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의 첫 공개 수업을 보러 갔을 때 일이다. 아이 바로 앞에 앉은 장애가 있는 친구 A가 수업 중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애써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자꾸 눈이 갔다. 집에 돌아와 아이에게 슬쩍 물었다. "그 친구는 다른 날도 머리를 흔드나?"
아이는 말했다. "원래 더 흔들어. 오늘은 걔 엄마가 와서 조금 흔든거야." 잠깐의 침묵에 엄마가 신경 쓰고 있다는 걸 눈치 챘는지, 이런 걸 왜 묻느냐는 듯 아이는 한마디를 툭 던졌다. "엄마, 혼날 일 아니야. 원래 그래." 그리고는 다시 하던 놀이를 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같이 교실에서 배우고 생활하는 통합교육을 하고 있다. 아이들 모두가 일반 학급에서 함께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 급식을 먹고, 놀고, 체험 학습을 간다. 수업 시간에는 지원 교사가 곁에 함께한다.
아이에게 이는 일상이다. 퇴근하면 아이가 옆에 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말하곤 하는데, 가끔 A의 소식을 듣곤 한다. 반 친구들이 다 같이 특수학급에 가서 'A의 아기 때 사진을 본 후 함께 춤추고 놀았다'거나(A는 일반학급과 특수학급을 오가는 것 같다), 'A는 구구단을 좋아한다'는 등이다. 평범한 이야기다.
최근 비슷한 교실 풍경을 다룬 기사에서도 통합교육은 아이들에게 '일상'이란 점을 볼 수 있었다. 일본 오사카의 한 초등학교 사례로, 앞을 보지 못하는 아이가 친구들과 교실에서 함께 공부하는데 교실을 이동할 때면 반 친구들이 자연스레 팔을 내준다는 것이다. 기자가 반 친구들에게 이에 대해 묻자, 아이들은 "우리 반 친구니까요"라는 식의 답을 내놨다. 배려나 선행이 아닌, 일상이었다.
어른에게는 특별한 통합교육이 아이들에겐 평범한 일인 것이다. 통합교육이 장애아에게는 어떤 점에서 좋고, 비장애아에게는 어떤 점에서 좋다 혹은 도움이 된다는 식의 교육적 효과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이에게 A는 그냥 반 친구다. 머리를 흔드는 것도, 산수를 잘 하는 것도 그 다음에 알게 된 A의 모습이다. 서로의 다름을 알아가기 전에 함께 지내는 일이 먼저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아이의 태도'는 교실 밖에서도 필요하지 않을까. 서울 해치마당 미디어월에서는 석창우 작가의 작품 '먹의 숨결'이 그 일대 밤을 밝게 비추고 있다. 사고로 두 팔을 잃은 뒤 의수에 붓을 끼워 그림을 그려온 석 작가는 키아프 서울과 연계한 미디어아트 특별전 'OUTfront : Kiaf × MEDIA ART SEOUL'을 통해 이번 작품을 선보이게 됐다.
주목할 점은 그의 작품이 '장애미술'이라는 별도의 이름표를 달고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제성, 한승구, 전혜주 등 여러 작가가 참여한 이번 특별전에서 그저 한 작가의 작품으로 서울의 밤을 수놓고 있다. 석창우의 미술 세계를 만날 수 있는 통로가 장애미술 하나로 국한되지 않은 것이다.
해외에서는 일찌감치 비슷한 고민이 시작됐다. 유럽의 문화예술 네트워크 IETM 등이 2020년 내놓은 보고서의 제목은 아예 ‘주류 속 장애 예술가들(Disabled Artists in the Mainstream)’이다. 장애 예술가를 별도의 영역에 머물게 하는 대신 극장과 축제, 예술기관 등 기존 문화예술 생태계 안에서 동등한 예술가로 활동할 수 있도록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제안이다.
'통합'이란 거창한 말의 시작점은 그리 거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선 만나는 것. 같은 교실에서든, 같은 전시장에서든 말이다. 다름을 보는 것은 어쩌면 그다음이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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