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우의 중기직설] 韓 장자 승계, 日 입양사위...세라젬, '한국형 승계' 새지평 열어

  • 20년 실력 검증과 투명한 정공법 승계

  • 스즈키, 3대 연속 입양사위로 성공 신화

이경수 세라젬 대표이사 사장 사진세라젬
이경수 세라젬 대표이사 사장 [사진=세라젬]

대한민국 기업사에서 '승계'는 오너 일가의 특권이자, 때로는 기업의 존망을 흔드는 리스크로 작용했다. 경영인 자질이 부족한 3·4세로의 무리한 세습 과정에서 발생한 경영권 분쟁, 징벌적 상속세 회피를 위한 편법 증여, 오너 리스크 등이 불거지며 기업 가치가 훼손되는 일도 빈번했다. 
세라젬, 양자입양으로 전문경영인 선택...파격 결단
지난 20일 헬스케어 중견기업 세라젬이 발표한 승계 방식은 산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1961년생인 창업주 이환성 회장은 친딸이 아닌 전문경영인 이경수 대표(1978년생)를 양자로 삼고 지분 10%를 넘겼다. '혈연 세습'이라는 국내 기업계의 오래된 관행을 깨뜨린 파격적 결단이었다.

이경수 대표는 신입사원으로 출발해 해외 시장 개척과 체질 개선을 주도하며 20년 넘게 현장에서 능력을 입증한 인물이다. 이 대표는 2003년 세라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전략 기획, 마케팅, 국내외 영업 등의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4년전인 2022년부터 대표이사로 회사를 이끌어 왔다. 

2019년에는 웰카페를 도입해 체험 중심 마케팅을 국내 시장에 정착시켰다. 이는 세라젬이 2021년 국내 헬스케어 1위 기업으로 도약하는 원동력이 됐다.

친자녀가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 회장은 회사를 물려줄 적임자로 오랜 기간 검증된 전문경영인을 선택했다. 단순히 CEO 자리를 넘겨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법적 '성인 입양'을 거쳐 직계비속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정통성과 상속권을 동시에 확립했다. 또한 승계 과정에서 발생한 증여세를 100% 정직하게 신고·납부해 절세나 탈세를 목적으로 한 위장 입양 논란을 사전에 차단했다.

이러한 전문경영인 입양 승계의 원류는 일본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의 성인 양자 제도, 능력 있는 인재를 딸과 결혼시켜 입양하는 '무코요시(婿養子, 입양사위)' 문화는 에도시대(1603~1867) 이전부터 확립된 뿌리 깊은 전통이다.

과거 일본의 사무라이 혹은 상인 가문에서는 혈통보다 가업을 유지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친아들이 있더라도 능력이 부족하거나 방탕하면 가차 없이 폐출하고, 실력 좋은 부하나 외부 인재를 양자로 삼아 가문의 성(姓)과 사업을 물려주는 게 덕목이었다.
 
가문 보다 가업이 먼저...日 '무코요시' 현대 기업문화 확립 
즈키 자동차의 4대 총수 故 스즈키 오사무 회장 사진연합뉴스
즈키 자동차의 4대 총수 故 스즈키 오사무 회장 [사진=연합뉴스]
이러한 가치관은 현대 일본 기업으로 이어졌다. 스즈키 자동차의 4대 총수인 故 스즈키 오사무 회장은 창업주 스즈키 미치오 회장의 손녀이지 2대 회장의 딸과 결혼해 양자사위로 들어와 회사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스즈키 가문은 4대에 걸쳐 양자 승계를 이어온 역사를 자랑한다. 도요타 그룹의 기틀을 다진 도요타 리사부로, 파나소닉의 2대 사장 마쓰시타 마사하루 역시 모두 창업주의 양자사위였다.

일본이 전 세계 100년 이상 된 장수 기업의 40%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다. 그 비결은 핏줄보다 기업의 생존을 우선시하는 입양 문화에 있다.

국내 대기업에서도 양자 입양이 승계의 열쇠로 쓰인 전례가 있다. 바로 LG 그룹이다. 故 구본무 선대회장은 외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뒤, '유교적 가풍'과 '장자 승계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2004년 남동생(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친아들인 조카 구광모 현 회장을 양자로 입양했다. 이는 가문 내부의 혈통 중심 승계 구도를 안착시키기 위한 결단이었다.

반면, 세라젬의 사례는 외부 인재를 혈연의 틀 안으로 품었다는 점에서 일본의 입양 승계 사례와 궤를 같이한다. LG가 가문의 전통을 지키기 위한 입양이었다면, 세라젬은 실력을 검증받은 전문경영인을 양자로 삼아 기업 승계의 지평을 한 단계 더 넓힌 셈이다.

세라젬 관계자는 "이번 지분 승계를 계기로 경영의 연속성과 안정성을 더욱 강화하고, 중장기 성장 기반을 다져 나갈 계획"이라며 "앞으로도 척추 관리 의료기기와 헬스케어 가전 분야에서 축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AI 웰니스 홈 구현을 가속화하고, 고객의 일상 전반을 아우르는 글로벌 웰니스 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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