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수 작가]
대부분의 사회생활은 명함 한 장을 건네는 순간에서 시작된다. 명함에는 나의 소속, 직함, 연락처, 회사 로고까지, 이 사회에서 내가 어디에 위치한 사람인지에 대한 정보가 빼곡히 담겨 있다. 명함을 내민다는 것은, 상대에게 신분을 증명하는 동시에, 나 스스로도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선언하는 행위다.
그런데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 대부분은 자기 명함이 없다. 어느 회사에도, 어느 부서에도, 어느 직함에도 속해 있지 않은 사람처럼 취급된다. 자신을 소개할 상징물이 없다는 것은, 곧 '나는 이 사회의 어디에 서 있는가'를 확인할 수단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많은 노동자들이 자신을 그냥 '막노동꾼'이라고 부르며, 사회의 저변, 언제든 교체 가능한 층에 속한 존재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한다.
나는 조금 다르게 해 보기로 했다. 나는 일정하게 소속된 회사가 없으니 내 명함에는 회사 로고 대신 내가 그린 그림이 들어가 있고, 직함란에는 '할석미장공'이라고 적혀 있다. 그냥 '일용직 건설노동자'라고 뭉뚱그려 말하는 대신, 나는 내 일을 구체적으로 부르고 싶었다. 나는 오늘도 현장에서 할석과 미장을 하는 사람이고, 그 일에 나름의 기술과 자부심을 가진 노동자라는 것을 밝히고 싶었다.
명함을 건넬 때마다 느낀다. 이건 단지 연락처를 적어놓은 종이가 아니라, '나는 이 일을 하는 자유인이다'라고 말하는 작은 선언이라는 것을. 누군가의 직원, 누군가의 밑에 붙어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이름과 기술을 가진 인간으로서 나를 드러내는 행위라는 것을. 그러므로 명함은 상징자본의 한 형태다. 종이 한 장이지만, 그 안에는 내가 속한 장(field), 즉 세상의 어느 판 위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가 농축돼 있다. 건설노동자가 자기 이름과 직업이 적힌 명함을 갖는다는 것은, '나는 그냥 막노동이 아니라, 이 현장이라는 장(場)에서 이런 기술과 역할을 가진 사람이다'라고 선언하는 일이다. 현장은 오늘도 사람을 갈아 넣듯 돌아가지만, 그 속에서 노동자가 자기 이름과 자기가 하는 일을 당당히 적은 명함을 내밀 수 있다면, 그 순간만큼은 '사회 저변'이 아니라 '인간(人間)',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한 당당한 자기 위치로 올라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작은 종이 한 장에서 시작된 물음
명함은 90밀리미터에 50밀리미터의 크기로 손바닥보다 작다. 그 안에 한 사람의 이름과 소속과 직함이 들어간다. 우리는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주고받는다. 그러나 이 작은 종이가 언제 우리에게 왔는지, 그리고 왜 왔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오래된 물음 앞에 서게 된다.
명함은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야 하는 사회에서만 필요한 물건이다. 마을 공동체에서는 얼굴이 곧 신원이므로 이름을 밝힐 필요가 없다. 유럽에서 18세기에서 19세기 사이에 방문카드가 폭발적으로 퍼진 것도 도시화로 낯선 사람과의 접촉이 일상이 되고 신분 상승 이동이 가능해진 시기와 정확히 겹친다. 그 시절 명함 사용 규칙을 아는지 여부 자체가 신분의 신호였다. 명함은 사람을 관계망에서 떼어내 휴대 가능한 단위로 만드는 기술이다. 집과 문중과 마을에 붙박여 있던 이름이 주머니에 넣어 어디든 들고 다닐 수 있는 것이 된다. 이 분리가 근대적 개인의 조건이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근대식 명함은 1883년 보빙사로 미국에 건너간 민영익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서 대통령의 주선으로 유럽을 순방하던 중 영국에서 청나라 공사에게 건넨 것으로, 지금은 연세대 의과대학 동은의학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명함이 널리 퍼진 데에는 인쇄가 결정적이었다. 손으로 쓴 명자(名刺)는 한 장뿐이지만, 인쇄된 명함은 나를 수백 장으로 복제해 뿌릴 수 있다. 자기를 유통 가능한 정보로 만드는 것. 근대적 자기 표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여기에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폐지되었다. 태어난 신분이 아니라 획득한 직함으로 자신을 설명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직함을 가진 사람이 늘어나는 사회 변동과 인쇄 기술의 발전, 이 두 가지를 명함 사용이 급증한 배경으로 꼽을 수 있다.
