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4편의 농산일기를 쓴 농부가 군수가 됐다. 그리고 그가 가장 먼저 이어간 것은 새로운 기록이었다.
김세훈 강원 화천군수는 취임 후 자신의 하루를 ‘군정일기’에 담고 있다. 주민을 만난 장소와 현장에서 들은 목소리, 중앙부처와 관계기관에 건의한 지역 현안 등을 기록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개한다.
김 군수에게 기록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공직을 떠나 농부가 된 뒤 그는 농촌의 일상을 농산일기에 담았다. 씨를 뿌리고 작물을 기르는 과정부터 날씨와 농산물 가격, 농민들이 겪는 어려움까지 현장에서 보고 느낀 내용을 꾸준히 적었다. 그렇게 쌓인 기록이 모두 664편이다.
농산일기는 단순한 영농일지를 넘어 농촌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의 시간이었다. 작황이 좋지 않은 날의 걱정과 수확의 기쁨, 농산물 판로와 농촌의 현실에 대한 고민이 기록 속에 남았다.
그는 공직자에서 농부로 돌아간 뒤 화천군수 선거에 도전했다. 두 차례 낙선했지만 정치를 포기하지 않았다. 농사를 지으며 주민을 만났고, 지역의 문제와 화천의 미래를 고민하는 시간도 이어갔다. 세 번째 도전 끝에 군민의 선택을 받아 민선 9기 화천군정을 책임지게 됐다.
농부 시절의 농산일기는 취임 이후 군정일기로 바뀌었다. 기록의 대상도 밭과 작물에서 주민의 삶과 지역 현안으로 넓어졌다.
취임 후 김 군수는 군민 소득 증대를 군정의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농어촌 기본소득과 지역화폐 활성화, 농산물 판로 확대, 사계절 체류형 관광 육성 등을 통해 주민 소득과 지역경제가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지난 25일 그의 일정에도 이러한 군정 방향이 담겼다. 김 군수는 국회에서 열린 ‘접경지역에서 평화지역으로’ 특별법 관련 세미나에 참석해 접경지역 규제 완화와 발전 대책을 건의했다.
백암산 케이블카 출입 규제 완화와 화천댐 정상 도보길 개방을 비롯해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용수 공급에 따른 화천지역 보상 문제를 설명했다. 파로호 수상 태양광과 군부대 유휴부지를 활용한 태양광 발전 방안 등 지역의 새로운 소득 기반 마련을 위한 구상도 제시했다.
국회 일정을 마친 뒤에는 사내면 사창1·2·3·6리와 화천읍 경로당을 찾아 어르신들의 애로사항을 들었다. 어린이집 원장들과도 만나 보육 현장의 어려움과 지원 방안을 논의하고, 제기된 건의사항을 내년도 예산과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어 제2군단을 방문해 오는 31일 개막하는 화천토마토축제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군부대의 참여와 협조를 요청했다. 국회에서 지역 현안을 건의하고, 경로당과 보육 현장을 찾은 뒤 군부대와 축제 협력까지 논의한 일정이었다.
김근도 전 화천군 공직자는 “함께 근무할 당시 김 군수는 어려운 일이 생기면 누구를 탓하기보다 해결 방안을 먼저 찾으려는 사람이었다”며 “화천을 위해 해보고 싶은 일이 많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이제 군수가 된 만큼 누구보다 열심히 일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군정일기가 공개될 때마다 SNS에는 주민과 출향인들의 반응도 이어지고 있다. “화천군을 위해 건강관리 잘하세요”, “활기차고 희망이 가득한 화천을 응원합니다”, “바쁜 일정을 잘 소화하는 김세훈 군수님 파이팅”, “토요일에도 군정 활동을 하시네요”라는 격려가 잇따랐다.
멀리 라오스에 거주하는 한 출향인도 “김 군수님의 멋진 행보에 박수를 보내며 응원한다. 화천의 새로운 희망이 시작되고 있는 것 같아 기대가 크다”는 내용의 댓글을 남겼다. 고향의 변화를 지켜보는 주민과 출향인들의 기대가 군정일기 아래에 쌓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군정은 기록만으로 평가받지 않는다. 현장을 얼마나 자주 찾았는지보다 주민들이 어떤 변화를 체감했는지가 중요하다. 군민 소득이 늘고 지역 상권이 살아나며, 농업과 관광이 새로운 활력을 얻을 때 기록은 비로소 정책의 성과로 이어진다.
공직자에서 농부로, 두 번의 낙선을 거쳐 군수가 되기까지 김 군수의 시간에는 기록이 있었다. 농산일기가 농부의 고민과 땀을 담았다면 이제 군정일기에는 화천의 현안과 주민들의 목소리가 쌓이고 있다.
664편의 농산일기는 한 농부의 시간을 기록했다. 이제 막 첫 장을 넘긴 군정일기는 화천의 시간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 기록의 가치는 남겨진 글의 수가 아니라 앞으로 4년 동안 달라질 화천 군민들의 삶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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