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농업계 인사가 기자에게 건넨 말이다. 농업계는 현재 정부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추진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수백명의 농업인이 모여 기자회견을 연 데 이어 대규모 집회 시위도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논의에 불을 붙인 것은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다. 김 장관이 지난달 4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아세안·멕시코 등 신규시장 확보와 K콘텐츠 수출 확대를 위해 CPTPP 가입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어 김 장관은 같은달 관훈토론회에서 "한국 같은 통상 국가가 CPTPP에 가입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고 관련 논의를 공식화했다.
미국과 관세협상에서 농산물 수입을 막았다고 안도하던 농업계는 날벼락을 맞았다. CPTPP 가입 시 FTA를 체결하지 않은 국가의 농축수산물이 낮은 관세로 들어올 수 있어서다. 우리나라는 CPTPP가입국 중 멕시코 등과 FTA 협정을 체결하지 않았는데, CPTPP에 가입하게 되면 멕시코산 고추, 아보카도 등도 우리나라에 무관세로 들어올 문이 열린다는 것이 농가의 우려다.
CPTPP 가입을 둘러싼 농업계의 우려는 일리가 있어 보인다. 최근에는 과거 2022년 CPTPP 가입 검토 당시보다 농업 생산 감소액이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당시보다 가입국도 늘어나고 거래 규모도 증가했기 때문이다. 또 농가 입장에서는 한·중 FTA 체결 당시 도입한 농어촌 상생협력기금이 모금액의 30% 수준에 그친 점도 잊기 어렵다. 이 때문에 대책이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는 얘기가 농업계에 팽배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을 만나보면 우리나라의 CPTPP 가입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많다. 자유무역 협정은 이른바 수출을 극대화할 수 있는 창구 중 하나다. 특히 멕시코는 자동차와 자동차부품, 철강, 기계 등 한국 주력 제품의 주요 수출시장이자 북미 진출을 위한 교두보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반도체를 제외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한국 경제의 새로운 방향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경제적 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앞서 CPTPP 가입 시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0.33~0.35% 늘어나고 소비자 후생이 30억 달러 증가할 것으로 분석했다. 산업연구원도 한국이 가입하면 15년간 순수출이 연평균 6억~9억 달러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렇다고 농업계를 일방적으로 희생양 삼는 계약은 있을 수 없다.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국가 기간산업이기 때문이다. 당장 시장 개방에 따른 농가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실질적인 안전장치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 자발적 출연에 그쳤던 농어촌 상생협력기금과 방법은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 증명됐다.
법제화로 할 수 있는 새로운 합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현재 미국은 의회가 '농장·식품·국가안보법'을 추진해 농업을 국가 기간산업으로 키우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우리 정부 역시 여기서 배울 대목이 있다. 법제화를 하고 이에 상응하는 정책을 추진한다면 농가를 설득하는 일도 어렵기만 하지 않을 수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농업인을 준공무원처럼 대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농업이 중요한 만큼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이들의 생계를 지원해줘야 한다는 제언이다. 직불금 상향 등이 거론되기도 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농업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변수에 휘둘리지 않고 식량 자급률을 높여가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농가를 위해 교역을 잠근다면 경제 성장이 제한될 수 있다. 농가 발전을 위해 새로운 대책을 마련하되 이른바 '국부' 창출도 놓쳐서는 안 되는 시점이다. CPTPP 가입은 더이상 피할 수 없고 미룰 수도 없는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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