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시선>은 무너져가는 공교육의 현장, 학령인구 감소, 요동치는 대입 제도 속에 초중등·고등교육의 이슈를 진단하고, 당면한 교육 현안·과제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짚어봅니다. 또 한편으론 지속 가능한 대안을 탐색합니다. 때로는 우리 사회에 대한 냉철하지만 따뜻한 시선도 담겠습니다.
인력 충원이 끊긴 채 남은 이들이 기획부터 편집, 물류까지 초인적으로 감당해 온 고립감, 양서(良書)를 묵묵히 지켜왔다는 자긍심마저 외면당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대학 출판인들은 철저히 소외되고 있다. 과거 70여 개에 달했던 4년제 대학 출판부가 현재 40여 개 남짓으로 줄어든 배경에는 바로 이 같은 현장의 사기 저하와 구조적 방치가 깊게 자리 잡고 있다.
‘독립채산제’ 굴레와 스캔·AI 파고…벼랑 끝에 선 출판부
대학 출판부가 마주한 차가운 현실과 구조적 한계의 이면에는 ‘독립채산제’라는 굴레가 있다. 어느 대학 출판부 규정을 보더라도 1순위는 교수의 학문 연구를 돕고 지식을 사회에 널리 전파하는 것이지, 돈을 벌라는 조항은 어디에도 없다. 상업 출판사가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외면하는 기초학문과 소수 분야를 떠받치는 마지막 ‘마지노선’이 바로 출판부의 본령이다.
예컨대 수강생이 스무 명 남짓인 특수외국어나 비인기 학술서는 단 몇십 명을 위해 수천만 원의 제작비를 감당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하지만 대학들은 예산 지원을 끊고 영리 사업체처럼 ‘알아서 생존하라’며 출판부를 적자 부서로 내몰았고, 그 결과 인력 감축과 신간 기획 중단이라는 악순환이 고착화됐다.
설상가상으로 팬데믹을 거치며 굳어진 캠퍼스 풍경은 출판부의 숨통을 더욱 죄어왔다. 대학 출판부에 종사하는 관계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상황은 짐작보다 훨씬 심각하다. 강의실마다 태블릿으로 불법 스캔 PDF를 돌려보는 문화가 일상화되면서 교재 매출은 해마다 곤두박질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취업률 중심의 무분별한 학과 통폐합으로 교재를 정기적으로 구매하던 인문·사회계열 전공자 수천 명이 한순간에 사라졌으며, 최근 신설된 AI 계열 전공 등은 전공 교재 수요 자체가 희박하다. 소수 상위권 대학이 외국인 유학생용 한국어 교재로 간신히 흑자를 낼 뿐, 대다수 대학 출판부는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특히 생성형 AI의 거센 파고는 출판부를 한층 더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학생들은 책 전체를 통독하기보다 AI가 뽑아낸 요약본에 의존하며 사유의 호흡을 끊어버렸다. 더 본질적인 위기는 수십 년간 학자들과 출판부가 피땀 흘려 정제한 학술 데이터가 거대 플랫폼의 AI 학습 데이터로 무단 흡수되고 있지만 정당한 저작권 보상 체계는 사실상 전무하다는 점이다. 지식은 저자와 출판부가 만들고 과실은 빅테크가 가로채는 기형적 구조가 지속된다면, 새로운 지적 토양이 황폐해져 결국 AI조차 학습할 새로운 지식이 고갈되는 생태계의 역습을 맞게 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수강생이 스무 명 남짓인 특수외국어나 비인기 학술서는 단 몇십 명을 위해 수천만 원의 제작비를 감당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하지만 대학들은 예산 지원을 끊고 영리 사업체처럼 ‘알아서 생존하라’며 출판부를 적자 부서로 내몰았고, 그 결과 인력 감축과 신간 기획 중단이라는 악순환이 고착화됐다.
설상가상으로 팬데믹을 거치며 굳어진 캠퍼스 풍경은 출판부의 숨통을 더욱 죄어왔다. 대학 출판부에 종사하는 관계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상황은 짐작보다 훨씬 심각하다. 강의실마다 태블릿으로 불법 스캔 PDF를 돌려보는 문화가 일상화되면서 교재 매출은 해마다 곤두박질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취업률 중심의 무분별한 학과 통폐합으로 교재를 정기적으로 구매하던 인문·사회계열 전공자 수천 명이 한순간에 사라졌으며, 최근 신설된 AI 계열 전공 등은 전공 교재 수요 자체가 희박하다. 소수 상위권 대학이 외국인 유학생용 한국어 교재로 간신히 흑자를 낼 뿐, 대다수 대학 출판부는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해외는 ‘지적 자산’ 육성하는데…우리는 ‘대학 출판’ 홀대
시선을 해외로 돌리면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풀어나갈 단초를 얻을 수 있을까. 해외 유수 대학들이 대학 출판부를 고등교육 경쟁력의 핵심으로 육성하는 방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의 하버드·예일 등은 막대한 대학 발전기금을 통해 상업성에 얽매이지 않는 지적 자산을 남기며, 도서관과 결합한 오픈 액세스(Open Access) 플랫폼을 주도한다. 중국은 국가출판기금을 투입해 대학 출판부를 국가 학술 브랜드의 중추로 키우고, 일본 역시 사단법인 출판회를 통해 공공재로서의 독립성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 반면 우리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글로컬대학30’, ‘앵커(Anchor)’ 등 수천억 원의 국책 사업 어디에도 지식을 출판·유통할 인프라에 대한 고려는 찾아볼 수 없다.
