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최고가격제, 기름값 상승 완충했지만…산업연 "단계적 정상화 필요"

서울 서초구 만남의광장 주유소에 기름을 넣으려는 차량들이 줄을 서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만남의광장 주유소에 기름을 넣으려는 차량들이 줄을 서 있다. [사진=연합뉴스]
중동 전쟁에 따른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에 대응하기 위해 도입된 석유 최고가격제가 국내 기름값 상승을 억제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다만 제도 시행이 7개월을 넘어서면서 정유사의 공급 유인이 약화되고 재정 부담이 누적될 수 있는 만큼 취약계층 선별지원과 공급 안정, 단계적 정상화를 병행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산업연구원은 27일 '석유 최고가격제의 효과와 정책 대응'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앞서 산업통상부는 지난 17일부터 11월 13일까지 4주간 적용되는 11차 최고가격을 직전 10차와 같은 수준으로 동결했다. 지난 6월 27일 최고가격 인하 이후 네 차례 연속 동결이다. 이에 따라 정유사가 주유소 등에 공급하는 석유제품의 최고가격은 ℓ당 휘발유 1784원, 경유 1773원, 등유 1380원으로 유지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8월 정부가 직접적인 에너지 가격관리 정책을 시행한 한국과 중국, 태국의 관련 에너지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평균 15.0% 상승했다. 반면 공급 확대와 감세 등으로 대응한 미국과 독일은 평균 24.9% 상승했다. 두 그룹의 가격 상승률 격차는 9.9%포인트에 달했다.

산업연은 이러한 차이가 가격관리 정책의 완충 효과를 살펴볼 수 있는 결과라고 평가했다. 다만 국가별로 비교한 에너지 가격지표와 환율, 세금, 정책수단 등이 달라 상승률 격차 전체를 최고가격제 시행에 따른 순효과로 단정할 수는 없다.

한국의 경우 휘발유 가격 상승률이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휘발유 소매가격은 8월 전년 동월 대비 11.8% 상승한 데 이어 9월에도 11.9% 올라 상승률이 0.1%포인트 높아지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미국의 일반 휘발유 소매가격 상승률은 29.5%에서 37.6%로 8.1%포인트 확대됐다. 독일의 차량용 연료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27.7%에서 37.1%로 9.4%포인트 높아졌다.

국제 에너지 가격의 상승 충격이 국내 소비자가격으로 전가되는 속도와 폭이 제한되는 양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는 가격관리 방식은 국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은 주유소 소매가격이 아닌 정유사 공급가격에 상한을 설정했다. 중국은 기존 관리가격제에서 인상폭을 제한했고 일본은 정유사와 수입업자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미국은 비축유 방출 등 공급 확대, 독일은 한시적 유류세 인하와 가격 조정 규칙으로 대응했다.

산업연은 최고가격제가 가계와 기업에 충격에 대응할 시간을 제공하는 비상수단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제유가 급등이 연료비와 물류비에 반영되고 제품·서비스 가격으로 확산되는 속도를 늦추면 가계는 지출을 조정하고 기업은 자금을 확보하거나 계약 조건을 변경할 시간을 벌 수 있다.

문제는 제도가 장기화될 경우 발생하는 비용이다. 최고가격제가 국제시장에서 석유제품을 조달하는 비용 자체를 낮추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부담할 비용 일부를 정유사나 정부로 이전하는 방식인 만큼 가격 상한이 장기간 유지되면 기업의 생산·수입 유인이 줄고 정부의 손실 보전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정책 종료 이후 억눌렸던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할 가능성도 있다.

이에 최고가격제를 즉각 폐지하기보다는 국제 제품가격과 환율, 재고 수준 등을 고려해 상한을 조정하면서 시장 상황이 안정될 경우 단계적으로 정상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제언이다. 가격안정 조치를 유지하는 동안에도 정유사의 실제 조달비용과 운임·보험료 등을 검증해 손실을 투명하게 정산하고, 저소득층과 필수 운송·농어업 등 피해가 큰 부문에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원료 조달과 유동성 지원, 공급선 다변화, 에너지 효율 개선 등을 함께 추진할 필요가 있다. 김수동 산업연 선임연구위원은 "정책 성과를 물가 변화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며 가계의 순부담과 산업의 실질 생산·수출, 공급 안정 및 재정 부담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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