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년 가까운 시간을 이어온 호텔이 다시 세계 정상급 호텔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1887년 문을 연 래플스 호텔 싱가포르다. 오래된 건물과 서비스는 지키되, 미식과 웰니스 등 새로운 콘텐츠를 꾸준히 더하며 명성을 지켜왔다.
래플스 호텔 싱가포르는 지난 1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발표된 '더 월드 50 베스트 호텔(The World's 50 Best Hotels) 2026'에서 17위에 올랐다. 싱가포르 호텔 가운데 올해 50위 안에 이름을 올린 곳은 래플스가 유일하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은 이 순위는 세계 각지의 호텔리어와 여행 전문 저널리스트, 비즈니스 여행객 등 800명 이상의 전문가로 구성된 '50 베스트 호텔 아카데미' 투표로 결정된다. 아카데미는 세계를 13개 권역으로 나누고 매년 투표단의 25%를 교체한다.
래플스의 역사는 싱가포르 호텔 산업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호텔의 시작은 1887년이다. 현재 래플스를 상징하는 흰색 네오 르네상스 양식의 본관은 그로부터 12년 뒤인 1899년 완성됐다. 싱가포르 정부는 개관 100주년인 1987년 호텔을 국가기념물로 지정했다.
그렇다고 래플스가 역사만 붙들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호텔은 시대가 바뀔 때마다 손을 봤다. 1989년 문을 닫고 대대적인 복원에 들어가 1991년 다시 문을 열었고, 2017년에는 또 한 차례 대규모 복원에 착수했다.
가장 최근의 변곡점은 2019년이다. 약 2년에 걸친 작업을 거쳐 그해 8월 다시 문을 열었다. 건축과 호텔 특유의 분위기는 최대한 보존하면서 새로운 레스토랑과 바, 안뜰, 상업·사교 공간을 더했다. 현재 객실은 일반 객실 없이 모두 스위트로 구성된 115실이다.
140년 가까운 역사를 오늘의 고객에게 전달하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세계적인 셰프 앙드레 치앙(André Chiang)이 ‘1887 by André’를 열고 싱가포르 파인다이닝 무대로 돌아왔다.
지난 4월 세계적인 셰프 앙드레 치앙(André Chiang)이 '1887 by André'를 열고 싱가포르 파인다이닝 무대로 돌아왔다. 2018년 자신의 레스토랑 'Restaurant André'를 닫은 뒤 8년 만이다. 레스토랑 이름에는 호텔이 처음 문을 연 해인 '1887'을 그대로 붙였다.
‘1887 by André’는 호텔의 역사 자체를 미식으로 풀어낸 공간이다. 치앙은 래플스에 남아 있는 기록과 싱가포르의 미식 유산에서 재료를 찾았다. 호텔의 역사적인 포멀 다이닝룸을 무대로 싱가포르의 음식과 문화에 프랑스 조리 기법을 접목했다.
성과도 빠르게 나타났다. '1887 by André'는 올해 미쉐린 가이드에서 2스타를 획득하고 '오프닝 오브 더 이어(Opening of the Year Award)'에도 선정됐다. 19세기에 시작한 호텔의 역사를 2026년의 미식 경험으로 다시 풀어낸 시도가 또 하나의 경쟁력이 된 셈이다.
래플스의 상징인 버틀러 서비스도 여전히 이어진다. 115개 스위트와 건축, 버틀러 서비스 같은 호텔의 뼈대는 지키되 그 안에서 고객이 경험하는 미식과 웰니스, 문화 콘텐츠는 시대에 맞게 바꿔나가는 방식이다.
싱가포르에서 시작된 래플스의 변화는 새로운 공간으로도 이어졌다. 센토사섬에는 지난해 싱가포르 내 두 번째 래플스인 '래플스 센토사 싱가포르'가 문을 열었다. 싱가포르 최초의 올빌라 리조트로, 열대 숲이 우거진 언덕에 62개의 프라이빗 풀빌라를 배치했다. 도심 한복판의 헤리티지 호텔에서 출발한 래플스가 휴양형 럭셔리까지 영역을 넓힌 것이다.
제스민 홀 래플스 호텔 싱가포르 상업·마케팅 총괄 이사는 이번 선정에 대해 "약 140년의 역사를 이어오며 시대의 변화에 맞춰 꾸준히 진화해 온 노력을 보여주는 결과"라며 "역사적 유산과 전통적인 서비스, 새로운 세대를 위한 현대적인 경험을 조화롭게 선보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140년 가까이 살아남은 호텔의 경쟁력은 결국 ‘보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건물과 서비스의 뼈대는 지키되 그 안을 채우는 콘텐츠는 시대에 맞춰 바꿔왔다. 2019년 대대적인 복원에 이어 올해는 ‘1887 by André’로 미식 경쟁력을 끌어올렸다. 래플스가 과거의 명성에 기대지 않고 여전히 세계 호텔 순위에서 이름을 올리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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