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조금 넘은 지금 시장은 상전벽해, 천지개벽이다. 주식시장, 부동산 시장 등 모든 시장이,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크게 출렁였다. 이런 시장 변화를 두고 최근 여론이 아주 안 좋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새 정부의 시장 공략이 먹히는 과정인가, 정부 정책에 대한 시장의 반격인가.
먼저 주식시장부터 보자. 코스피 2500선이던 시장은 한때 9000선을 넘기까지 했다. 물론 반도체 대형주의 외끌이 장세라고는 해도 1년 전엔 상상하기 힘들었던 흐름이다. 이재명 정부의 상법 개정 등 주주 가치 지지 정책들의 약발이 초장에 제대로 먹힌 결과다. 이는 예상대로였다. 여기에 AI(인공지능)발 반도체 특수가 세계를 휩쓸리라고는 확신하지 못했으나, 아무튼 여기까지 왔다.
돌이켜보면 변곡점이 몇 차례 있었다. 먼저 지난 1월 21일 연두 기자회견이었다. 코스피가 5000선을 넘으면서 자신감이 붙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당시 경제와 민생 부문에서 코스피 다음으로 국민적 관심 대상은 환율과 부동산이었다. 둘 다 가격 변수이고 단기간에 근본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공통점을 가진 이슈들이었다. 정부가 이런 변수를 다룰 때 최선은 ‘시그널링’이다. 환율과 부동산 가격이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바람직하다는 정도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대목에서 청와대가 작은 착각 혹은 실수를 범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최근 비난의 도마에 수없이 오른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도입도 바로 이때 의사결정이 이뤄졌다. 이것으로 환율 안정에 도움을 주고 서학 개미들을 국장으로 불러들여 보자는 발상이었을 것이다. 너무 단순하고 신중하지 못했다. 이미 판명났듯이 국제금융과 주식시장을 잘 모르고 성급하게 욕심 낸 정책 실패 사례임이 분명하다. 당시 이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제공한 국내외 금융사와 그 핵심 전달자가 누구인지 꼭 밝혀졌으면 한다. 나무만 보고 큰 안목의 숲을 보지 못하는 잘못이 반복되고 있다. 그 이면에는 코스피 5000 돌파라는 자신감을 업은 청와대 참모들의 충성 과시욕이 자리했을 듯싶다.
부동산 시장과 정책은 좀 더 심각하다. 부동산은 상당한 시간을 두고 시장에 시그널을 보내야 하는 사안이었다. 주식시장 활황을 등에 업고 부동산에 쏠려왔던 시중자금을 자본시장으로 몰아보자는 발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동안 너무 높게 형성됐던 부동산의 기대수익률을 낮추는 작업에는 수요 억제와 동시에 공급 확대 시그널이 시장에 먼저 그리고 확실하게 전달됐어야 했다. 그러나 주식시장에서의 자신감과 지방선거를 앞둔 기선 잡기 국면에서 정부가 내놓은 카드는 좀 경직적이었다. 이 즈음이 시장 이기는 정부는 없으나 정부를 이기는 시장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는 대통령 발언이 나온 시점이다. 경자유전(耕者有田)처럼 주자유택(住者有宅) 원칙이 절실한 한국 현실에서 방향은 옳다. 그러나 치밀한 전략과 계획이 부족했던 것은 매우 뜻밖이었다.
크게 보면 지금 어려운 이 국면도 결국 지나간다. 특히 곧 마무리될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후 정국과 정책은 크게 변화할 것이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크게 변화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 5년의 첫 국면이 지나가는 시점이다. 그러면 2028년 총선까지 이어질 이재명 정부의 두 번째 국면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 것인가. 첫 번째 국면과는 분명 달라야 한다.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라는 용어가 있다. 정치학에서는 체제 교체 혹은 정권 교체를 일컫는다. 흔히 미국이 북한의 체제 전환을 언급할 때 이 용어를 사용하곤 했다. 그러나 경제학에서는 그 의미가 상당히 다르다. 정책 기조나 정책 팀의 큰 변화를 얘기할 때 이 개념을 사용한다. 예컨대 지속적인 금리 인하 국면에서 방향을 바꿔 금리를 인상하는 쪽으로 전환할 때 레짐 체인지라는 용어를 쓴다.
시장과 여론은 지금 정부에 분명한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정책 틀과 정책 팀의 컬러를 바꾸라는 쪽이다. 지금까지의 정부 정책과 정책 팀이 무조건 틀렸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시장이 바뀌었다. 시장이 바뀌면 시장 플레이어와 그들의 행태가 가장 먼저 바뀐다. 이를 전제로 시장의 룰과 정책이 변화해야 한다. 시장 변화에 맞춰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정부의 첫 번째 국면이 마감되고 있다. 새로운 변화의 동력이 필요한 타이밍이다. 계엄 상황에서 탄생한 이 정부의 1단계의 무게중심은 초기 안정화와 정책 기조 확립에 있었다. 2단계 국면의 강조점은 다르다. 당정청이 하나의 유기체가 되어 긴 호흡의 큰 개혁들을 치밀하고 빈틈 없이 진행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5년 임기 중 가장 중요한 기간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거론한 ‘정부를 이기는 시장도 없다’는 명제가 성립하려면 코스피 1만 시대에 맞는 진짜 강한 정부 정책 프레임이 준비되어야 한다. 이런 앵글에서 보면 현재의 청와대와 정부의 논의 구조와 스타일 그리고 정책팀의 면면은 다소 퇴행적이다. 강한 정부라는 것이 민간 영역을 축소하거나 관료들의 치세를 강화하는 것으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민간의 시장 영역을 넓혀가되 그것이 잘 짜인 메커니즘 설계처럼 중층적으로 빈틈 없이 완성돼야 한다. 앞으로 시장은 주먹이 힘쓰는 곳이 돼서는 안 된다. 주먹이 힘을 쓰더라도 시장의 힘으로 그 주먹이 작동해야 한다. 한국의 관료 집단은 영리하고 스마트하다. 그래서 그들은 늘 답을 잘 제시하곤 한다. 문제는 그 답이 제한적이고 일시적이며 부분 균형이라는 점이다. 시행령으로 법을 누더기로 만들곤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제 여백이 별로 없다. 부분 균형은 길게 보면 더 이상 답이 아니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국제경제학과 및 동 대학원 ▷미국 미주리대 경제학 박사 ▷매경TV·매경출판 대표, 매일경제신문 워싱턴 특파원, 논설위원 등 ▷서울대 경제학부 객원교수 ▷한국데이터홈쇼핑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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