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환 칼럼] '수령제 헌법'에 나타난 김정은 통치전략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 전 통일연구원장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전 통일연구원장]

 
지난 3월에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15기 제1차 회의에서 채택한 북한 신헌법이 공개됐다. 북한은 1948년 9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 제정 이후 13차에 걸쳐 헌법을 수정·보충했다. 그중에 국가 건설 목표와 권력구조에 큰 변화를 준 헌법 개정은 주석을 국가수반으로 하는 1972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주석제 헌법), ‘선군정치’를 내세우고 국방위원장을 국가수반으로 내세운 1998년 헌법(군사국가 헌법), 그리고 ‘수령의 유일적 영도체계’를 헌법에 제도화한 이번 2026년 헌법(수령제 헌법)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번 북한 개정 헌법을 한마디로 규정하면 ‘수령제 헌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근거는 헌법 서문에서 김일성을 지칭할 때 사용하던 ‘위대한 수령’이라는 수식어를 넘어 “조선민주주의공화국은 수령의 유일적 영도체계를 확립하고” “수령의 구상과 의도대로 국가사업 전반을 조직진행”해야 한다는 것을 국가 건설과 활동의 기본원칙으로 명문화하는 등 국방위원장의 권한을 대폭 강화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그동안 북한의 ‘수령’은 법과 제도를 초월하는 절대적 권위를 갖는 ‘사회정치적 생명체’(혁명적 대가정)의 ‘뇌수’(어버이)로, 일심단결의 중핵으로 자리매김돼왔다. 그래서 그동안 북한의 당 규약이나 국가 헌법에서 수령의 권위와 영도체계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에서 수령의 지위와 역할은 주체사상(김일성-김정일주의)에서 ‘혁명적 수령론’으로 개념화돼 있었다. 1980년 6차 당대회에서 채택한 당 규약에서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세우는 것”을 언급한 적은 있지만 수령의 유일적 영도체계를 내세우지 않았다. 이번에 헌법 서문에 수령의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을 추가함으로써 수령의 지위는 초법적 행위자에서 헌법적 행위자로 제도화됐다. 그래서 이번 개정헌법을 ‘수령제 헌법’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령 중심의 유일사상체계와 유일지도체제를 내포하는 수령의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이 헌법 서문에 들어감으로써 백두혈통의 통치원리인 ‘유일체제’가 헌법에 제도화됐다.

북한의 규범과 법체계는 수령 교시-당 규약-국가 헌법과 법률의 순으로 위계를 가지고 있다. 그동안 수령의 교시는 실정법을 초월하는 최상위의 규범과 같은 것으로 치부돼 왔다. 이번 헌법 개정을 통해서 신성시돼 왔던 수령이 법과 제도의 틀로 들어와 국가 건설과 활동의 선봉에 섰다. 아직 9차 당대회에서 개정한 당 규약을 확인할 수 없지만 김정은은 혁명적 대가정의 어버이 수령으로, 당의 총비서와 국가의 국무위원장으로 ‘우리식 사회주의의 전면적 발전’을 진두지휘한다. 수령제를 헌법적으로 제도화한 것은 김정은의 영도력과 실행력은 높이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헌법은 선대 수령의 국가 지도이념인 ‘김일성-김정일주의’와 이를 김정은 시대 지도이념으로 재구성한 ‘인민대중제일주의’를 내세우고, 현재의 수령인 김정은의 혁명사상에 따라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를 자기 식으로, 자력으로 발전시켜나간다”는 것을 공식화했다. 개정 헌법에서 ‘적대적 두 국가’와 관련하여 영토 조항을 신설한 것과 통일 관련 내용의 수정에 관심을 집중하지만 개정헌법에 나타난 수령제 제도화의 함의를 읽어내고 이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사회주의 ‘당-국가체제’에서는 영도하는 당의 규약이 지도받는 국가 헌법보다 우위에 있다. 사회주의권이 붕괴하면서 사회주의국가들 사이의 당 대 당 관계가 축소·위축되고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관계가 늘어나면서 중국, 베트남 등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의 최고지도자도 당의 수위인 총서기보다는 국가수반인 주석 직함으로 대외활동을 수행하고, 외교도 당 국제부보다는 국가기관인 외교부가 수행한다. 북한도 이러한 추세를 따라 ‘혁명적 수령론’을 헌법에 제도화하고 수령이자 국무위원장이 국가수반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정상국가로의 변신을 모색하려 한다.

