난 장면과 선택을 바탕으로, 보편적인 심리와 관계 구조를 해석합니다.
연애는 시험도, 투자도, 경기도 아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사랑까지 경쟁으로 이해한다. 상대의 마음을 얻는 과정을 설득이나 교감이 아니라 승부로 받아들이고, 타인의 눈물마저 판세를 흔드는 변수로 읽는다.
ENA·SBS Plus '나는 SOLO' 31기 영숙의 언행이 시청자들의 불편함을 산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가 목표지향적인 인물이라는 사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숙의 목표지향성이 관계의 영역으로 들어왔을 때, 타인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으면서 아픈 장면들을 만들었을 뿐이다.
영숙은 자기소개 때부터 목표지향성이 강한 인물로 소개됐다. 기금 운용 공기업 11년 차 과장으로 재직 중이며, 지난해까지 노후 준비 강사로 활동했다고 밝혔다. 그는 스스로를 "목표지향적이고 도전적인 성향"이라고 설명했고, 30대 초반까지는 운동에 몰입하다가 '자본주의를 깨닫고' 주말마다 임장을 다녔다고 밝혔다. 내 집 마련, 투자 의지, 경제적 준비는 그에게 중요한 삶의 기준으로 보였다.
목표지향성은 현대사회에서 강력한 생존 기술이다. 목표를 세우고, 자원을 모으고, 시간을 투입하고, 결과를 만든다. 이런 사람은 삶을 흘러가는 대로 두지 않는다. 스스로 움직이고, 기회를 만들고, 원하는 방향으로 인생을 끌고 가려 한다.
성취목표 이론(Achievement Goal Theory)은 목표를 두 갈래로 본다. 하나는 배우고 성장하는 데 초점을 둔 숙달목표(Mastery Goal), 다른 하나는 타인과 비교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려는 수행목표(Performance Goal)다. 전자가 과정과 성장에 무게를 둔다면 후자는 결과와 비교, 인정에 더 민감하다.
영숙에게서 도드라진 모습은 후자다. 지난 방송에서 영숙은 달리기 미션 이후에도 그 장면을 여러 차례 되짚었다. 그에게 달리기 미션은 게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슈퍼데이트권을 둘러싼 경쟁이었고, 경수의 마음을 향한 상징적 승부였다.
순자와의 달리기 대결에서 넘어지며 1등을 놓친 영숙. 이후 옥순이 "우리 마음속의 1등은 영숙님"이라고 위로하자 영숙은 환하게 웃어 보였다. 이어 "누군가의 다리에 걸려서 넘어진 것 같은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순간 영숙은 객관적 결과와 별개로, 정서적 판정 안에서 1등을 회복하고 싶어하는 사람처럼 비쳤다.
사람은 실패했을 때 자존감을 보호하기 위해 외부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내가 졌다"보다 "내가 방해받았다"는 해석이 덜 아프기 때문이다. 자기 보호적 귀인(Self-serving Bias)은 성공을 자신의 능력과 노력 덕분으로 돌리고, 실패는 운이나 상황, 타인의 영향으로 돌리는 심리적 경향을 말한다. 나아가 의도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타인의 행동을 적대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은 적대적 귀인 편향(Hostile Attribution Bias)으로 설명된다.
물론 영숙이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는지, 누군가를 악의적으로 몰아갔는지를 단정할 수는 없다. 한 사람의 내면은 몇 장면으로 재단할 수 없다. 다만 화면 속 영숙은 패배를 패배로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자신이 밀린 이유를 다시 구성했고, 그 과정에서 순자의 승리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이후 더 큰 장면이 나온다. 순자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위경련 증세를 보였고, 결국 응급실로 이동했다. 순자는 여자 숙소에서 자신을 둘러싼 출연자들의 대화를 듣고 힘들어했고, 경수의 애매한 태도까지 겹치며 증상이 심해졌다. 경수는 순자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본 뒤, 영숙에게 쓰기로 했던 슈퍼데이트권을 순자에게 쓰겠다고 말을 바꿨다. 이후 "경수가 영숙에게 슈퍼데이트권을 쓴다고 해서 순자가 오열했을 것"이라는 동료 출연자의 추측에 영숙은 "나는 왜 뛴 거냐"며 "나도 한 번 오열해?"라고 토로했다. 순자가 응급실로 이송됐다는 사실은 모르는 상태였다.
순자의 눈물이 경수의 마음을 움직였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중요한 건 영숙이 그 눈물을 어떻게 읽었는지다. 영숙은 몸으로 뛰었고, 넘어졌고, 패배도 감수했다. 그런데 그의 눈에는 순자가 눈물 하나로 경수의 마음을 움직인 사람처럼 비쳤다. 정정당당한 구애 경쟁이 '생떼'에 의해 뒤집혔다는 억울함. 그래서 "나도 오열해?"라는 말이 나왔다. 이 말에는 "그것도 전략이라면 나도 할 수 있다"는 뉘앙스가 깔려 있다.
영숙의 세계에서 순자의 감정은 고통이기 전에, 공정한 승부를 흐리는 변수로 읽혔다. 일종의 반칙처럼 느꼈을 수 있다. 그래서 이후 경수와의 1대1 데이트에서도 영숙은 "(경수가) 순자와는 밖에서 오래 만나기 힘들 것 같다", "동정 때문에 그 사람을 선택하는 게 맞냐"고 말한다. 경수의 선택이 감정에 휘둘린 것인지 따져 묻는 방식이었다.
