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타 요시히로의 한일 풍경] 황실전범 개정에서 드러난 천황제의 민낯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오가타 요시히로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황실전범 개정에서 드러난 천황제의 민낯

지난 7월 17일, 일본 국회에서 ‘황실전범(皇室典範)’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일본은 만세일계(万世一系, 단절 없이 이어진 혈통이라는 의미) 천황제의 형식적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1947년에 제정되어 지금까지 한 번도 개정된 적 없는 일본국헌법 제1조에는 국민주권과 함께 천황에 관한 규정이 있고,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자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이러한 천황 및 황실에 관한 제도를 구체적으로 정한 기본법이 황실전범이다. 이번에 황실전범 개정이 급히 요구된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보수파의 인식이 존재한다.

[천황제는 일본의 근간이고 단순한 정치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전통이자 역사, 그리고 일본의 정신입니다. 지금 천황폐하를 비롯한 황족의 수가 줄어들고, 황위(皇位) 계승 자격자도 충분하지 않은 심각한 상황입니다. 앞으로 황실의 존재 자체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에 황실전범을 개정하고 우선 황족 수를 확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황족은 국가 행사를 수행하는 천황폐하를 보좌할 뿐만 아니라, 지방 방문, 재해지역 위문, 외국귀빈과의 교류, 각종 단체의 명예총재 등 다방면에 걸친 공식활동을 담당하고 국가를 뒷받침하고 계십니다"]  

천황제는 일본의 근간이고 단순한 정치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전통이자 역사, 그리고 일본의 정신이다.  지금 천황폐하를 비롯한 황족의 수가 줄어들고, 황위(皇位) 계승 자격자도 충분하지 않은 심각한 상황이다.  앞으로 황실의 존재 자체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에 황실전범을 개정하고 우선 황족 수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황족은 국가 행사를 수행하는 천황폐하를 보좌할 뿐만 아니라, 지방 방문, 재해지역 위문, 외국귀빈과의 교류, 각종 단체의 명예총재 등 다방면에 걸친 공식활동을 담당하고 국가를 뒷받침하고 계신다. 

보수지지층을 대변하고, ‘일본다운 것’과 전통을 강조해온 다카이치 정권은 황실의 상황에 대한 대책으로 옛 궁가(宮家)의 남계 남성을 황실 양자로 맞이하는 황실전범 개정안을 추진했다. 옛 궁가란,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군 점령정책의 일환으로 황실에서 이탈하고 민간인으로 된 11개 궁가와 51명의 황족을 말한다. 한때 천황의 이름으로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범한 일본은 1945년 패전 후, 미군 점령 하에 천황 스스로가 ‘신’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인간 선언”을 했다. 그리고 제정된 새로운 헌법 제1조에서 천황의 존재는 ‘상징’으로 규정되었다. 당시 일본은 천황이 전쟁의 책임을 지고 처벌되는 일, 즉 천황제가 폐지되는 것을 피하고자 민주화된 모습을 보여주려 했고, 그 배경에는 일본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자 했던 미군의 의도도 맞물려 있었다.

여야가 합의한 '조용한 논의'

1947년 헌법과 함께 제정된 현행 황실전범에 따르면 여성 황족은 결혼과 동시에 황실을 떠난다. 즉, 민간인으로 신분이 전환된다는 규정에 따라 세대가 지날수록 황족 수는 계속 감소하는 것이 어느 정도 필연적이다. 실제로 최근 황족의 인원이 줄어들면서 황실이 맡아온 국가 행사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야 국회의원들은 올해 6월 10일, 황실전범 개정을 위한 ‘입법부의 총의’를 통해 널리 의견을 모았다. 국가의 근간과 관련된 사안이고 여론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조용한 환경’에서 논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아 모든 국회의원의 의견이 반영된 것은 아니지만, 정부가 법안을 만들기 전에 여야가 협력하는 형태로 신중한 사전 검토를 진행한 것이다.