문제는 ‘수령의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을 헌법에 명문화함으로써 당의 영도보다 수령의 구상과 의도가 더 중요한 ‘수령절대주의’가 강화됐다는 것이다. 이번 헌법에서 국가수반인 국무위원장이 “핵무력에 대한 지휘권”을 가지며 “국가핵무력지휘기구에 핵무력사용권한을 위임할 수도 있다(제89조)”는 조항을 신설함으로써 핵을 가진 전략국가 지도자상을 부각하고 수령체제 안전을 담보하고자 했다. 이는 핵 무력을 수령체제 유지의 만능의 보검으로 하겠다는 의지를 헌법에 명문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이 핵보유를 헌법에 명문화하고 외부 세계의 비핵화 요구에 대해 ‘위헌’을 강요한 것이란 억지 주장을 편 데 이어 핵사용과 관련한 내용을 헌법에 규정함으로써 비핵화 협상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예상대로 한반도 두 국가와 관련한 영토 조항을 신설함으로써 “남쪽으로 대한민국과 접하고 있는 영토와 그에 기초하여 설정된 영해와 영공”과 관련한 경계갈등이 표출될 가능성을 잠재하고 있다. 경계갈등의 핵심은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관련한 것이다. 1991년 채택한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남과 북의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1953년 7월 27일자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고 합의하고 “해상불가침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하기로 했다. 기본합의서 채택 당시에는 북측이 NLL을 해상경계선으로 인정했다. 사회주의권이 붕괴될 무렵이라 북측이 해상경계선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불가침합의에 집중했다. 이후 북한이 NLL을 부정하고 일방적으로 ‘경비계선’을 설정하여 서해에서 여러 차례 군사충돌을 빚기도 했다. 북한이 군사분계선(MDL)과 해상경계선을 국경선으로 획정함으로써 이를 둘러싼 충돌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게 됐다. 충돌 방지를 위한 대책을 수립하고 이와 관련한 대화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대한민국과의 결별을 헌법에 명문화하고 독립적인 사회주의 국가로서 자기 식의 발전전략을 헌법에 구체화했지만 앞길을 낙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선대 수령이 혁명과 건설의 기본 단위를 ‘나라와 민족’이라고 했지만 김정은은 한반도를 포괄하는 민족(동족, 화해, 통일)을 지우고 ‘김일성 민족’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심의 발전전략(자력갱생, 자생자활)을 모색하고 있다. 8차 당대회 이후 5년간의 성과에 자신감을 얻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대한민국과 결별하고 수령제 헌법에 따라 사회주의 전면적 발전을 위해 독려하지만 내부자원 동원 중심의 자력갱생으로 질적 발전을 이루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수령이 국가 발전의 전면에 나섰으니 성과에 대한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두 국가 정책을 제도화했기에 대한민국에 책임을 떠넘기기도 어려울 것이다. 석탄기반 자력갱생노선을 고수하며 최고지도자가 “절약은 곧 생산이며 애국심의 발현”이라고 말하는 나라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는 없다. 인공지능(AI) 시대에 무오류성이 보장된 수령 한 사람의 ‘천재성’에 의존하는 것은 시대착오다. 대한민국과 결별한 조선(북한)이 미국과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사상과 이론을 수정하지 않고는 수령체제의 ‘밝은 미래’를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전 통일연구원장 ▷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전 청와대 안보실 정책자문위원장 ▷현 국회 한반도 평화외교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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