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규 칼럼] 중국 지방정부의 제조 AI 정책이 한국에 던지는 질문

1
[경기연구원 AI 연구실 연구위원]

 
 
최근 중국 AI를 둘러싼 논의는 중국의 새 모델이 미국의 최신 모델과 어느 정도 성능 격차를 보이는지에 집중돼 있다. 하지만 이런 성능 비교만으로는 중국 AI 정책의 변화를 충분히 읽어내기 어렵다. 중국 AI를 제대로 보려면 모델의 성능과 함께 공장에서 실제로 무엇이 달라지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지난 8월 10일 허베이성이 공개한 ‘인공지능+제조’ 특별행동 실시방안은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 사례이다. 해당 계획은 AI를 철강, 화학, 바이오의약, 자동차 등 지역의 주력산업과 생산공정에 어떻게 적용할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중앙정부의 정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중국 공업정보화부 등 8개 부처가 올해 초 공개한 ‘인공지능+제조’ 특별행동 실시의견도 같은 방향을 제시했다. AI의 적용 범위를 연구개발과 시험·검증에서 생산, 마케팅, 운영관리까지 제조업 전 과정으로 넓히고, 2027년까지 산업용 AI 에이전트 1000개와 대표 활용 시나리오 500개를 보급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함께 공개한 ‘제조업 기업 AI 응용 지침’은 기업이 AI를 도입하기 전에 디지털화 수준과 생산 현장의 병목을 진단하고, 경제성과 위험을 따져 적용 분야의 우선순위를 정하도록 했다. 중앙정부가 대형모델 개발을 넘어 기업이 어느 공정에 AI를 적용해 어떤 효과를 낼지까지 정책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허베이성은 이 방침을 지역 산업에 맞게 풀어냈다. 2027년까지 산업용 대형모델 4~5개와 산업용 AI 에이전트 30개를 육성하고, 선진급 스마트공장 300개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목표치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적용 대상이다. 철강에서는 제철 공정과 에너지 관리, 화학에서는 안전관리와 설비 예측정비, 바이오의약에서는 신약 개발을 주요 분야로 정했다. 자동차에서는 지능형 생산 일정 관리와 스마트 콕핏(Smart Cockpit), 운전 보조 기술에 AI를 적용한다. 같은 국가전략이라도 지역의 주력산업에 따라 AI를 적용할 분야와 공정은 달라질 수 있다.

이 같은 차이는 적용 분야에만 있지 않다. AI를 산업 현장에 적용하기 위해 지방정부가 활용하는 정책 수단도 서로 다르다. 선전은 연구개발과 생산, 공급망 관리 등에 활용할 산업용 AI 에이전트를 ‘디지털 직원’으로 육성하고, 이를 뒷받침할 혁신센터와 산업 지식연맹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산업용 에이전트를 개발하고 활용할 저변을 넓히는 데 무게를 둔 셈이다. 반면 베이징은 ‘AI+신소재’ 사업에서 신소재나 관련 장비·부품을 개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수요기업의 적용 검증과 함께 지능형 설계, 시뮬레이션, 실험 데이터, 제조공정을 아우르는 기술 패키지까지 요구했다. 연구 성과를 양산을 위한 확대 검증이나 실제 산업 적용으로 이어갈 기반까지 사업 요건에 담은 것이다.

제조 AI와 지역의 산업구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공장마다 설비 사양과 공정 순서, 품질 기준이 다르고 숙련자가 쌓아온 경험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보유한 데이터의 양과 형식, 관리 수준에도 차이가 있다. 어느 공정에서 시간이 지체되는지, 불량이 반복되는 원인은 무엇인지, 자동화에 투자했을 때 비용을 회수할 수 있는지 등은 현장을 알아야 판단할 수 있다. 기업별 수요를 파악해 필요한 기술을 연결하고 검증된 방법을 다른 기업으로 확산하는 과정에서 현장과 가까운 지방정부와 지역 지원기관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지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해서 성과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여러 지역이 비슷한 모델과 데이터센터, 산업단지를 경쟁적으로 만들면 중복투자와 자원 낭비가 생길 수 있다. 중국 중앙정부도 각 지역의 여건에 맞는 정책을 마련하고 기업의 차별화된 발전을 유도하되 산업의 ‘내권(內卷)식 경쟁’, 즉 소모적인 출혈경쟁을 막으라고 주문했다. 모델과 에이전트의 숫자가 아무리 늘어도 활용할 데이터가 부족하거나 기존 설비와 제대로 연결되지 않으면 생산 현장은 달라지지 않는다. 시범 적용이 끝난 뒤 기업이 자체 비용으로 계속 사용할 수 있는지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한국도 제조 AI를 지역 산업과 연결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산업통상부는 제조업 AI 대전환(M.AX)을 추진하면서 창원과 광주 등 기존 10개 AX 실증 산단에 지역기업과 대학 등이 참여하는 ‘MINI Alliance’를 출범시켰고, 올해 추가로 선정한 3개 실증 산단에도 같은 체계를 확대할 계획이다. 산단 입주기업들이 AI 관련 인프라와 기술·인력을 공동으로 활용하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문제는 이런 제도가 현장의 변화로 이어지느냐다. 산업통상부는 지금까지 AI 팩토리 선도 프로젝트를 통해 170여 개 사업장의 AI 전환을 지원했다. 이 가운데 비교적 일찍 사업에 착수해 구체적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42개 사업장을 점검한 결과, 생산성은 평균 30.1% 높아지고 불량률은 평균 15.5% 낮아졌다. 주목할 만한 결과지만 지원받은 사업장 전체의 평균으로 볼 수는 없다. 다른 업종과 기업에서도 비슷한 개선이 나타나는지, 정부 지원이 끝난 뒤에도 효과가 이어지는지는 계속 확인해야 할 대목이다.

정책 효과를 판단하려면 생산시간과 불량률, 설비 가동률, 에너지 사용량이 실제로 어떻게 변했는지 살피고, 기술 도입에 들인 비용과 이를 통해 얻은 편익도 함께 따져봐야 한다. 기대한 결과를 얻지 못한 실증도 중요한 데이터가 될 수 있다. 어느 공정에서 기술적 한계가 드러났는지, 왜 경제성을 확보하지 못했는지를 기록해두면 다음 사업에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개별 실증의 성공 여부에 머물지 않고 그 결과를 다음 정책으로 이어가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중국 지방정부의 제조 AI 정책이 한국에 던지는 질문도 분명해진다. 따라서 한국의 지방정부는 제조 AI 정책을 추진할 때 실증사업 자체보다 그 이후를 설계해야 한다. 확인된 성과가 다른 기업과 업종에서도 재현되고, 정부 지원이 끝난 뒤에도 기업이 스스로 AI 활용을 지속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 관건이다. 결국, 제조 AI 정책의 성과는 사업의 숫자가 아니라 이러한 변화가 현장에 얼마나 뿌리내렸는지에서 드러날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 경기연구원 AI 연구실 연구위원 ▲ 한양대학교 전략정보학과 겸임 교수 ▲ 대통령 직속 기본사회위원회 지방정부 특위 위원 ▲ 경제인문사회연구회 해외기관평가위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