이 ‘입법부의 총의’를 도출하는 과정에서는 황족 수 확보와 황위계승 문제는 별도로 검토해야 한다고 보고, 먼저 황족 수 확보를 위해 옛 궁가 사람들을 양자로 황실에 불러들이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국회에 제출된 실제 법안을 둘러싸고는 황위계승 자격이 논의 대상이 되었다. 정부가 만든 황실전범 개정안에서는 옛 궁가에서 황실로 들어가는 양자 본인에게는 황위계승 자격이 인정되지 않는 한편, 그 남계 남성의 자손에게는 황위계승 자격이 인정되도록 하는 제도 설계가 제시되었다. 이에 대해 입헌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여성은 왜 천황이 될 수 없냐”는 의문을 제기했고, 결국 개정 황실전범에서는 양자를 인정하는 한편, 남계 남성만이 황위계승자로 인정하는 현행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게 되었다.

[현행 황실전범은 제1조에서 “황위는 황통(皇統)에 속하는 남계 남성이 이를 계승한다”고 규정되어 있고, 약 2000년 동안 남계에 의해 황통이 이어져온 자체가 황실의 정통성입니다. 역사상 여성 천황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있지만, 이는 일시적인 것이며 여계(여성 혈통) 천황이 인정된 적은 없습니다. 한 번이라도 여계 천황을 인정하면 남계 천황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 왕실은 어떤가 보면, 최근 남녀가 동등하게 왕위를 계승하는 국가가 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일본 황실은 세계적으로 매우 특수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대 흐름상 여계 천황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이는 남녀평등 문제와는 별개로 다루어야 할 사안입니다. 황위계승은 직업 선택의 자유 등과는 다른 차원의, 즉 국가 정체성과 직결된 역사의 연속성과 전통에 관한 문제라고 봐야 합니다]

이것은 개정 황실전범을 추진하는 보수파 사람들의 주요 주장이다. ‘남계’란 아버지 쪽 혈통을 따라가면 진무(神武)천황에서 이어온 혈통을 의미하고, ‘여계’란 어머니 쪽 혈통을 통해 역대 천황들의 혈통과 연결된다는 뜻이다. 진무천황은 기원전 7세기에 즉위한 초대 천황으로 여겨지는 인물인데, 역사학·고고학적 관점에서 실제 존재했는지 확인되지 않아 신화 속 인물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설이다. 신화를 근거로 한 ‘남계’에 대한 주장이 설득력이 있을까 싶겠지만, 실제 일본 사회에서는 천황제에 대한 신뢰가 매우 깊고,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 잡은 상태이다.

아이코 내친왕 황위계승 자격 인정해야    

한편, 현행 제도에서는 여성 혈통은 물론 여성 천황조차 인정되지 않지만, 여성 천황을 허용하자는 여론의 목소리도 작지 않다. 특히, 현재 천황의 외동딸인 아이코 내친왕은 일본 내에서 인기를 얻고 있어 그가 황위를 계승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남계 남성에 집착하는 이들조차도 아이코 내친왕의 황위계승에 대해서는 남계 천황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나중에 그 자녀가 황위를 계승한다면 여계 천황이 되므로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번 황실전범 개정에서는 결국 옛 궁가의 남계 남성 양자를 허용하고, 여성 황족은 민간인과 결혼하더라도 황실에 남기로 했다.

결국 ‘아이코 님’(아이코 내친왕)은 황위계승자가 될 수 없게 됐지만, 지금까지 수행해 오신 성인 황족으로서의 공무에 임하는 모습과 재해지역이나 지방을 방문하셨을 때 보여주신 언행에서 천황이 되시기에 적임자라고 생각한다. 시대 흐름상 여성 천황을 받아들여도 되고, 그 때문에 혈통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왜 여성이 천황이 되어서는 안 되는 걸까요?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여성 천황은 남녀 평등 시대에 맞다고 생각한다. 또한, 황위계승 자격을 남계 남성으로 제한하는 것은 결코 천황제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아이코 님에게도 황위계승 자격을 인정하고, 안정적인 제도 구축을 도모해야 한다. 

남계 남성에 집착하는 보수파를 비판하면서 이렇게 주장하는 진보파 사람들도 있다. 오히려 아이코 내친왕의 황위계승을 기대하는 이도 적지 않다. 각종 여론조사를 봐도 여계 천황에 대해서는 주장이 갈라질지언정 여성 천황에 찬성하는 여론은70~80%에 달한다. 시대 변화와 함께 천황제를 둘러싼 후계자 문제가 심각해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재 천황에게는 아들이 없어 황위계승 1순위는 천황보다 다섯 살 아래 동생인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친왕이다. 그리고 2순위가 아키시노노미야의 19세 아들 히사히토 친왕, 3순위가 천황의 삼촌에 해당하는 90세의 히타치노미야 마사히토 친왕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히사히토 친왕만이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다. 현행 황실전범에 따라 현 천황의 딸이나 히사히토 친왕의 누이들이 천황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녀들이 민간인과 결혼하면 황실을 떠나게 된다.

