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4~9월 무역적자가 1년 전의 두 배 수준으로 불어났다. 세계적인 인공지능(AI) 투자 확대에 힘입어 수출이 반기 기준 사상 최대를 기록했지만, 중동 정세 악화로 치솟은 원유 조달 비용이 적자를 키웠다. 유가 상승분이 수입액에 반영되기까지 시차가 있어, 고유가 부담이 내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본 재무성이 21일 발표한 무역통계 속보에 따르면 2026회계연도 상반기(4~9월) 무역수지는 2조8184억엔(약 23조6100억원) 적자였다. 반기 기준 11분기 연속 적자로, 적자액은 전년 동기보다 98.8% 늘었다. 수출은 18.4% 증가한 약 63조4600억엔, 수입은 20.4% 늘어난 약 66조2800억엔이었다. 수출액과 수입액 모두 비교 가능한 1979년 이후 반기 기준 최대다. 수출은 반도체 등 전자부품과 반도체 제조장비가, 수입은 원유와 반도체 등 전자부품이 증가를 이끌었다.
이 가운데 원유는 덜 들여오고도 더 많은 돈을 치렀다. 상반기 원유 수입량은 전년 동기보다 21.2% 줄었지만 수입액은 26.3% 증가한 5조7439억엔에 달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가라카마 다이스케 미즈호은행 수석 마켓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비축유 방출이 원유 수입을 억제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단가 상승 폭이 훨씬 컸다. 엔화 기준 원유 수입 단가는 1㎘당 10만8605엔으로 60.3% 올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바뀐 조달 경로에는 비용이 더 든다. 닛케이에 따르면 미국산 원유는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경유할 경우 운송에 45~50일이 걸린다. 중동산도 사정은 비슷하다. 안전 우려로 중동 선적 유조선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뒤, 해협 밖에서 대기하는 일본행 유조선에 원유를 옮겨 싣는 방식이 쓰이면서 운임이 급등했다.
그나마 반도체 관련 수출이 적자 확대를 억제하고 있다는 게 닛케이의 분석이다. 9월 무역수지는 5개월 연속 적자였지만, 계절조정 적자는 7039억엔으로 전달보다 줄었다. 같은 달 반도체 제조장비 수출은 1년 전보다 수량 기준 38%, 금액 기준 44% 늘었다. 닛케이는 세계적인 AI 투자가 수출을 뒷받침하면서 최근 무역적자 확대 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가가 급등했던 2022~2023년보다 제한적이라고 짚었다.
문제는 앞으로다. 닛케이에 따르면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12월물은 21일 배럴당 98달러 안팎에서 거래됐다. 가라카마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산 원유의 경우 유가 변동이 일본의 수입액에 반영되기까지 3~3.5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의 고유가가 내년 수입액까지 밀어 올릴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내년에 비축유 방출이 없다면 연간 10조엔 이상의 무역적자가 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기업과 가계에도 부담이다. 9월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단가는 t당 12만3574엔으로 전년 같은 달보다 약 50% 올랐다. 일본은 유가에 연동된 LNG 계약이 많아 원유 가격 상승이 수개월 뒤 LNG 가격에 반영된다. LNG 가격 상승은 기업의 생산비와 가계의 전기·가스요금 부담을 키울 수 있다. 에너지 수입 부담으로 무역적자가 더 커지면 수입 대금 결제를 위한 엔화 매도·달러 매수 수요가 늘어 엔화 약세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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