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기본·원칙·상식] 정치에 흔들린 美 연준, '채권 자경단'을 깨웠다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연 3.50~3.75%로 동결했다. 예상된 결정이었지만 시장의 반응은 거칠었다. 3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연 5.2%까지 치솟았고 주가는 급락했다. 장기 국채 금리는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


이번 결정에서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 위원 12명 가운데 3명이 0.25%포인트 인상을 주장했다. 인플레이션과 국제 유가를 감안하면 추가 긴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은 금리를 동결하면서도 “필요하면 주저하지 않고 행동하겠다”는 매파적 메시지를 냈다. 행동은 비둘기파였고 발언만 매파였다.

워시 의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해 지난 5월 취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기 부양과 정부 이자 부담 축소를 위해 연준에 금리 인하를 노골적으로 요구해 왔다. 워시 지명 당시부터 그가 물가와 경기 지표보다 대통령의 뜻을 의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물론 기준금리 동결 자체를 잘못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전쟁과 유가 급등으로 물가 압력이 높아졌지만 경기 둔화 위험도 무시할 수 없다. 문제는 연준의 판단과 설명이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는 점이다. 물가를 걱정한다면서 정책은 동결했고 향후 방향도 분명히 밝히지 않았다. 시장에는 연준이 물가보다 정치를 의식해 필요한 조치를 미루고 있다는 의심만 남았다.

이른바 ‘채권 자경단’이 움직였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나 중앙은행이 물가와 재정 건전성을 외면한다고 판단한 투자자들이 국채를 내다 팔며 정책 당국에 경고를 보내는 현상이다. 이번 국채 금리 급등은 연준의 동결 결정에 대한 시장의 사실상 불신임이었다.

시장에 의한 긴축은 연준의 금리 인상보다 거칠다. 국채 금리가 오르면 주택담보대출과 기업대출, 회사채 금리가 함께 오른다. 미국 정부의 국채 이자 부담도 커지고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는 위축된다. 경기를 살리려고 기준금리를 묶어 놓았는데 오히려 시장금리가 뛰어 실물경제와 금융시장 모두에 충격을 줄 수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연준의 신뢰 훼손이다. 통화정책은 실제 금리 조정뿐 아니라 시장의 기대를 관리하는 일이다. 중앙은행이 정치에 흔들린다는 의심을 받으면 아무리 강한 발언을 해도 시장은 믿지 않는다. 말의 힘이 사라지면 나중에는 더 큰 폭의 금리 인상으로 신뢰를 회복해야 하고 그 비용은 국민과 기업이 부담한다.

연준의 판단 착오는 미국에만 머물지 않는다. 미 국채 금리 상승은 세계 자금을 미국으로 빨아들이고 각국의 환율과 시장금리를 밀어 올린다. 신흥국의 자본 유출과 통화 가치 하락을 부르고 한국의 채권·주식시장에도 충격을 준다.

워시 의장은 자신을 지명한 대통령이 아니라 물가와 고용, 금융시장 안정에 책임을 져야 한다. 금리를 올릴 상황이면 올리고, 동결이 필요하다면 경제 지표와 논리로 시장을 설득해야 한다. 행동하지 않은 채 말만 매파적으로 꾸미는 것으로는 신뢰를 지킬 수 없다. 정치가 중앙은행의 금리를 붙잡으면 시장은 더 높은 금리로 대가를 요구한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