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소득 과세가 또 미뤄질 전망이다. 청와대는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과세를 유예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달 국정감사 후 당정협의회에서 최종 결론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시장 여건과 투자자 보호를 이유로 2022년 처음 유예한 뒤 벌써 네 번째다. 여당은 2029년 과세를 담은 법안까지 발의했다. 준비 부족을 이유로 시행만 거듭 미루는 것은 조세 원칙을 흔들고 정책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유예가 반복될수록 납세자는 정책의 방향을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정부의 제도 설계 능력에 대한 의구심도 커질 수밖에 없다.
소득이 발생했다면 자산의 종류와 관계없이 합당한 과세가 이뤄져야 한다. 예정된 과세안은 양도·대여 소득에서 기본공제 250만원을 뺀 금액에 지방소득세를 포함해 22%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주식과 부동산의 과세 형평성이 논란인 가운데 가상자산에만 비과세 기간을 늘리는 것은 조세 원칙에 어긋난다. 부동산 세 부담을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가상자산 과세마저 미룬다면 성실 납세자의 불신과 상대적 박탈감만 커질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내세우는 우려에도 일리는 있다. 거래 인프라와 투자자 보호 장치가 미흡하고 외국 거래소나 탈중앙화거래소(DEX)의 소득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러나 준비가 부족하다면 과세를 미룰 것이 아니라 그간 무엇을 보완했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 유예만 반복한 채 과세 기반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같은 이유로 시행을 늦추는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과세 유예가 정치적 계산에 휘둘리는 듯한 점도 문제다. 가상자산 투자자들의 반발을 의식해 정부와 여당이 시행 연기를 검토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나온다. 특정 집단의 반발이 과세 원칙을 흔드는 이유가 돼서는 안 된다. 과세의 정당성과 집행 여건, 자산 간 형평성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정책은 단기적인 여론에 따라 오락가락하기보다 일관된 원칙과 예측 가능한 일정에 따라 추진돼야 한다.
과세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투자자의 신고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소득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거래소별 거래 내역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과세 기준과 손익 산정 방식을 명확히 해 납세자가 혼란 없이 신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과세 기준이 불명확하거나 신고 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하면 성실 납세자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안길 수 있다.
정부는 과세 유예를 결정하기 전에 준비 상황과 미비점을 국민에게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유예가 불가피하다면 구체적인 사유와 기간, 보완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과세 인프라와 투자자 보호 장치를 정비하고 관련 입법도 서둘러야 한다. 무엇보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과세 원칙이 흔들리지 않도록 일관된 기준을 세워야 한다. 유예를 선택하더라도 그 기간에 무엇을 완성할 것인지 명확히 제시하고 약속한 일정이 지켜지는지 점검할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조세 형평성은 표심에 따라 달라질 수 없다. 준비가 부족하다면 보완하되 목표와 일정은 분명해야 한다. 네 차례나 유예하고도 같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정부의 정책 역량에 대한 의구심만 커질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눈앞의 정치적 부담보다 ‘소득 있는 곳에 과세 있다’는 확고한 조세 원칙과 제도의 예측 가능성을 우선해야 한다. 과세 유예의 악순환을 끊고 공정한 과세와 건전한 시장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정부의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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