이때 영숙의 심리를 설명할 수 있는 개념 중 하나가 제로섬 사고다. 제로섬 마인드셋(Zero-Sum Mindset)은 타인의 이익이 곧 나의 손실을 의미하며, 세상의 자원이 한정돼 있다고 보는 세계관이다. 사랑은 제로섬이 아니다. 경수가 순자를 걱정한다고 해서 영숙의 가치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순자가 아프다고 해서 영숙의 노력이 무효가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제로섬 렌즈를 가진 사람에게는 그렇게 보일 수 있다. 타인의 고통은 공존해야 할 감정이 아니라, 내 몫을 빼앗는 변수로 읽힌다.
경수 앞에서 영숙이 약한 모습을 보인 장면도 이 맥락 안에서 읽힌다. 그는 달리기 이후 부상과 숨 가쁨을 어필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순자의 힘듦이 경수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판단한 뒤, 자신 역시 취약성을 관계 안에서 활용 가능한 수단처럼 다루는 모습. 순자가 어떤 상황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는지보다, 그 아픔이 경수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가 더 크게 들어온 듯했다. 경쟁 상황 속에서는 타인의 감정이 보이지 않고, 나의 목표를 돕거나 방해하는 변수로 먼저 들어오는 것이다.
이런 면은 앞선 광수와의 데이트 장면에서도 드러났다. 영숙은 자신을 1순위 호감 상대로 선택한 광수와의 데이트에서 서먹한 분위기를 보였고, 당시 자신의 관심 상대였던 영철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했다. 광수가 "영철님 앞에서 영숙님이 가장 진실한 텐션으로 웃은 것 같다"고 말하자, 영숙은 뒤늦게 자신의 마음을 깨달았다며 눈물을 보였다. 이후 숙소로 돌아온 광수는 혼자 눈물을 흘렸고, 영숙은 영철을 찾아가 자신의 감정을 어필했다.
자신의 마음에 충실하고, 진정한 관계를 찾아간다는 건 좋은 일이다. 마음이 없는 상대에게 억지로 호응해야 할 의무도 없다. 다만 자신에게 진심으로 다가온 사람에게 최소한의 존중을 보일 수는 있다. 그건 상대의 감정을 살피고, 따뜻하게 보내주는 일이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광수의 마음은 충분히 고려되지 못했다. 영철을 향한 영숙의 궁금증과 깨달음 속에서 광수는 소모품처럼 남았다.
영숙의 약점은 감정이 없다는 게 아니다. 감정은 많았다. 자존심, 서운함, 억울함, 질투, 성취감, 불안이 모두 강하게 드러났다. 다만 자신의 감정이 커지는 순간, 타인의 감정 위치는 실감하지 못했다. 상대가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내 말과 행동이 상대에게 어떻게 닿을지 가늠하지 못했다. 그래서 순자의 힘듦은 고통이 아니라 변수로, 광수의 진심은 마음이 아니라 배경으로 밀려났다.
이런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 만들어질까. 물론 방송만으로 영숙의 성장사를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경쟁형 인간의 성향은 몇몇 환경에서 강화된다.
첫째, 성과로 인정받아온 환경이다. 잘해야 인정받고, 이겨야 주목받고, 증명해야 사랑받는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자신을 결과로 설명하는 데 익숙해진다. 둘째, 감정보다 결과가 우선인 환경이다. 자신의 감정이 충분히 받아들여진 경험이 적으면, 타인의 감정도 보호해야 할 신호가 아니라 부담스럽거나 불공정한 변수로 보일 수 있다. 셋째, 자원이 한정돼 있고 밀리면 끝난다는 희소성의 세계관이다.
투자, 임장, 내 집 마련, 노후 준비 같은 언어는 현실 감각과 실행력의 증거다. 다만 이런 사고방식이 관계의 영역까지 그대로 들어올 때, 사람의 마음마저 선점하고 확보해야 할 대상으로 오해될 수 있다. 삶의 어떤 영역에서는 남보다 빨리 뛰어야 이긴다. 하지만 연애에서는 빨리 뛰는 사람이 반드시 사랑을 얻는 것은 아니다.
영숙은 좋은 면이 많은 사람이다. 추진력 있고, 욕망을 숨기지 않고, 기다리지 않고 기회를 만든다. 남에게 인생을 맡기지 않는다. 일과 자산 관리, 자기계발 영역에서는 큰 힘이 되는 특성이다. 끝내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다. 성과도, 돈도, 자리도, 인정도.
사랑은 때로 용기 있는 사람에게 기회를 준다. 영숙은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않았고, 원하는 관계를 향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그 추진력은 그의 매력이자 힘이다. 다만 사랑이 오래 지속되기 위해서는 목표를 향해 달리는 힘만큼, 상대와 주변 사람들의 감정을 함께 살피는 능력도 필요하다.
영숙의 행동이 낳은 불편함은 사랑을 향한 의지가 너무 강해서가 아니라, 그 의지가 때때로 타인의 마음을 지나쳐버린 순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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