'전통'의 명목 아래 황족의 권리 제한 

저명한 헌법학자 하세베 야스오는 일본의 천황제를 “유사 종교”와 같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국가 일본이 천황을 신격화함으로써 국민에게 일종의 도덕과 공공성을 가르치고 부국강병을 실현시켰다는 것인데, 이는 보수파가 주장하는 역사적 연속성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또한,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는 일본 고유의 부계혈통주의에 기반한 ‘집 제도’에 따른 것이 천황제라고 지적한다. 한국도 원래 부계혈통주의를 바탕으로 한 가족제도를 지닌 사회이지만, 일본의 집 제도는 혈연에 의존하지 않고 오히려 비혈연자를 ‘집(イエ)’이라는 장치를 통해 “가상의 가족 관계”로 끌어들이는 제도이기 때문에 천황제 유지를 위해 양자를 황실로 맞이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그 가부장적 집 제도의 정통성을 유지하고 역사적 연속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여성의 혈통을 허용할 수 없는 것이다. 앞의 두 지적 모두 천황제가 근대 이후 재구성된 제도적 허구의 측면이 강하다는 점을 강렬하게 비판한다. 

하지만 동시에 여성 천황 또는 여계 천황을 허용할지 여부에 대한 주장 차이를 보이면서도 보수파와 진보파 모두가 천황제 자체에 대해서는 ‘전통’으로 간주하고 의심 없이 유지해야 할 것으로 인식한다는 사실이 있다. 물론 일본에서 천황제에 반대하거나 천황제 폐지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주장이 텔레비전 방송이나 언론을 통해 공론화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때 천황제 폐지를 주장했던 일본공산당도 천황제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것을 전제로 천황제 폐지를 주장하지 않는다.

일본에서 천황이라는 존재는 특별하면서도 깊이 뿌리 내려 있다. 일본 사회에서는 천황제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필자도 해외에 살면서 처음 그 독특함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객관성이 요구되는 언론보도에서도 “천황 폐하”, "누구누구 님”이라는 호칭들이 사용되고, 그들의 언행이 최상급의 존경어로 묘사된다. 당연히 비판적인 보도는 찾아볼 수 없다. 일본이 무교 국가라고는 하지만, “신의 나라”라고 불리는 데 놀라지 않는 것은 천황제가 “유사 종교”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일본에서는 서기와 함께 연호가 사용되는데, 메이지 이후 ‘일세일원(一世一元)’이라는 제도가 도입되어 천황이 바뀔 때마다 연호가 바뀐다. 메이지(明治)·다이쇼(大正)·쇼와(昭和)·헤이세이(平成)·레이와(令和)와 같은 연호의 변화는 각각의 천황과 함께 일본 사회가 걸어온 시대의 흐름을 보여준다. 2026년 올해는 일본에서 레이와 8년이고 이는 현 천황이 즉위한 지 8년째라는 의미이다. 행정기관은 물론 학교 등에서 다루는 문서에서도 기본적으로 서기보다 이 연호가 우선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서 일본에 사는 이들은 무의식중에 천황제의 시간 축과 연결되어 살아간다.

이번 황실전범 개정에서 여성 천황과 여계 천황의 허용이 논의된 것에는 남녀 불평등에 기초한 일본 고유의 집 제도를 바탕으로 한 천황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존재한다. 하지만 결국 어떤 변화도 실현되지 못했고, 무엇보다 논의의 대상인 황족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천황은 상징이고, 황족에게는 정치적 발언이 허용되지 않는다. ‘전통’이라는 명목 아래, 애초에 황족이 자유롭게 발언하거나 자신의 인생을 정할 수 있는 권리는 제한되어 있다. 그들의 기본적 인권은 제도상 크게 제한되어 있고, 그 유형·무형의 정신적 압박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역시, 일본의 천황제는 독특하고 독자적인 것이라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필자 주요 이력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연세대 정치학 박사 △전 홍익대 조교수 △전 주한 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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