미국의 하버드·예일 등은 막대한 대학 발전기금을 통해 상업성에 얽매이지 않는 지적 자산을 남기며, 도서관과 결합한 오픈 액세스(Open Access) 플랫폼을 주도한다. 중국은 국가출판기금을 투입해 대학 출판부를 국가 학술 브랜드의 중추로 키우고, 일본 역시 사단법인 출판회를 통해 공공재로서의 독립성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 반면 우리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글로컬대학30’, ‘앵커(Anchor)’ 등 수천억 원의 국책 사업 어디에도 지식을 출판·유통할 인프라에 대한 고려는 찾아볼 수 없다.
대학 지식 생태계 복원의 대안으로 ‘학술출판 바우처’
이 같은 암담한 대학 출판의 현실 속에서 가장 실효성 있는 대안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학술출판 바우처(대학교재 e-구독 바우처)’다. 학생들에게 전공 전자책을 종이책의 절반 가격이나 학기 단위 임대 방식으로 저렴하게 공급하고, 정부와 대학이 바우처 형태로 구입 비용의 일부를 지원하는 구상이다.
신선호 전(前) 한국대학출판협회 이사장은 바우처의 도입을 ‘학술 생태계의 심폐소생술’로 규정했다. 신 전(前) 이사장은 “불법 스캔본보다 정품 전자책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더 싸고 편리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어떤 단속보다 강력한 저작권 보호책”이라며 “바우처를 통해 유입된 재정은 출판부의 안정적 수익이 되고, 대학 역시 교수들에게 적극적으로 교재 집필을 권장하게 된다”고 말했다. 결국 여기서 발생한 수익이 다시 팔리지 않는 순수 기초학술서나 신진 학자의 연구를 책으로 펴내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바우처 도입과 관련된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출판계와 학술단체들이 국회를 설득해 교육부 예산에 바우처 시범사업 예산을 배정한 것은 고무적인 첫걸음으로 평가된다. 정부와 국회는 이 예산을 대폭 확대해 본사업으로 안착시키고, 대학 평가 지표에 출판부 지원도를 명시해 대학 본부의 책무를 일깨워야 한다.
대학이 스스로 생산한 사유와 지식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지 못한다면, 그 상아탑은 강의실과 학위증만 매매하는 거대한 취업 학원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대학 출판부는 결코 영리를 따지는 상업 기구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기초학문과 지적 유산을 떠받치는 ‘학술·교육의 공공재’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자(活字)를 지켜온 이들의 헌신 뒤로 지식의 심장이 멎어가고 있는 지금, 활자의 불이 완전히 꺼지기 전에 국가와 대학이 책임 있는 결단에 나서야 할 때다.
신선호 전(前) 한국대학출판협회 이사장은 바우처의 도입을 ‘학술 생태계의 심폐소생술’로 규정했다. 신 전(前) 이사장은 “불법 스캔본보다 정품 전자책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더 싸고 편리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어떤 단속보다 강력한 저작권 보호책”이라며 “바우처를 통해 유입된 재정은 출판부의 안정적 수익이 되고, 대학 역시 교수들에게 적극적으로 교재 집필을 권장하게 된다”고 말했다. 결국 여기서 발생한 수익이 다시 팔리지 않는 순수 기초학술서나 신진 학자의 연구를 책으로 펴내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바우처 도입과 관련된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출판계와 학술단체들이 국회를 설득해 교육부 예산에 바우처 시범사업 예산을 배정한 것은 고무적인 첫걸음으로 평가된다. 정부와 국회는 이 예산을 대폭 확대해 본사업으로 안착시키고, 대학 평가 지표에 출판부 지원도를 명시해 대학 본부의 책무를 일깨워야 한다.
대학이 스스로 생산한 사유와 지식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지 못한다면, 그 상아탑은 강의실과 학위증만 매매하는 거대한 취업 학원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대학 출판부는 결코 영리를 따지는 상업 기구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기초학문과 지적 유산을 떠받치는 ‘학술·교육의 공공재’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자(活字)를 지켜온 이들의 헌신 뒤로 지식의 심장이 멎어가고 있는 지금, 활자의 불이 완전히 꺼지기 전에 국가와 대학이 책임 있는 결단에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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