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집 한 채에 인생을 거는 사회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2.75%로 0.25%포인트 올렸다. 3년 6개월 만에 긴축 기조로의 전환이다. 물가를 안정시키고 천정부지로 늘어난 가계부채를 억제하기 위한 결정이다.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조정해 소비와 투자, 저축 등 경제 주체들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대출은 줄고 저축은 늘어나는 것이 경제학 교과서의 설명이지만 삶은 금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금리 인상 뉴스가 나오자 누군가는 가장 먼저 대출 이자를 계산한다. 같은 시간, 누군가는 부동산 애플리케이션을 켜고 눈여겨보던 매물을 다시 검색한다. 금리가 올랐는데도 '지금 아니면 영영 못 살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더 커진다. 집값이 안 잡히고 더 오를까 봐, 결혼을 해야 해서, 아이를 낳아야 해서, 전세는 불안해서, 직장을 포기할 수 없어서다.

흔히 '영끌'을 청년들의 무리한 투자라고 말한다. 다만 지금의 영끌은 탐욕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서울에서 살고 싶다는 욕망보다 서울을 떠나기 어려운 현실이 있다. 집값 상승으로 돈을 벌겠다는 기대감보다 지금 이 막차마저 놓치면 평생 자산 사다리에서 탈락할지 모른다는 공포가 패닉 바잉을 부른다.

물론 과도한 차입은 개인과 금융 시스템 전체의 위험을 키운다. 금리 변동이나 소득 감소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영끌은 결코 권장할 만한 선택이 아니다. 하지만 영끌을 하지 않는 청년은 집을 포기해야 하고, 서울을 떠나야 하고, 결혼을 미뤄야 한다고 느낀다. 그렇다면 영끌은 과연 자유로운 선택인가, 구조의 모순인가.

부모 세대에게 집이란 성실하게 일하고 저축하면 언젠가 마련할 수 있는 목표였다. 집을 산 뒤에도 삶은 계속됐다. 그러나 지금의 청년 세대에게 내 집 마련은 생애 전체를 걸어야 하는 프로젝트가 됐다. 30년, 길게는 40년 동안 대출을 갚는 것을 전제로 결혼을 계획하고, 아이를 낳고, 노후를 준비한다. 집은 삶의 기반이어야 하는데 어느새 삶의 목적이 됐다.

영끌에 성공한 이들의 삶 역시 평온과는 거리가 멀다. 금리가 올랐다는 뉴스에 가슴을 졸이며 한 달 월급의 절반가량을 원리금으로 토해낸다. 집을 마침내 소유했지만 정작 그 집 안에서 누려야 할 삶은 점차 축소된다. 소비를 줄이고 새로운 도전을 포기하며, 혹시 모를 지출에 대비해 일상의 소소한 행복마저 유예한다. 미래의 주거 안정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현재의 일상이 인질로 잡히는 역설이다.

문제는 모든 책임이 오롯이 개인에게 돌아온다는 데 있다. 청년들이 불안에 떠밀려 시장으로 내몰리는 동안 주거 안전망은 시장의 불안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불안 속에서 영끌을 선택하면 '투기꾼'이라는 비난을 받고, 금리가 오르거나 집값이 흔들리면 '자업자득'이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구조가 만든 선택을 개인의 실패로만 돌리는 것은 지나치게 손쉬운 결론이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고 내리는 거시경제의 숫자로 이 문제를 풀어낼 수는 없다. 금리 0.25%포인트의 향방보다 중요한 것은 왜 청년들이 평생을 담보 잡히지 않고서는 일상을 유지할 수 없는가다. 집이 생애 전체를 걸어야만 가까스로 손에 쥘 수 있는 거대한 목돈으로 존재하는 한, '영끌'이라는 비극적 선택은 금리의 등락과 관계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사회가 답해야 한다. 왜 청년들은 집을 사지 않으면 삶을 시작할 수 없다고 느끼는가. 집을 소유하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은 사회, 주거가 삶의 목적이 아니라 시작점이 되는 사회는 과연 불가능한가. 집이 삶의 자격으로 남는 사회라면 우리는 앞으로도 더 많은 청년들에게 빚을 권하고, 그것을 선택이라 부를 것이다.
 
사진장선아 기자
[사진=장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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