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뷰]민주당의 조희대 탄핵 꼼수에 대해 오세훈이 쓴 칼럼

김두일 선임기자
김두일 선임기자
 
민주주의의 실력은 패배를 받아들이는 순간 드러난다. 선거에서 졌을 때, 표결에서 밀렸을 때, 그리고 법원에서 자신들이 바라지 않은 판결이 나왔을 때 권력이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가 그 수준을 말해준다.
 
지금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 앞에 놓인 질문도 이것이다. 자신들에게 불편한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사법부를 인정할 것인가.
 
민주당은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국정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탄핵 주장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정조사를 먼저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절차의 이름을 바꾼다고 권력 행사의 목적까지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위법 사실을 확인하기 위한 조사인지, 끌어내리겠다는 결론을 세워놓고 명분을 찾는 조사인지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조사로 결론을 찾아야지, 결론에 조사를 맞춰서는 안 된다.
 
민주당은 나(오세훈)의 명태균 관련 사건 항소심 무죄 판결을 사법부 비판의 근거로 거론한다. 나는 이 사건의 당사자다. 그렇기에 더욱 분명히 밝힌다. 내게 유리한 판결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법부가 언제나 옳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마찬가지로 민주당도 자신들에게 불리한 판결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법부가 잘못됐다고 몰아가서는 안 된다.
 
판결이 잘못됐다면 판결문의 어느 사실인정이 틀렸는지, 어떤 증거를 잘못 평가했는지, 무슨 법리를 오해했는지 밝혀야 한다. 법이 정한 불복 절차에서 다퉈야 한다. 그것이 법치국가의 언어다.
 
그 설명을 건너뛴 채 개별 재판부의 판단을 대법원장의 정치적 책임으로 돌린다면, 앞으로 어느 판사가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판결할 수 있겠는가.
 
대법원장은 개별 재판의 결론을 정해주는 자리가 아니다. 민주당이 조 대법원장에게 나의 무죄 판결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면, 대법원장이 재판부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근거부터 제시해야 한다. 그런 근거 없이 책임을 추궁한다면 법관들에게 집권세력이 원하는 결론을 헤아리라는 압박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민주당이 말하는 사법개혁인가.
 
사법부도 비판과 감시의 대상이다. 대법원장 역시 법 위에 있지 않다. 위법이나 권한 남용의 구체적인 의혹이 있다면 당연히 규명해야 한다. 그러나 책임을 묻는 권한에는 그 근거를 제시할 의무가 따른다. 국회의 의석수가 그 의무를 대신해주지는 않는다.
 
국정조사는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권한이다. 그렇기에 그 권한을 쓰는 쪽이 먼저 헌법의 경계를 존중해야 한다. 사법행정을 검증하는 일과 재판의 결론을 정치적으로 심판하는 일의 경계를 허물어서는 안 된다.
 
대법원장을 국회에 출석시키느냐를 놓고 힘겨루기를 벌이기 전에, 무엇을 조사하고 어떤 사실을 밝힐 것인지부터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 출석하면 추궁하고, 불출석하면 불응을 규탄하는 장면만 남는다면 국민이 얻게 되는 진실은 무엇인가.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권력기관끼리 충돌하는 생중계가 아니다. 누가 어떤 권한을 어떻게 잘못 행사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증거와 설명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에 묻는다.
정권이 바뀐 뒤 다른 집권세력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판결을 이유로 대법원장을 국회에 세우고 탄핵을 거론해도, 오늘과 같은 태도로 받아들이겠는가. 그때 사법부 독립을 외칠 생각이라면, 지금 그 원칙부터 지켜야 한다.
 
헌법의 원칙은 야당일 때 권력을 막아주는 방패이면서, 여당이 됐을 때 스스로를 묶는 약속이어야 한다. 집권하는 순간 풀어버릴 약속이었다면 국민 앞에서 헌법을 말할 자격부터 돌아봐야 한다.
 
탄핵의 근거가 충분하다면 법에 따라 제시해야 한다. 부족하다면 그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국정조사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확인할 수는 있다. 그러나 조사에 착수한다는 사실만으로 탄핵의 정당성까지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 강성 지지층의 박수가 헌법상 요건을 대신할 수도 없다.
 
대한민국 법정은 집권당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권력이 원하는 유죄도, 권력이 원하는 무죄도 거부할 수 있어야 국민이 법원을 믿을 수 있다.
 
오늘 민주당이 마주해야 할 것은 조희대 대법원장의 거취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다. 권력을 얻은 뒤에도 자신을 견제하는 제도를 존중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권력을 맡긴 국민은 판결문을 고쳐 쓰라고 명령한 적이 없다. 마음에 들지 않는 재판부를 길들이라고 위임한 적도 없다.
 
민주당은 지금 멈춰야 한다. 사법부를 향해 들이대는 권한의 무게만큼, 스스로 감당해야 할 절제의 무게도 깨달아야 한다.
 
권력의 크기는 의석수만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에게 불편한 판결을 받아들이고, 행사할 수 있는 권한 앞에서도 헌법의 경계를 지킬 때 그 진정한 무게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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