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에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생산한 고대역폭메모리(HBM)가 중국으로 대거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인공지능(AI) 반도체 산업의 최대 약점으로 꼽히는 HBM 공급 부족이 심화하면서 불법 유통 시장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IT 전문매체 디인포메이션은 2일(현지시간) 중국 밀수업자들은 최근 한국산 HBM을 저가형 서버 프로세서와 함께 기판에 패키징해 중국으로 반입하는 수법을 활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HBM을 단독으로 수출하면 미국의 규제 대상이 되지만 서버 프로세서와 결합한 제품으로 분류되면 규제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당 매체는 미국 수출 규정상 패키지의 연산 성능이 메모리가 아닌 서버 프로세서를 기준으로 평가된다는 점을 밀수업자들이 악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에 반입된 제품은 다시 분해 과정을 거친다. 현지 기술자들이 패키지에 열을 가해 납땜을 녹인 뒤 HBM을 분리하고 나머지 서버 프로세서는 폐기하는 방식이다. 다만 고온에 노출되는 과정에서 메모리 내부 구조가 뒤틀리거나 균열이 발생할 수 있어 작업 난도가 높고 실패 위험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밀수업자들이 이 같은 위험을 감수하는 배경에는 급등한 HBM 가격이 있다. 중국에서 메모리 밀수를 중개하는 한 업자는 디인포메이션에 1년 전 수백 달러 수준이던 HBM3E 한 개의 거래 가격이 최근 약 4000달러까지 치솟았다고 밝혔다. AI 반도체 한 개에 HBM 6~8개가 탑재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메모리 확보에만 2만4000~3만2000달러가 필요한 셈이다. AI 프로세서와 서버, 전력 비용을 제외한 금액이다.
이처럼 중국 내 HBM 가격이 급등한 것은 자국 반도체 기업들의 생산 능력이 AI 산업의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처리 속도를 높인 고성능 메모리다. 대규모 AI 모델을 학습하고 구동하는 데 필수적이지만 중국 기업들의 자체 생산 능력은 아직 제한적인 수준이다. 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글로벌 HBM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특히 중국 최대 통신장비 기업 화웨이가 한국산 HBM 확보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는 정황도 제기됐다. 디인포메이션은 화웨이 공급망에 정통한 관계자들을 인용해 화웨이가 최근 일부 고객사에 차세대 AI 반도체 '어센드 960DT'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M이 상당 부분 탑재될 것이라고 안내했다고 보도했다.
화웨이는 어센드 960DT의 성능이 기존 제품보다 두 배 높을 것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국 기업으로부터 직접 HBM을 구매하기 어려워지자 일부 고객사에는 AI 반도체에 필요한 메모리를 자체적으로 조달하도록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AI 반도체 기업들이 프로세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핵심 메모리 확보에서는 여전히 한국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 같은 밀수 거래가 국내 반도체 기업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직접 중국 기업에 제품을 공급하지 않더라도 제3자를 거쳐 유입된 한국산 HBM이 중국 AI 반도체에서 발견되면 미국 정부의 조사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 대만 파운드리 기업 TSMC는 2024년 자사가 생산한 반도체가 화웨이 제품에서 발견되면서 미국 정부의 조사를 받았다. 이후 미국은 TSMC의 대중국 AI 반도체 수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강화했다. 한국 기업들 역시 최종 고객사와 제품 유통 경로에 대한 관리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SK하이닉스는 미국과 한국의 수출 통제 규정을 포함한 관련 법규를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2020년 미국의 수출 규제 시행 이후 화웨이에 제품을 공급한 사실이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 내 불법 HBM 거래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중국 AI 기업들이 자체 반도체 개발을 확대하고 있지만 첨단 메모리의 국산화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딥시크와 문샷 등 중국 AI 기업들이 대규모 모델 개발 경쟁을 지속하려면 고성능 프로세서뿐 아니라 안정적인 HBM 공급망 확보가 필수적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