명함의 '무엇'과 '누구'
한국과 일본의 명함은 회사가 먼저, 직함이 다음, 이름이 마지막이다. 활자 크기도 종종 이름보다 소속이 크다. 이것은 개인주의의 명함이 아니라 귀속의 증명서다. "나는 누구인가"가 아니라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가"를 말한다. 두 손으로 공손히 건네고 바로 넣지 않고 잠시 들여다보는 의례도, 실은 상대의 조직 서열을 읽고 존댓말 등급을 결정하는 절차다. 그러므로 한국의 명함은 개인이 해방되었음을 보여주는 물건이 아니라, 신분제가 사라진 자리에 조직 서열이 들어앉았음을 증명하는 물건에 가깝다. 귀속의 단위가 문중에서 회사로 바뀌었을 뿐이다.
아렌트의 구분을 빌리면 명함에 적힌 것은 전부 '무엇(what)'이다. 직업, 직위, 소속, 학위. 그러나 그 사람이 '누구(who)'인지는 말과 행위 속에서만 드러난다. 명함은 개인을 특정해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교체 가능한 기능적 속성들로 사람을 요약해 버린다. 개인주의를 촉진하면서 동시에 개인의 고유성을 가리는 물건인 셈이다. 이렇게 명함이 사회적 개인의 증명이라면, 명함이 없는 사람은 무엇인가.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는 명함을 주고받지 않는다. 이름 대신 "미장 아저씨", "오야지", "그 형님"으로 불린다.
근대적 개인주의가 명함이라는 사물을 통해 확산되었다면, 그 확산은 처음부터 선별적이었다. 19세기 유럽에서 명함이 상류층에서 중산층으로 내려오다 멈춘 것처럼, 한국에서도 명함은 사무직의 물건으로 남았다. 이름으로 호명되지 않는 사람은 책임의 주체로도, 발언의 주체로도 서기 어렵다. 안전 문화가 노동자의 발언에서 출발한다면, 그 발언의 전제는 "나는 누구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자리다. 명함은 그 자리가 제도적으로 어떻게 배분되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작은 표본이다.
명함에서 프로필로
오늘날 명함은 온라인 프로필로 옮겨 가고 있다. 매체는 바뀌었지만 요구는 남았다. 오히려 강해졌다. 종이 명함은 만나는 순간에만 필요했지만, 온라인 프로필은 만나지 않는 동안에도 계속 거기 서서 나를 대리한다.
두 가지가 달라졌다. 하나는 누적성이다. 명함은 한 장의 요약이지만 프로필은 이력의 층위다. 지난 게시물, 옛 직함, 삭제하지 않은 흔적까지 함께 읽힌다. 요약이 아니라 시간이 쌓인 기록이라는 점에서 '무엇'에서 '누구' 쪽으로 조금은 이동한 셈이다. 다른 하나는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명함은 인쇄하면 끝이지만 프로필은 지속적으로 갱신해야 한다. 자기 표상이 한 번의 소개가 아니라 상시적 노동이 되었다. 자기를 보여주는 일이 자기를 증명해야 하는 압박으로 바뀔 때, 존재의미를 찾는 일은 존재를 변명하는 일이 된다.
자기를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은 존재의미를 아직 붙잡지 못한 상태일 수 있다. 다만 여기서 하나를 구별해야 한다. 표상할 수 없는 것과 표상되지 못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30년 미장일을 한 사람에게 프로필 양식은 회사명과 직함을 묻는다. 그 칸에 넣을 말이 없는 것은 그의 삶에 의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양식이 그 삶을 담을 그릇을 갖고 있지 않아서다. 돌봄, 오래된 우정, 매일 새벽 현장에 나가는 성실 같은 것들은 어떤 프로필 칸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자기를 보여줄 수 없다는 감각이 들 때, 그것이 내 삶의 결핍인지 양식의 결핍인지 한 번은 물어야 한다.
명함이 요약이라면 서사는 시간이다. 명함이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선언한다면, 서사는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를 보여준다. 아렌트가 말한 '누구(who)'가 오직 말과 행위의 이야기 속에서만 드러난다면, 진짜 프로필은 프로필 칸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남긴 기록일 것이다. 일기, 그림, 하루가 끝났을 때 그가 작업한 벽 같은 것.
