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담배 제조사에 부담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법적 판단이 내년 1월 내려진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KT&G,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항소심 선고기일을 내년 1월 15일로 지정했다. 2014년 소송 제기 이후 11년, 1심 패소 후 항소한 지 5년 만에 내려지는 판단이다.
건보공단은 2014년 4월 흡연으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손실과 사회적 부담을 근거로 약 533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대상은 흡연력이 20갑년(20년간 하루 한 갑 이상) 이상이고 흡연 기간이 30년 이상인 폐암·후두암 환자 3465명에게 지급된 보험급여액이다. 공공기관이 담배 제조사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첫 사례로, 소송 당시부터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은 2020년 11월 27일 1심 판결에서 건보공단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폐암이나 후두암은 흡연 외에도 다양한 원인으로 발병할 수 있으며, 국민건강보험급여는 담배회사의 불법행위와 직접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건보공단은 항소를 제기하며 역학적·의학적 인과관계를 중심으로 새로운 증거와 의견서를 제출했다.
건보공단은 2심에서 흡연 피해자의 진술서, 최신 의학 연구, 전문가 의견서를 추가로 제출하며 1심 판단을 뒤집는 데 주력했다. 정기석 건보공단 이사장은 지난 5월 22일 열린 최종 변론기일에서 “흡연이 폐암의 주요 원인임은 과학적으로 명백하며, 설령 직접 원인이 아니더라도 질병 발생과 악화를 촉진하는 기여 인자로서 제조사가 일정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피고 측 담배회사들은 “흡연은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른 행위로, 제조사에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고 맞섰다. 또 “공단이 제출한 전문가 의견서는 공단의 의뢰에 따라 작성돼 객관성이 부족하며, 보험급여 지출은 법률상 의무이자 보험관계에 따른 결과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담배소송을 둘러싼 학계와 국제보건기구의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벤 맥그래디 법·정책 책임자는 세계보건기구(WHO) 건강증진부 공중보건법 및 정책 부문 책임자는 “미국에서도 담배회사의 기만적 행위에 법적 책임을 물은 판결이 있었다”며 “각국 정부는 담배산업의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전문가들도 흡연의 역학적 인과관계를 강조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9월 한국역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지선하 연세대 융합보건의료대학원 교수는 “흡연과 폐암의 인과성은 이미 확립된 사실로, 흡연 외의 발병 원인을 피고 측이 입증하지 않는 한 제조사 책임이 인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는 지난달 30일 “흡연 피해자 치료와 건강보험 재정 손실에 대한 제조사의 책임이 필요하다”며 담배 제조사의 사회적 책임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무상의료운동본부·대한금연학회·한국환자단체연합회 등은 공동성명에서 “흡연은 개인의 선택이 아닌 중독의 결과로, 담배회사는 첨가제 조작과 위해성 은폐로 국민 건강에 피해를 초래했다”며 법원에 담배산업의 책임을 명확히 해달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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