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방방위'에서 미래위원회로

인공지능(AI)은 더 이상 산업계의 유행어가 아니다. 검색과 번역, 문서 작성부터 공장 자동화와 신약 개발까지 이미 국민의 일상과 기업의 생산방식을 바꾸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에서도 AI는 군사·경제·외교의 우위를 좌우하는 전략자산이 됐다. 정부가 최근 반도체,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를 축으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를 내놓은 배경이다. AI의 두뇌와 몸, 심장을 국내에 구축해 주도권 경쟁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구상이다. 방향만 놓고 보면 이견을 찾기 어렵다.

과학기술·정보기술(IT) 현장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기대보다 불안에 가깝다. 제22대 국회가 후반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전반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는 이름과 달리 과학기술보다 방송·정치의 무대에 가까웠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인사와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둘러싼 공방이 회의장을 채웠고, 과학기술과 정보통신 현안은 뒷줄로 밀렸다. '과방위'가 아니라 '방방위'라는 자조가 나온 이유다.

AI 데이터센터 특별법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와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전력 특례 이견을 가까스로 조정한 끝에 극적으로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모든 법안이 그런 결말을 얻은 것은 아니다. AI에 정책 우선순위를 내준 기초과학과 연구개발(R&D)은 논의의 장에 오를 기회조차 충분히 얻지 못했다. 기술패권 경쟁이 빨라질수록 국회의 시간은 오히려 더 느리게 흘렀다.

아이러니하게도 윤석열 정부의 R&D 예산 삭감 사태는 과학계를 정치와 언론의 중심으로 불러냈다. 연구 현장의 고통은 컸지만, R&D 생태계가 국가의 미래와 직결된다는 사실을 사회가 다시 확인하는 계기도 됐다.

이제 삭감 논란의 정치적 효용이 사라지자 과학계는 다시 관심 밖으로 밀려날까 두려워하고 있다. 장기·고위험 연구를 지원하는 K-문샷도, 무너진 연구 생태계를 복원하는 작업도 방송 현안보다 표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뒤로 밀릴 수 있다.

그래서 지난 22일 열린 과방위 당정 정책간담회는 작은 변화로 읽힌다. 이날 참석했던 한 정부 관계자는 "여당이 과학기술·IT 정책에 깊은 관심과 전향적 태도를 보였다"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과기정통부 현안과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 현안을 시간대부터 나눠 논의한 점도 고무적이다. 적어도 과학기술을 방송 정치의 부록으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신호로 볼 여지는 있다.

문제는 신호가 성과로 이어지느냐다. 정부 정책은 발표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예산과 세제, 인허가, 전력망, 입지, 인재 양성은 모두 법과 제도의 뒷받침을 필요로 한다. 3대 메가프로젝트처럼 부처와 민간, 지역을 가로지르는 정책일수록 당정청의 유기적인 조율과 여야의 초당적 협력이 필수다.

물론 헌법적 가치의 차원에서 행정부와 입법부 사이의 견제와 균형은 지켜져야 한다. 다만 견제는 발목잡기와 다르고, 협력은 거수기 역할과도 다르다. 국회는 정부 계획의 허점을 따져 보완하되, 필요한 법안과 예산에는 책임 있게 길을 열어야 한다.

정부 역시 협력을 일방적인 입법 지원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재원 조달과 전력·용수 부담, 지역 수용성, 민간 투자 불확실성을 투명하게 내놓고 국회의 검증에 답해야 한다. 그래야 당정청 협력이 밀실 조율이나 속도전이 아니라 정책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이 될 수 있다.

과학기술은 당장의 지지율을 올리는 재료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미래를 보는 창으로서 과학기술은 10년 뒤 산업과 일자리, 국가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틈새다. 후반기 과방위가 또다시 '방방위'에 머문다면 정부는 대한민국의 시간을 잃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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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선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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