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이 글로벌 해운산업의 중심지로 도약하기 위한 중장기 전략을 본격적으로 제시했다.
8일 아바니 센트럴 부산에서 열린 제1회 해운산업 허브 구축 및 북극항로 선원 육성 포럼에는 부산시와 해운기업, 노동계, 교육기관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북극항로 인력 양성, 기업 유치 인센티브, 정주여건, 산업·정책 연계 등 현안 전반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포럼의 문을 연 김봉철 부산시 디지털경제실장은 부산의 해운 경쟁력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부산시는 5대 항만 기능 재정비, 북항 행정복합타운·해양금융특구 조성, 신항의 친환경·디지털 물류거점 구축 등 공간 전략을 제시했다.
산업 전략에서는 친환경 연료 공급과 조선 정비(MRO)뿐 아니라 해양산업 변화에 대응한 전력·반도체 산업을 해양 특화 산업군에 포함한다고 밝혔다.
부산시는 신항 개발에 필요한 2조 원대 매립 비용을 언급하며 “민간에만 부담시키기 어렵다”며 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이는 항만과 물류를 기초로 하되 해양·에너지·전력반도체로 이어지는 확장된 산업 전략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대목이다.
인재 전략에서는 AI 기반 해양항만 AX 심증센터 구축과 ‘북극항로 전문 인력 양성 체계’ 고도화를 핵심 목표로 제시했다.
해운기업은 “시장 논리”를 가장 앞세웠다. 특히 북극항로와 기업 이전 인센티브 문제에서 명확한 입장을 내놨다.
김세현 한국해운협회 부산사무소장은 “해운사는 일반 법인세 감면 효과가 거의 없는 톤세(Tonnage Tax) 적용 기업”이라며 “부산시의 일반적인 이전 인센티브는 사실상 동력이 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해운기업이 수도권 네트워크를 포기하려면 톤세 감면 같은 맞춤형 세제 설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북극항로에 대한 평가도 현실적이었다. 홍용석 SK해운 해사기획실장은 “북극항로는 선사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핵심은 화주(Cargo Owner)”라며 “전쟁·제재 리스크로 북극항해 선박을 운항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선제적 투자나 인력 훈련을 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SK해운이 보유한 70척의 선대 가운데 북극항해 장비를 갖춘 선박이 1척뿐이라는 점도 언급하며 상업 운항의 실효성 부족을 지적했다.
노동계는 ‘사람’을 중심에 놓고 부산의 취약한 정주 인프라를 직격했다.
김두영 SK해운 노조위원장(전국해운노조협의회 의장)은 “해양대 졸업 4년 차 해기사가 연봉 1억5000만~1억6000만 원을 받는데도 부산에 머물지 않는다”며 “본사가 부산으로 와도 교육·의료·주거 문제로 결국 가족은 서울에 남고 가장만 내려오는 구조가 반복된다”고 말했다.
김수헌 대한해운 노조위원장은 “필리핀처럼 소득세 전면 비과세가 어렵다면 부산 거주 선원에 대한 파격적인 세제 혜택이라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정근 HMM 노조위원장은 외국인 선원 상륙 제한 문제를 지적하며 “상륙 절차와 접근성이 개선되면 지역 소비와 관광 기반 확대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교육기관은 북극항로 전문 인력 양성의 구조적 한계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채병근 한국해양수산연수원 교육본부장은 “빙해 선장 양성은 뇌외과 의사 훈련에 비견될 만큼 장기간의 전문 경험이 필요하다”며 “우리 교육과정은 로이드 인증을 받았지만, 극지 해역 승선경력 2개월을 채울 국적선이 없어 실습이 막힌 상태”라고 말했다.
전해동 한국해양대 부학장은 “시뮬레이터·생존 장비 등 고가 장비가 필요한데, 예산을 요청하면 교육부는 ‘해수부 소관’, 해수부는 ‘교육부 소관’이라며 책임을 미루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교육 인프라 구축이 행정 절차의 공백 속에서 구조적으로 뒤처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비판이 이어지자 부산시는 적극적으로 해명과 향후 구상을 내놓았다.
김봉철 실장은 “부산이 척박해서 기업이 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덕신공항 등 핵심 인프라가 늦어지고 수도권 중심 정책에 묶여 성장 기회를 놓쳤던 것”이라며 “부산은 해운·산업·인재가 함께 성장할 기반을 이미 갖추고 있으며, 지금이 이를 재설계할 적기”라고 말했다.
이어 부산시는 이전 기관 종사자에 대한 특별공급을 즉시 적용할 수 있고, 수요가 있다면 임대주택 공급까지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신항에는 벙커링과 MRO 단지를 구축해 친환경·정비 인프라를 확충하고, 대규모 사업비 확보를 위해 예타 면제도 정부와 직접 협의하겠다고 했다.
김 실장은 “가덕신공항이 완성되면 물류·비즈니스·인재 이동이 하나의 축으로 연결되며 부산 경쟁력이 본격적으로 발현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포럼에서 각 주체가 제기한 문제는 달랐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정책, 산업, 교육, 정주여건, MRO, 세제가 한 체계 안에서 움직이지 않는다면 부산이 해운 허브로 도약하기 어렵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부산이 산업 구조와 인프라를 구축한다면, 기업과 노동계는 그 틀을 작동시키는 흐름을 만드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도 공유됐다.
포럼의 마지막 순서에서는 기업과 노동계, 교육기관, 부산시가 한자리에 서서 ‘부산 해운산업 미래비전 공동선포식’을 진행했다.
선언문에는 정책과 제도, 교육 인프라의 전 분야에서 협력 구조를 강화해 부산을 글로벌 해운 허브로 키우겠다는 공동 목표가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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