보이지 않는 뒷모습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지식인이든 노동자든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거창한 직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도 아니다. 자기 존재를 스스로 확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에 한 가지 역설이 있다. 그리스인들은 각 사람의 어깨 너머에 다이몬이 앉아 평생 그를 따라다니지만, 정작 본인은 그것을 볼 수 없고 마주 선 사람에게만 보인다고 여겼다. 내가 누구인지는 내가 가장 보기 어려운 것이다. 거울로는 얼굴만 보이지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자기 확인은 순수한 독백으로 완결되지 않는다. 어떤 응답하는 존재를 필요로 한다. 동료든, 글을 읽는 독자든, 기도의 상대든. 매일 일기를 쓰는 일도 실은 독백이 아니라 미래의 자기를 증인으로 세우는 일이다.
명함은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라는 답변의 형식이다. 그런데 인간은 답변이 아니라 물음이다. 그러니 어떤 자기 소개도 원리상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우리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인간이 그렇게 생긴 존재이기 때문이다. 명함 한 장으로 그 사람을 다 읽었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그 앞에 선 심연을 놓친다. 직함으로 사람을 대접하고 직함으로 사람을 무시하는 일이 거기서 나온다. 그리고 명함이 없는 사람들. 이름 대신 기능으로 불리는 사람들. 그들이 표상되지 못하는 것은 그들에게 담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가진 양식이 너무 좁아서다.
그렇다면 명함이란 결국 초라한 대용품일 뿐인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명함을 반대 방향에서 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여기 있습니다
응답이라는 말을 조금 더 밀고 가 보자. 라틴어 respondere는 되돌려 답한다는 뜻이고, 여기서 책임을 뜻하는 responsibility가 나왔다. 책임이란 본래 능력이나 자격이 아니라 부름에 답할 수 있음이다.
한국 교회에서 "응답받았다"는 표현은 대개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답, 즉 하늘에서 나에게 오는 방향으로 쓰인다. 그러나 더 원형적인 것은 반대 방향이다. 부름이 먼저 있고 사람이 답한다. 히브리어로 히네니(Hineni),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는 뜻이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이 한마디를 자기 윤리학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서구 철학이 오랫동안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며 나를 중심에 두었다면, 레비나스는 타자가 먼저 있다고 말한다. 타자가 내미는 무방비한 얼굴 앞에서 비로소 나에게 응답할 의무가 생긴다는 것이다. 주체성이란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부름에 응답하면서 완성된다.
어려운 말 같지만 현장에서는 매일 일어나는 일이다. 비계 위에서 누가 내 이름을 부를 때, 아래에서 자재를 올려 달라고 소리칠 때, 신호수가 손을 들 때. 거기서 "예" 하고 답하며 몸을 돌리는 것. 그것이 히네니다.
기존의 명함이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자신의 지위와 소속을 앞세워 나를 상대에게 주입하는 나 중심의 도구였다면, 히네니로서의 명함은 "당신이 나를 필요로 할 때 언제든 나를 부르십시오, 내가 응답하겠습니다"라는 타자를 향한 약속의 증표다. 그래서 명함을 건네는 행위는 단순히 내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당신의 부름에 응답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여기 서 있습니다"라고 선언하는 일이 된다. 이것은 주체의 대상성 회복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의 정체성은 명함에 적힌 화려한 직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명함을 매개로 앞으로 형성될 관계와 책임에서 나오는 셈이다. 서로의 안전과 생명을 맡기는 건설현장의 절박한 부름에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며 다가가 손을 내밀고, 숙련된 기술과 책임감으로 응답하는 것. 그것이 현장의 노동이 지닌 진정한 윤리이자 가치다. 이제 명함은 "나는 이런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이며, 당신이 부를 때 안전하고 완벽하게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라는 묵직한 약속이 되는 셈이다.
내 명함에는 노동자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다. 뒷모습만 봐도 그의 하루가 어땠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아도, 굳이 묻지 않아도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그림 문자다. 앞모습은 미소로, 표정으로, 화술로 나를 꾸며낼 수 있다. 하지만 뒷모습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노동을 마친 건설 노동자의 굽은 등, 땀에 젖은 작업복, 먼지 묻은 어깨는 그가 오늘 하루 현장의 요구나 동료의 요청과 같은 타자의 부름에 얼마나 성실하게 응답하며 자신의 온몸을 바쳤는지를 웅변한다. 그 뒷모습 자체가 "저는 오늘 하루 당신들을 위해 여기 있었습니다"라는 증거다.
이 땅의 모든 건설 노동자에게 이런 명함 하나 만들어 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나를 필요로 하는 모든 이에게 내 명함을 조용히 건네고 싶다.
필자 소개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노동자로 일하며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해 왔다. 현재 아프리카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ADRF)에서 아프리카와 아시아 빈곤지역 아동들의 교육·급식·장학 지원을 이끄는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로, 건설현장에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 프로그램으로 펼치고 있다.
idoos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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